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근대화된 것은 일본 덕분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으로) 비열하게 골대를 옮겼다.”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이규수 옮김, 삼인 펴냄)의 저자인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이런 주장을 철석같이 믿던 수많은 일본인 중 하나다. 한국 쪽의 전쟁 피해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던 그는 2019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한국 대법원 승소 판결을 계기로 일본 곳곳의 사료를 꺼내보며 ‘팩트체크’를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몰랐던 큰 희생의 역사”를 마주한다.
책은 양국 갈등의 뜨거운 감자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로 시작한다. 일본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된 것이 아니라 ‘(구인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와타나베가 확인한 <일본교통공사 70년사>를 보면 일본은 “조선인 노무자를 대거 수송할 계획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반강제로 끌려온 노무자들이 도망가기도 했다”. 전쟁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까지 징용령이 내려질 정도였다.
일본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동학농민운동 역시, 손에 든 무기가 죽창과 화승총뿐이던 한국 의병을 일본군 토벌대가 무참히 살해한 기록이 일본군 병사 종군일지와 소좌(소령)의 보고서에 적혔다. 일본이 기록한 일본군 전사자는 136명이었으나 조선인 의병 전사자는 1만7774명이었다.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도 일본은 그 사실을 부인하나 당시 일본인 학생들이 쓴 재해 작문집에 학살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일본군의 전쟁범죄가 왜 일본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을까. “오늘날 일본인의 역사 인식은 사실을 개찬(다시 편찬)하고, (범죄) 기록을 처분하고, 기억을 망각함으로써 일본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졌다”고 와타나베는 짚는다. “‘믿을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소박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은 선량하다, 어떤 때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심정을 노린 속임수다.”
국가의 자긍심을 위해 전쟁 범죄를 외면하는 습성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와타나베 기자는 베트남전 참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수많은 증언으로 드러난 후에도 미군이 학살을 부인한 사건을 언급하며 “국외에서 행한 병사들의 비인도적 행위를 국내에서 ‘모두의 기억’으로 남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나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일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와타나베는 이 대목에서 일본을 보지만, 베트남전 참전국인 한국은 자화상을 본다. 2023년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이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낸 지 열흘 만에 국방부 장관은 “학살은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이 기묘하게 만나는 대목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우주에서 기다릴게
이소연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1만7천원
2008년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타고 국제 우주정거장에 간 이소연씨. 우주인으로 선정돼 각종 훈련을 받고 우주를 향하던 여정이 15년 만에 책으로 나왔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우주 멀미’와 커다란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한반도의 불빛, 지구로 복귀하던 중 찾아온 위기까지 모험 가득한 우주여행 이야기가 담겼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1만7천원
클릭 후 30분이면 집 앞에 도착하는 배달 음식. 그 너머엔 배달 시간을 맞춰야 해서, 예상치 못하게 배달 일정이 바뀌어서 ‘총알 배송’하는 배달기사들이 있다.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배달기사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저자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동료들의 사고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썼다.
또 하나의 생활문화 지도, 땅이름
배우리 지음, 마리북스 펴냄, 1만8천원
‘널다리’의 한자 명칭인 ‘판교’는 주변 하천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고 다니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넓은 다리’라는 뜻의 판교는 그 이름처럼 사람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업무 공간이 됐다. 한글학자이자 지명학자인 배우리가 다양한 지명의 어원을 풀어 설명한다.
곁을 만드는 사람
이은주·박희정·홍세미 지음, 오월의봄 펴냄, 1만7천원
이주노동을 하러 한국에 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6명의 이주 ‘활동가’ 이야기.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이끌다 본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샤말 타파, 필리핀 노동자 공동체를 만든 놀리, 이주노동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독립영화 감독 마문. 인권침해나 노동 착취의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 자신의 언어를 오롯이 가진 이주자들의 삶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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