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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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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잊힌 무심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SOS 요청 잇따르는 경기도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 가보니
행정망 강화만으로는 위기가구 발굴 어렵고 이웃의 참여 높여야
등록 2022-09-16 18:27 수정 2022-09-16 23:33
2022년 9월14일 경기도청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복지 수요자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2년 9월14일 경기도청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복지 수요자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2년 9월7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을 찾았다. 2주 전에 어머니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던 곳이다. 세 모녀는 암과 희귀병으로 투병 중이었으나 18개월 동안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가구도 아닌 ‘복지 사각지대’에서 이들은 생활고를 겪었다. 세 모녀의 사연이 알려진 뒤 나라가 떠들썩하게 이들의 비극을 안타까워했다. 2주 만에 현관문에 붙어 있던 노란색 ‘출입금지’ 폴리스라인이 떼어졌다. 강제로 문을 열기 위해 경찰이 부쉈던 현관문 잠금장치(도어록)는 새것으로 바뀌었다. 문 건너편은 고요했다. 옆집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편함에 쌓인 봉투들만 이곳에 세 모녀가 살았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8월21일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비극이 반복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12일 부산에서는 40대 어머니와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역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의 끝에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하는 이들의 죽음 대부분은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세 모녀의 죽음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복지제도를 촘촘하게 쌓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제도로 덮어도, 복지 사각지대의 틈은 메워지지 않았다.

핫라인을 휴대전화 번호로 한 이유

수원 세 모녀의 죽음이 알려진 뒤인 8월25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긴급복지 핫라인’을 만들었다며 휴대전화 번호(010-4419-7722)를 공개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한겨레21>은 긴급하게 마련된 공공의 손길이 과연 사각지대에 닿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애쓰고 있는 현장 구석구석을 직접 따라가봤다.

추석 연휴 전날인 9월8일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의 17층에 있는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의 작은 사무실은 정적인 가운데서도 부산스러웠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오전과 오후 시간대를 나눠서 근무하는 팀원 7명이 모두 자리를 지키는 때였다. 따르르릉. 사무실의 전화벨 소리가 두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응답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네, 긴급복지 콜센터입니다. 주민센터에서 연락드리기로 했는데 연락 못 받으셨어요? 제가 다시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대화 내용을 기록하느라 키보드 위의 손가락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날 기자가 지켜본 1시간 동안 모두 21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균 3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꼴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고요한 순간은 30초를 넘기지 않았다.

이 긴급복지 콜센터는 9월5일 만들어졌다. 팀원들은 단순한 콜센터 직원이 아니다. 직전까지 복지 담당 업무를 했던 공무원이다. 기존의 경기도 ‘120 콜센터’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팀원들이 직접 복지 신청부터 수급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로 맡던 위기가구 상담부터 사후관리까지를 도 차원에서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120 콜센터는 전화를 받으면 담당 부서나 시·군·구로 돌려만 줬어요. 일종의 리셉션(접수처) 구실만 했는데, 이번 콜센터는 직원들이 어려움을 듣고 관리를 해요. 처리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지원될 때까지 확인하는 거죠.”(전준희 경기도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 팀장)

사무실 전화와 별도로 김동연 지사가 공개한 업무용 휴대전화도 그대로 운영한다. “휴대전화 번호여서 사람이 바로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수요자에게 있다”(김동연 지사)는 이유에서다. 9월8일 기준, 317건의 전화가 경기도청으로 걸려왔다. 복지 분야 상담은 207건이었고, 완료된 상담 건수는 65건이다.

이아무개(57)씨는 8월27일 경기도에 연락해 허리와 무릎 질환, 난청으로 일하기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했다. 건강보험료 40여만원이 체납돼 예금통장을 압류한다는 고지서를 최근 받았다고도 했다. 이씨가 거주하는 부천시 부천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긴급지원 업무를 하는 조아라 주무관은 8월31일 경기도청에서 관련 연락을 받았다. 조 주무관은 곧바로 이씨에게 연락했다. 이씨는 신청서를 낸 다음날 바로 58만원의 긴급지원금을 수령했다. 이씨는 과거에도 보건복지부로부터 긴급복지지원금을 5차례 받은 적이 있다. 복지제도를 잘 알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셈이다.

