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 주장은 현행 양곡관리법이 ‘물가안정’에 치우쳐 설계돼 있다는 점은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나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초과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일 때 △쌀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했을 때 정부는 공공비축미를 매입할 수 있지만 열흘마다 세 차례 이상 쌀값이 1% 넘게 상승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공비축미를 팔아야 합니다. 매입은 ‘가능’이지만 판매는 ‘의무’인 것입니다. 완전 자급이 가능한 유일한 곡물인 쌀을 놓고 정부는 값이 오르면 찍어 누르지만, 떨어지면 느긋하게 지켜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실제로 산지쌀값(도정한 쌀 20㎏의 도맷값)은 2022년 9월25일 기준 4만393원으로 1년 전(5만3816원)보다 24.9% 폭락했지만,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즈음 이뤄진 대통령 업무보고 때 쌀값 안정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물가안정만 강조했습니다. 농민단체들이 “정부가 공공비축미를 판매할 때처럼 매입할 때도 같은 의무 조항을 적용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정말 쌀이 남아도는 게 문제일까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곡물자급률이 가장 낮으며(19.3%) 식량 수입의 총량이 세계에서 7번째로 많습니다. 쌀의 자급률은 92.8%로 전세계 평균 곡물자급률 101.5%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실 곡물 수급 안정은 안보과 직결되는 중요 문제입니다. 쌀이 부족하면 ‘진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기후위기 시대에 수시로 국제 곡물가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헌법(제123조 4항)이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할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국쌀생산자협회는 4월3일 성명서를 내고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처럼, 농민에게도 최소한의 생산비가 보장되는 공정한 쌀 가격으로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쌀값을 놓고 정부가 농민을 대놓고 홀대하는 문제를 다룬 <한겨레21> 1433호 기사 ‘잘 자란 벼 보면 한숨 나네’를 다시 전합니다. _편집자
2022년 9월28일 오후 전북 김제시 양전동 최귀덕(69)씨의 900평(2975㎡) 논에서 콤바인이 누렇게 잘 여문 벼를 베어 낟알을 떨어냈다. 사상 최대 쌀값 하락으로 시름이 깊은 농촌에 수확철이 돌아왔다. 최씨는 논두렁에 탕수육 하나 시켜놓고 일손을 보태러 온 이웃들과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최복한(61)씨가 낟알을 한 줌 쥐어보더니 “지난해보다 약간 가볍다”고 말했다. “9월에 약간 가물어서”라고 유한우(69)씨가 거들었다.
콤바인이 논의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사각형 모양을 그려가더니 30~40분 만에 톤백(1t 크기의 포대)에 낟알을 담기까지 모든 작업이 끝났다. 40년 넘게 벼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의 진단은 정확했다. 1년 전에 3t이 나왔던 이 논의 올해 수확량은 지난해보다 500㎏ 정도 못 미쳤다.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풍년이다. 하지만 먼 산을 보며 줄담배를 피우던 최귀덕씨는 “지금 쌀값으로는 남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쌀값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통계청이 10일마다 조사하는 산지쌀값(도정한 쌀 20㎏의 도맷값)은 9월25일 기준 4만393원이다. 1년 전(5만3816원)보다 24.9% 폭락했다. 쌀 완전자급이 달성되고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7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최근 10개월가량 쌀값은 하락세로 전환됐다. 9월25일 정부는 뒤늦게 예정된 공공비축미 매입물량 45만t에 더해 45만t을 추가로 ‘시장격리’(정부의 쌀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매입하기로 한 쌀 90만t은 2022년 예상 생산량(386만t)의 4분의 1가량에 이른다. 공공비축미, 공익직불금 등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여러 지원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농산물 수급균형과 가격안정을 통한 농민의 이익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헌법(제123조 4항)에 명시해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가 최귀덕씨의 걱정을 덜지는 못했다. “대체 45만t 출하통지를 언제 한다는 건가. 농협이나 행정기관에 물어봐도 여태 (계획이) 내려온 게 없다고 한다. 이러다가 대농들만 돈을 벌 거다.” 벼는 익으면 곧바로 수확해 건조해야 한다. 정부가 사들이는 공공비축미 물량은 농가마다 일정량을 배정해 출하통지를 하는데, 대농들은 건조기와 보관창고를 보유하기에 출하통지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임대농이나 소농들은 물량 배정이 늦어지면 팔 쌀이 아예 없어진다.
