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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웹툰·프리랜서…내 임금의 하한선을 찾습니다

배달기사 파업·단식농성, 웹툰 작가와 대리운전 기사 등도 최저임금 적용 요구
노사 교섭해 정하기까지 난관 많은데 윤석열 정부는 있던 것도 없애
등록 2023-05-19 09:26 수정 2023-05-22 01:47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5월 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9년째 동결된 기본 배달료 3천원을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조 제공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5월 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9년째 동결된 기본 배달료 3천원을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조 제공

배달기사 100여 명이 음식 대신 촛불을 들었다. 9년째 동결된 기사 몫의 배달료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2023년 5월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외쳤다. “라이더는 상생을 원한다! 소비자·자영업자 배달료 인상 없는 라이더 배달료 인상하라!”

4월엔 웹툰 작가와 대리운전 기사가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건당 운임’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비슷한 시기에 노동자의 요구가 봇물 터진 이유는 뭘까. 배달기사의 배달료 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배달의민족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촛불집회’가 열린 5월 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9년째 동결된 기본 배달료 3천원을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조 제공

‘배달의민족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촛불집회’가 열린 5월 17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9년째 동결된 기본 배달료 3천원을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조 제공

9년 동안 배달기사 몫은 ‘3천원’ 동결

한때 배달은 고수입 일자리로 각광받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배달 수요가 폭증하며 월 500만~600만원씩 번다는 기사가 연달아 보도되면서다. 그러나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배달 ‘매출’에서 오토바이 유지·보수 비용 등을 빼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폭 늘어난 일감이 언제든 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배민 기사들의 파업은 이 두 가지의 결과였다.

배민이 배달 한 건당 기사에게 배분하는 배달료는 3천원이다. 배민이 소비자와 자영업자 양쪽에서 3천원씩 총 6천원을 받으면 그중 절반을 배달기사에게 떼어주는 셈이다. 거리가 멀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할증이 붙기도 하지만 기본 배달료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9년간 바뀌지 않았다. 부산, 광주 등 비서울권 지역의 기사 배달료는 2600원으로 더 낮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유행한 2022년까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재택근무와 자가격리로 배달 수요가 급증했고, 배민 쪽도 배달료를 추가로 얹어주는 ‘프로모션’ 행사를 수시로 열었기 때문이다. 기본료가 낮아도 일감과 추가 수당이 많으니 생계비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물가도 오르면서 배달 주문이 줄었다. 배민도 기본 배달료를 800원 깎은 ‘알뜰배달’(기본 배달료 2200원)을 도입했다. 배달기사는 오토바이 구매·개조비 500여만원 외에 보험료와 유류비, 각종 부품 교체비도 매달 100만원 이상 지출하고 있다. 월평균 381만원(2022년 국토교통부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 실태조사) 매출에서 100여만원 비용을 제하면 실수익은 300만원이 채 안 된다. 배달 주문 감소와 평균 배달료 하락이 곧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창때는 1시간에 4건씩 받았는데 요즘은 3건 정도밖에 안 돼요. 프로모션도 정말 많이 줄었어요. 옛날에는 1주 50시간 정도 일하면 한달에 300만원(순수입) 벌었는데 요즘은 길바닥에 1주 60시간씩 나와 있어야 해요.” 배달 경력 6년차인 김정훈 배달플랫폼노동조합 배민분과장의 말이다.

배달 주문 콜이 적으면 대기시간이 늘어난다. 일을 완수해야 지급되는 ‘건당 수수료’에는 따로 반영되지 않는 시간이다. 일감을 놓고 경쟁하는 사람도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배달업 종사자 수는 2019년 상반기 11만 명에서 2022년 상반기 23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 홍창의 위원장(왼쪽)과 김정훈 배민분과장(오른쪽)이 2023년 5월1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배달플랫폼노동조합 홍창의 위원장(왼쪽)과 김정훈 배민분과장(오른쪽)이 2023년 5월1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는 기사 몫의 기본 배달료를 현행 3천원에서 4천원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배민의 수익에서 기사 몫을 늘려달라는 것으로, 소비자나 자영업자가 내는 배달료와는 무관하다.

