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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패스, 인권 패싱 ‘딩동’

법원, 학원·독서실 등에 접종증명·음성확인제 집행 효력 정지 결정… 정부 방역 대책에 제동
등록 2022-01-08 15:48 수정 2022-01-09 06:05
2022년 1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방역패스 의무적용 효력정지 처분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방역패스 의무적용 효력정지 처분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을 당분간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없이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방역패스를 의무화한 시설을 확대하려는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022년 1월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함께하는사교육연합,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이 방역패스 대책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본안 판결 선고가 있을 때까지 집행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학원은 시장보다 위험한가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거나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확인결과서를 받은 경우에만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목욕탕, 실내체육시설 등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역패스’ 정책을 시행했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식당, 카페, 학원, 독서실, 영화관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성인에게만 적용됐던 방역패스를 2022년 3월부터는 청소년까지 확대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학부모단체 등은 방역패스로 인해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 학습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면서 행정소송을 냈다. 이어서 의료계 인사 등 1천여 명이 모여 모든 방역패스 정책 자체를 중단해달라는 별도 소송을 내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의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방역패스가 “백신 미접종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조치”이자 “(방역패스로 인해)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현실적으로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므로, 개인의 신체에 관한 의사결정을 간접적으로 강제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침해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대한 판단까지 결정문에 명시했다.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백신 접종자 집단에 견줘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이 약 2.3배 크다는 정도여서 그 차이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 “(최근 일주일간) 12살 이상 전체 백신 미접종자 중 감염자는 1천 명 중 1.5명, 12살 이상 전체 백신 접종자 중 감염자는 1천 명 중 0.7명 정도로 그 차이가 현저히 크지 않다.”

하지만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판결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나 의학적 또는 과학적 관점에서 이해가 부족한 면이 보인다’고 법원 결정을 비판했다. △국내 통계자료의 출처와 측정 방식이 명시되지 않은 점 △감염 예방 효과가 가장 낮게 측정된 기간의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점 △백신 미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을 계산할 때 일주일 동안의 비율을 제시해 역학적인 의미가 떨어지는 점 등의 이유에서다.

PCR 검사 유효기간 48시간

반면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에 걸릴 확률의 ‘절대적 크기’가 학습권을 제한할 만큼 큰 위험인지를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며 “청소년이 얼마나 노인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하는지, 학원 등이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는 전통시장에 견줘 얼마나 감염 위험이 높은지 등을 정부가 통계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역 대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에 대한 법원의 잣대는 일정하지 않았다. 앞서 법원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집회·시위 등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최재홍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법원의 이번 판단이 방역패스 전체로 확대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집회와 달리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적절한 대체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기본권 제한이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판사 출신의 한 로스쿨 교수는 “개인의 생활이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제한할수록 방역정책에 제동이 걸릴 확률이 커졌다. 방역 당국이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을 법원이 보완한 셈”이라고 말했다.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음성 확인 증명’을 좀더 편리하게 발급받는 정책을 든다.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부정맥을 앓는 ㄱ씨는 “PCR 검사를 받으면 다음날 ‘음성’ 문자가 오고 그 유효기간은 48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며 시설 이용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심장의 우심실 기능이 저하되는 병을 앓는 16살 청소년도 “백신 접종증명이 없으면 음성확인서를 보여줘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식당이나 카페가 꽤 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백신을 맞아야 하나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는 PCR 검사 유효기간이 72시간으로 한국(48시간)보다 하루 더 길다. 특히 백신 미접종자인 만 12살 이하 아동이 음성 진단을 받으면 일주일 동안 인정해준다. 국내에서도 음성 증명을 빠르게 하는 수단으로, 이른바 ‘자가진단키트’라는 신속항원검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가 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신속항원검사는 정확도가 낮다보니 자가진단키트로 양성이 나오면 PCR로 재검사하는 기존 방향을 유지할 것”이라며 “오미크론 바이러스 확산시 검사량 증가를 대비해 제한된 검사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백신 접종 여부나 접종증명서 제시 여부에 따른 부당한 차이나 별도의 취급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예방접종법에 규정돼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일본에서도 방역패스로 방역 효과가 생길 수 있지만, 사회적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논란이 팽팽하다. 정부는 상점 등 민간이 접종증명서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접종 여부에 따른 부당한 차이 없어야”

백신 미접종자나 백신 2차 접종 유효기간 180일이 지난 이들이 정보무늬(QR코드)를 찍고 시설에 들어갈 때마다 ‘딩동’ 하는 경고음이 나와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무음으로 안내하면 시설관리자가 이용자의 접종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접종 상태를 소리로 안내하는 것은 방역패스 확인 편의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조처”라고 말했다. 이처럼 방역패스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1월6일 정례브리핑에서 “방역패스의 예외 범위를 좀더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게 개선하는 방향을 질병관리청이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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