보통 농민이 수확한 쌀은 10∼12월 ‘조곡(도정 안 한 쌀) 40㎏’ 단위로 미곡종합처리장(RPC)으로 넘겨진 뒤, 1년 내내 건조·도정·보관 등의 과정을 거쳐 ‘정곡(도정한 쌀) 20㎏’ 단위로 마트·시장을 거쳐 소비자 밥상에 오른다. 보통 조곡 110㎏을 건조·도정 처리하면 정곡 80㎏이 나온다.
최근 쌀값 하락으로 농가 소득은 얼마나 줄어드는 걸까. 김제시 백산면에서 1만4400평(12필지·4만7600㎡) 논농사를 짓는 한재성(46)씨와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필지당 수확량이 지난해 수준(3.2t)이고 쌀값이 조곡 40㎏ 기준 5만원이라고 계산하면, 필지(1200평, 3966㎡)당 수입은 연간 400만원이 나온다. 현재 조곡 40㎏ 가격대는 4만원 안팎으로 형성됐는데, 정부가 대책을 발표해 5만원까지 오른다고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다. 반면 비료, 농약값 등 생산비는 지난해보다 25%가량 올랐다. 한씨의 논 한 필지만 해도, 1년에 모판값(30만원), 이앙비(18만원), 비료값(32만원), 농약 드론 살포비(18만원), 제초제값(30만원), 탈곡비(25만원), 건조비(20만원), 운반비(5만원) 등 178만원의 생산비용이 든다. 여기에 더해 논 임대료 220만원도 내야 한다. 한씨 같은 임차농민은 전체 농민의 절반이 넘는 51%에 이른다(통계청 2021년 조사). 1필지로 1년에 400만원을 버는데 인건비·유류비를 빼고도 이미 398만원을 썼다는 의미다. 한씨는 “필지당 몇십만원이라도 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1년 동안 뭘 한 건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락 조짐은 2021년 여름부터 이미 나타났다.(그림1 참조) 농민단체와 지역농협 등은 정부에 여러 차례 우려되는 점을 전달했다. 농협의 ‘미곡종합처리장 재고동향’을 보면, 2021년 7월부터 전년 쌀 재고가 늘어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해 8월 오히려 공공비축미 2만4천t을 시장에 풀었다. 9월 통계청의 ‘쌀 예상 생산량’ 조사에서 전년보다 쌀 생산량이 10%가량 많고 소비량보다 27만t 이상 초과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10월 쌀값이 본격적인 하락세로 돌아섰다. 국회 국정감사 때 여러 의원이 ‘신속한 시장격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의 인식은 달랐다. 11월15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쌀값이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당시 산지쌀값은 5만3440원으로, 한 해 전보다 1% 떨어진 상태였다. 한 달 뒤인 12월13일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조속한 쌀 시장격리’를 촉구하며 농민단체와 함께 상경해 거리집회를 했다. 1993년 쌀시장 개방을 결정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반대 이후 지역농협 조합장이 거리집회에 참여한 건 28년 만에 처음이었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농민과 정부의 인식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2021년 12월28일 정부가 공공비축미 27만t 매입을 추가 결정했지만, 두 차례 나눠 사들인 끝에 최종 매입이 완료된 것은 2022년 5월에 이르러서였다. 더구나 쌀값을 매길 때 통상의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수확기인 10~12월 평균 산지쌀값) 대신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시장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한 탓에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 2022년 7월1일, 10만t 시장격리를 추가 결정해 쌀을 사들였지만 쌀값은 잡히지 않았다. 현재 쌀값(4만393원)은 쌀값이 하락세로 접어들기 직전인 2021년 10월5일(5만6803원)과 비교해 28.7%나 떨어졌다.
정부도 뼈아파하는 부분이다. 변상문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소비량이 예상보다 더 많이 줄어든 점도 있고, 2020년 물량이 2021년으로 넘어오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물량이 시중에 있었던 것이 (쌀값 폭락의) 원인이라 파악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재고 파악을 못했다는 의미다.