배민의 물류서비스를 담당하는 최재규 우아한청년들 홍보팀장은 “그간 요금체계에 3500원 구간을 신설하고 300원 배차 중개 수수료도 인하해 사실상 수수료 인상 효과가 발생했다. 다만 지속적으로 라이더들과 대화의 지점을 찾겠다”고 설명했다.

배달플랫폼노조는 2022년 9월부터 배민 쪽과 교섭했으나, 2023년 4월 말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결국 5월5일 3천여 명이 참여하는 첫 파업을 했다. 5월16일부턴 김정훈 분과장과 홍창의 위원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5월27일 부처님 오신 날에 2차 파업도 진행할 방침이다.

저임금 메우려 노동시간 늘려

경기가 불황일 때 ‘일감 절벽’은 배달기사만의 고민은 아니다. 2023년 4월 웹툰 작가와 대리운전 기사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저임금과 과로를 막기 위한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했다. 웹툰 작가는 원고에 필요한 디지털파일을 구매하거나 어시스트를 고용하며 한 달에 100여만원의 비용을 지출하지만 정작 수입은 3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대리운전 기사도 건당 운임에 포함되지 않는 대기시간이 길어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한 달 소득이 200만원 수준에 그친다.

생산수단을 스스로 구비해 일감을 따내는 업종에서 건당 수수료 체계는 단가가 낮을수록 과로를 유발하고, 일감 수급과 물가 상승에도 크게 영향받는다. 경기가 활황일 때는 일감이 많아 이런 문제가 가려졌다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물가 상승으로 비용이 늘고 일감이 줄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일감 단가의 재조정이 필요하지만, 배민 사례에서 보듯 노동자가 교섭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1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으로 6개 직군 214명 플랫폼노동자(택배·퀵서비스·가사·돌봄·음식배달·대리운전)를 조사한 ‘플랫폼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 방안’ 보고서를 보면, 플랫폼노동자의 1개월 평균 노동시간은 171.1시간이고 월평균 수입은 346만원이다. 여기서 평균 비용 220만8천원을 빼면 월평균 순수입은 125만2천원에 그친다. 시급으로 따지면 7289원으로, 2021년 최저시급(8720원)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이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 홍창의 위원장(왼쪽 다섯째)과 김정훈 배민분과장(왼쪽 여섯째)이 2023년 5월1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배달 노동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배달플랫폼노동조합 홍창의 위원장(왼쪽 다섯째)과 김정훈 배민분과장(왼쪽 여섯째)이 2023년 5월1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배달 노동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쿠팡이츠 지지부진, 안전운임제는 사실상 폐지

2023년 3월 라이더유니온 등으로 구성된 ‘플랫폼노동희망찾기’라는 플랫폼 종사자 연대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임금 하한선 적용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시간 측정이 가능한 직종은 앱 로그인 시간을 산정해 법정 최저시급을 지급하되, 측정이 어려운 직종은 업무량에 따라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대가)를 산정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웹툰 작가들이 웹툰 50컷을 그리는 데 드는 평균 노동시간을 산정해 컷당 최저 보수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업종별 최저 노임 단가를 도출하는 과정도 노사끼리 원활히 교섭해야 하는 일이라 난관이 많다. 최저임금법 보호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교섭은 법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가 직접 진행하지만,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플랫폼 종사자 노조의 임금교섭은 전적으로 회사 쪽 의지에 달렸다. 2022년 11월 카타르 월드컵 때 배달료 인하 반대 파업에 나선 쿠팡이츠 기사들도 회사 쪽과의 교섭이 지지부진했다. 2020년 건당 수수료 체계 가운데 유일하게 최저임금을 적용했던 화물기사들의 ‘안전운임제’는 윤석열 정부가 2023년 사실상 폐지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교섭력 없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처럼, 플랫폼노동자도 노·사·정이 적정임금을 함께 정하는 별도 심의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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