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인 나는 5월27일 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차 접종을 받았다. 60살 이상을 대상으로 AZ 1차 접종이 본격화한 첫날 ‘잔여백신’을 맞은 것이다. 이틀 전인 5월25일 동네 의원에 전화로 잔여백신 접종을 예약했다. 이때는 AZ에 대한 불안과 불신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고, 백신 수급 불균형으로 한 달여 이어진 백신 보릿고개의 끝물쯤 되던 시기다.
백신 접종을 하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현재 취재하는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취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자는 생각이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단장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이하 추진단)은 2021년 3월 말부터 접종 당일 개봉 뒤 폐기되는 백신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접종기관이 예비 명단을 작성해 활용하도록 하는 지침을 시행했다.
질병관리청 누리집에 들어가 코로나19 예방접종사업 참여의료기관을 검색했다. 내가 사는 경기도 부천시와 회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에 소재한 의원 10여 곳에 전화를 돌려 부천과 마포 각 4곳씩 모두 8곳에 예약했다. 잔여백신 예약을 안 받는 곳도 있었고, 직접 방문해야 예약을 받아주는 곳도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가 뚜렷했다. 마포구 의원들에서 예비자 번호는 빨라야 60번대였다. 하지만 부천 의원들에서는 빠르면 1번, 늦어도 10번대였다. 5월27일 첫날에 잔여백신 접종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날 오후 1시부터 네이버와 카카오를 통해 잔여백신 예약이 시작되지만, 서울은 이미 전화로 예약한 사람이 수십 명대에 이르니 네이버·카카오톡을 통한 접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겠다’ 싶었다. 또 한 가지. 백신 접종 열기가 ‘물밑에서 뜨거웠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다.
나를 잔여백신 1호로 접종해준 부천의 한 의원에서는 ‘처음’답게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백신 주사를 맞으려 팔을 걷고 의사와 백신이 3분의 1쯤 남은 AZ 약병 앞에 앉았다. 그런데 먼저 의사가 내 개인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조회된 데이터가 없다’는 오류 메시지가 떴다. 이 단계를 원활히 통과하지 못하면 백신을 맞을 수 없다. 의사와 간호사는 당황했다. 하지만 다행히 몇 분 만에 문제가 해결됐다. 나를 질병관리청에 잔여백신 예약자로 등록하고 예약번호가 생성되어 나에게 문자메시지로 공지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이 절차를 미처 거치지 못했던 것이다. 정작 주사는 느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혀 아프지 않았다. 접종 이후 당일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부터 근육통, 두통, 몸살이 심해졌다. 백신휴가를 냈고, 이틀 동안 타이레놀이 아닌 집에 있던 진통제 3알을 먹었다. 가벼운 피로감만 남고 몸 상태는 회복됐다.
“인센티브에 끌렸다”최근 30~50대 사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열기가 후끈하다. 5월27일부터 잔여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모두 33만1190명(2021년 6월3일 0시 기준)이다. 이 중 정부 계획대로라면 7월 이후에나 백신 접종이 가능한 연령대인 40~50대가 잔여백신 접종자의 82.9%(5월27일~30일 운영 결과)를 차지한다. 잔여백신 접종자 중 네이버·카카오톡으로 예약한 이는 1만5045명에 그친다. 전화·방문 예약자가 절대다수라는 얘기다.
미국이 군 장병용으로 제공한 얀센 백신 101만 명분은 6월1일 예약받기 시작한 지 18시간 만에 ‘완판’됐다. 얀센 백신은 주로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인 30~40대에게 접종할 예정이다. 이렇게 30~50대로 백신 접종 대상이 확대되면서 편의점에서 5월27~31일 타이레놀 매출이 4월에 견줘 두 배 가까이 치솟는 현상이 나타났다.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심하게 나타나는 백신 접종 뒤 면역 반응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대표적 해열진통제가 타이레놀이기 때문이다.
실제 AZ 잔여백신을 맞았거나 얀센 백신 예약을 한 지인이 적지 않다. 잔여백신을 맞은 이유를 물어봤다.
“코로나19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접종할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맞자는 생각이었다.”(52살 ㄱ씨)
“지금 1차 접종을 하면 8월에 2차 접종하고, 2주 뒤인 9월부터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백신을 맞았다.”(45살 ㄴ씨)
“제한적이긴 하지만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맞았다. 또 직장 동료 등 주변에서도 많이들 맞는 거 보고 안심하고 접종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35살 ㄷ씨)
전 국민의 25%인 1300만 명이 1차 접종을 완료하는 7월부터는 백신을 1차만 접종해도 집회 등 다수가 모이는 곳을 제외한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한 정부의 인센티브도 주효한 셈이다. 얀센 백신을 예약한 이들에게도 백신을 맞으려는 이유를 들어봤다.
“주변에서 백신 접종을 하는 분위기라 혹시 하면서 질병관리청 누리집에 들어가봤다. 예약 절차가 간단했다. 접종할 수 있는 병원도 가까운 데 있어서 접종받고 장 보고 오면 되겠다 싶어 조금 신이 났다.”(35살 ㄹ씨)
“백신 불안감이 큰 편이었지만 접종 뒤에는 헬스장 등 다중이용시설 인원 제한에서 제외되는 인센티브에 끌렸다.”(33살 ㅁ씨)
이런 분위기는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내용과도 맥이 닿는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25~27일 전국 만 18살 성인 남녀 1천 명에게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를 한 결과, 백신 미접종자 중 ‘예방접종을 받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9.2%였다. 지난 4월 조사에 견줘 7.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백신 접종을 받으려는 이유(중복응답)로 ‘가족이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76.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사회 집단면역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63.9%),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돼서’(54.8%), ‘접종하면 일상생활에서 더 안심될 것 같아서’(52.3%)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6월2일 AZ 위탁의료기관 예방접종 시행지침을 개정해 잔여백신을 6월4일부터 코로나19 고위험군인 60살 이상에게 먼저 배정하도록 했다. 이제 60살 미만은 전화·방문 예약은 안 되고, 네이버·카카오 잔여백신 당일 예약시스템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진단은 지침 변경 배경에 대해 “상반기 접종 목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60살 이상 어르신에게 최대한 많이 접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병·의원에 예약된 잔여백신 예비 명단은 네이버·카카오 시범사업 기간인 6월9일까지만 유효하고, 6월10일부터는 명단에서 60살 미만은 빠진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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