농협중앙회의 한 간부는 “쌀값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정확한 수급 예측에 실패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지역농협 조합장 50여 명의 모임인 ‘정명회’는 2022년 8월16일 성명서를 내어 “이번 쌀값 하락의 원인은 쌀 공급 과잉이 아니라 정부의 양곡관리 실패”라고 규정하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쌀값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해 시장의 구매심리를 위축시키고 투매심리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쌀협회) 정책위원장은 이번 45만t 추가 매입 결정을 “늦어도 너무 늦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 수요량이 생산량을 3% 초과하면 시장격리를 할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농업인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쌀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렸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농식품부 업무보고(8월10일)에서 아예 ‘농민 이익 보호’라는 말이 빠지고 (소비자) ‘물가안정’만 강조됐다. 37만t을 세 번에 쪼개서 찔끔찔끔 사들였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사상 유례없는 쌀값 폭락이라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예측 실패만이 아니었다. 가격도 문제였다. 농업인들은 쌀 수급 대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적정가격’을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쌀협회·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들이 제시하는 ‘공정가격’은 밥 한 공기(200g) 300원, 쌀 한 가마니(80㎏) 24만원이다. 24만원은 2019년 정부가 제시한 ‘쌀 목표가격’(80㎏ 한 가마니에 21만4천원, 도맷값 기준)에 최근 3년간 물가상승률을 더해 나온 수치다. 2022년 9월25일 기준 쌀 80㎏(산지 쌀값 기준)은 16만1572원으로, 이 ‘공정가격’의 67.3%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20㎏ 기준 4만원가량 되는 산지쌀값이 적정한지에 언급 자체를 꺼린다. 농민뿐 아니라 2022년 수확될 쌀값의 협상을 시작한 지역농협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는 김제농협 쌀조합공동사업법인의 장명옥 대표는 “지난해 6만6천원에 구매한 나락(조곡 40㎏)을 도정해서 4만4천원에 팔고 있다. 벌써 올해 적자가 16억원에 달한다. 조합원 농민들로부터 올해 수확한 쌀을 받으려면 창고를 비워야 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쌀을 팔지 않을 도리가 없다”며 “정부 발표가 믿음이 안 간다. 비축미 사들인 뒤 어느 정도 가격이 될 때까진 물량을 안 풀겠다는 약속이 없다. 언제 돌변해서 ‘쌀값 너무 올랐다. 비축물량 풀겠다’고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적정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최근 10년간 경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장격리 사례 10건 가운데 하락하는 쌀값이 잡힌 것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2017년 9월 37만t을 최저가 입찰 방식이 아니라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으로 사들였을 때다. 당시 쌀값은 13.8% 상승했다. 충분한 양을 시장가격보다 좋은 값으로 사들여야 ‘쌀값 지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 양곡관리법의 공공비축미 매입·판매 기준이 ‘물가안정’에 치우쳐 설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초과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일 때 △쌀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했을 때 정부는 공공비축미를 매입할 수 있다. 반면 열흘마다 세 차례 이상 쌀값이 1% 넘게 상승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공비축미를 팔아야 한다. 매입은 ‘가능’이지만 판매는 ‘의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매입도 의무사항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정부와 여당은 강하게 반대한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매입을 의무화하면) 분명히 공급과잉이 심화하고 재정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농업인과 달리 정부는 쌀값 하락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판단할까. 구조적인 공급과잉, 쉽게 말해 국민의 쌀 소비량은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농민이 이와 무관하게 쌀농사를 너무 많이 짓는다고 정부는 판단한다. 실제로 최근 10년(2011∼2021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1.2㎏에서 56.9㎏으로 20.1%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벼 재배면적은 14.3%(85만4천㏊→73만2천㏊) 줄어드는 데 그쳤다.(그림2 참조)
정부의 목표는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것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쌀 목표가격을 정해 실제 가격과의 차액 85%를 지급하던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면적에 따라 논·밭에 모두 직불금을 주는 공익직불금을 도입한 이유도 그래서다. 2018~2020년에는 논에 밭작물을 심으면 ㏊당 210만∼43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도 시행했다. 하지만 2017~2020년 논 면적은 3.8%만 감소(75만5천㏊→72만6천㏊)하는 데 그쳤다.