2022년 8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거주하던 집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한겨레 이정하 기자

2022년 8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거주하던 집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한겨레 이정하 기자

출소자가 긴급지원 가장 많이 활용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긴급지원제도는 실직, 휴·폐업 등으로 생계가 어렵거나 중한 질병으로 수술받아야 하는 저소득층을 위해 최대 6개월까지 생계비(4인 가구 기준 월 108만원), 의료비(1회 300만원 이내) 등을 지원해준다. 저소득층이 빈곤층으로 굴러떨어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눈앞에 닥친 위기라는 불을 끄기 위한 소방서 같은 구실을 하는 셈이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지원금은 압류도 불가능하다. 채무 탓에 전입신고도 못한 채 숨어 살아야 했던 수원 세 모녀가 눈앞의 불을 끄는 데 꼭 이용했어야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수원 세 모녀처럼 긴급복지지원금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일선 복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조아라 주무관은 “긴급지원을 신청하는 분들은 보통 본인이 알고 서류까지 다 준비해온다”며 “(새로운 제도가 나오면) 우리보다 빠르게 아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교정시설에서 출소할 때 긴급지원제도를 안내해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긴급복지지원제도 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전체 긴급복지지원 사례 중 출소를 사유로 지원받은 비중은 전체의 8~9%(2017~2019년)를 차지한다. 2020년에는 1만724건의 긴급복지지원금이 출소자에게 지급됐다.

위기를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이웃

하지만 이처럼 안내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상자를 발굴하거나 수원 세 모녀처럼 숨어버린 위기가구를 찾는 과정은 사실상 어렵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시청 체납징수팀, 건강보험공단, 한국전력 등이 위기가구를 찾기 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일선에선 인력이 부족해 이런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기준 기초자치단체의 긴급복지지원전담 공무원은 363명이었다. 이 가운데 209명은 다른 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아예 복지제도를 모르거나 복지센터 자체를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찾아가는 서비스를 한다고 해도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등록된 주소와 실제 주거지가 다르면 여기선 안내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거예요.” 부천동 행정복지센터의 오지수 주무관은 현실적인 한계를 말했다.

위기가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는 이웃이다. 정부는 2018년 충북 증평군에서 생활고로 모녀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간이 위기가구 발굴에 적극 참여하는 방향의 정책을 확대해왔다. 서울 은평구 불광1동에서 6년째 통장을 맡고 있는 조정실(63)씨도 명예사회복지공무원이다. 그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꽃동네 도시락 자원봉사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9월13일 만난 조씨는 여느 복지센터 공무원보다 많이 지역주민을 만나고 있지만 “위기가구 발굴은 힘들다”고 입을 뗐다. “전화로 어렵다거나 죽고 싶다고 직접 말하는 분들은 빨리 알아채기가 쉬운데, 직접 가서 발굴하는 건 저희도 어려워요. 통장들도 집주인이 얘기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는지 모르니까요.”

은평구 녹번종합사회복지관에서 9년 동안 사례관리 업무를 해온 강상미 과장(사회복지사)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공공과 민간, 주민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가장 접근성이 좋지만 행정 업무가 우선이라는 한계가 있고 민간은 유연성이 있지만 자원의 한계가 있다. 주민센터에서 주민 참여 역량을 강화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기존 복지 행정망의 강화나 특정 제도로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풀기 어렵다”며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연결망을 어떻게 더 촘촘하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마을만들기나 지역공동체 등이 행정망 바깥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구제하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의 정부 대응에 대해선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위기 징후가 분명했는데도 (등록된 주소에) 찾아가서 살지 않으면 그걸로 끝났는데, 좀더 추적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공동체로 행정망 한계 극복해야

정부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가구 발굴 정보시스템에 등록하는 정보의 가짓수를 늘리고 경찰과 연계해 위기가구 소재를 파악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꾸려진 ‘복지사각 개선 태스크포스(TF)’는 9월7일 첫 회의를 열고, 공무원이 위기가구를 방문하는 단계에서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대상자에 대해 추가 정보를 확보할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는 주민등록상 거주지에 살지 않는 위기가구를 ‘복지 비대상자’로만 분류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제도가 몇 차례나 더 나와야 복지 안전망의 빈틈이 완벽하게 메워질 수 있을까. 조정실씨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뒤 집주인과 이웃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전 국민이 신경 써서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주면 (수원 세 모녀와 같은 위기가구) 발굴이 잘될 텐데….”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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