“논농사를 밭농사로 바꾸는 건 정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논농사는 기계화가 90% 이상 이뤄졌지만 밭농사는 아직도 일일이 사람을 투입해야 한다. 인건비도 많이 올랐고 드론 방제비 등 비용 단가도 밭이 더 비싸다. 거기다 쌀값보다 밭작물 가격은 ‘투기’라고 할 만큼 불안정하다.” 한재성씨의 설명이다. 그는 “1년 단위로 임차계약을 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직불금도 나오지 않는데 임차농민이 스프링클러 등 장비를 사서 밭농사에 투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제에서 35년째 농사짓는 박흥식 전 전농 의장은 “정부가 농업을 방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쌀 소비를 어떻게 늘릴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논이 과잉이라 하며 직불금 등 제대로 된 유인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생산비가 폭등하는데 어느 정도 가격으로 관리할 것인지 적정가격도 제시하지 않는다”며 “최저임금처럼 농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쌀과 다른 농산물에 대해서도 ‘공정가격’을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농어촌(전남 영암·무안·신안)이 지역구인 서삼석 민주당 의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급이 가능한 쌀마저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식량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 구조적 과잉이라는 정부 진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노동시간이 논보다 절대적으로 많이 소요되고 고임금 외국 인력 의존도가 높은 밭농사의 기계화율을 대폭 높여주는 정책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45만t 시장격리’ 같은 긴급대책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농민단체들이 전북 정읍(9월28일), 전주(29일), 진안(30일) 등에서 논을 갈아엎으며 시위를 벌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장의 쌀값 하락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구조적인 위기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쌀이 과잉생산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최하위다. 프랑스·캐나다·미국·독일·영국 등은 100%가 넘는다. 쌀 자급률(92.8%)도 2018년 이후 100% 아래로 떨어졌고 밀(0.8%), 옥수수(1.1%)는 매우 낮다.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이상기후 등의 영향으로 최근 전세계 곡물 생산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2022년만 해도 121년 만의 폭염을 겪은 세계 밀 생산량 2위의 인도에서 밀 수출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고, 5월15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가격이 전날보다 5.9% 급등했다. 미국 최대 쌀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 지역에는 가뭄이 계속돼 최근 미국 현지 쌀값도 2∼3배 상승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미국산 쌀은 국산보다 비싸다. 2022년 10월5일 ‘쿠팡’에서 ㄷ농산에서 유통한 20㎏ 쌀값은 미국산(2020년산)이 4만6900원, 국산(2021년산)이 3만5050원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매년 중국·미국 등에서 이른바 저율관세할당물량(TRQ·관세율 5%) 40만8700t의 쌀을 의무수입하는데 이 가운데 4만t가량은 의무적으로 밥쌀용으로 유통해야 한다. 수입쌀이 더 비싸도 무조건 사와야 한다. 농업인들은 정부가 WTO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도 WTO 협상 위반이라는 지적을 들어가면서도 자국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WTO 재협상은 우리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식량위기다. 쌀마저 무너진다면 (식량안보는) 진짜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수출국들이 기후위기로 농산물을 못 보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 밀값 급등에도 잘 버텨낸 건 우리 주식이 쌀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은 ‘곡물은 계속 수입해서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9월28일 김제에서 함께 이동하던 박흥식 전 의장이 갑자기 트럭을 세우고 논을 향해 ‘워이워이’ 소리를 질렀다. 추석 때 태풍에 쓰러진 벼를 동네 비둘기 십수 마리가 쪼아먹고 있었다. “왜 벼를 세우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인건비가 하루 18만원씩 하는데 어떻게 세우겠어요. 빨리 여물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러고는 덧붙였다. “값이 떨어지면 농민들이 생산비조차 못 건진다고 해도 그냥 놔두면서, 참깨나 콩 같은 것들은 조금만 가격이 올라도 외국산을 무관세로 들여와 가격을 낮춰버려요. 농산물에만 그렇게 합니다. 세상에 왜 농민만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합니까.”
김제=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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