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공익제보자’라고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에드워드 스노든이었다. 스노든이 홍콩에 있는 고급 호텔 객실 안에서도 누가 볼까 담요를 뒤집어쓰고 노트북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다큐영화 속 이미지는 꽤 강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글렌 그린월드 기자를 만나서 미 국가안보국(NSA)과 중앙정보국(CIA)의 무작위 정보감찰 프로그램 등을 고발하기 위해 전자우편을 암호화하고, 만날 때 질문과 답변을 정하는 등 보안과 경계를 풀세팅했던 스노든처럼, 거대한 부패를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통째로 걸어야 하는 그 누군가. 2013년 고발 이후 아직도 세계를 떠돌며 숨어 지내는 은둔자. 내가 생각하는 공익제보자는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공익제보지원팀에서 일해보니, 공익제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오늘 아침 6시2분에 경기도 ○○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쌩하고 지나갔어요.” 경기도 ○○시에 사는 □□□씨는 그 새벽녘에 얼마나 오들오들 떨었을까. 생각만 해도 춥다.
“밤 10시15분~20분 사이였어요.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도 버스가 속도를 내면서 달려오다가 제 앞에서 멈추는 듯하더니 그냥 가버렸어요.” 야근을 끝내고 매일 밤 10시 넘어 해당 버스를 타야 하는 또 다른 제보자는 자신을 지나치는 무신경한 버스 때문에 20~30분을 걸어서 집에 가거나, 다시 20분 넘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버스 정류장에 수많은 공익제보자가 있었다.
공익제보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해둔 467개의 법을 위반한 행위를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버스 무정차’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6조 1항을 위반한 행위다.
경기도 부천시 한 주택가에 노란 먼지가 심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부천시청 공무원들은 무작정 제보가 들어온 지역 일대를 순찰했다. ‘노란 먼지’의 직접적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인근 금속 제조 공장이 대기배출시설 필터를 갈지 않아 금속 가루가 뿌옇게 내려앉은데다 대기오염물질을 흡착하는 활성탄도 훼손된 채 방치한 사실을 적발했다. 사업주에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한 장애인 단체가 운영을 부실하게 한다는 제보를 조사해보니, 그 단체 대표가 자기 개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장애인 단체 보조금으로 월급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매달 인건비 169만원이 보조금에서 나갔다. 게다가 보조금 가운데 100만원은 대표 아들 계좌로 다시 입금되고 있었다. 장애인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한 경기도 ○○시는 단체에 지급한 보조금 2018만원 전액을 환수 처분했다.
노란 먼지, 자세히 본 사료…눈물염증을 치료하는 기능성 애견 사료에 치료와 상관없는 소염제가 들어 있어 조사해달라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실제 치료 기능이 없음에도 ‘치료를 돕는다’는 허위 과장 광고 사실이 확인된데다 사료 성분 등록을 하지 않은 사실도 적발됐다. 제조업체에 ‘사료 폐기 계획서’를 제출토록 하고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사료관리법 위반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공익제보자들은 모두 내부 신고가 아닌 외부 신고자다. 노란 먼지 제보자는 경기도 부천에 사는 시민이었다. 집 앞에 떨어진 노란 먼지를 허투루 보지 않고 신고했다. “이상하게 집 앞에 주차해놓은 차 위에 노란 먼지가 앉아요. 집 건물에도 그렇고요.”
장애인 단체 제보자는 여러 장애인 시설이 같이 들어가 있는 건물을 자주 방문하는 시민이었다. 한 사무실 불이 늘 꺼져 있었다. 그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허탕 치고 돌아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투덜대는 것을 듣기도 했다. 애견 사료 제보자는 예상 가능하듯, 눈물이 심한 강아지를 위해 사료를 샀다가 강아지가 사료를 먹지 않아서 성분을 살펴보다가 의문이 들어 제보한 소비자였다.
이렇게 주로 신고 화면 등을 통해 만나는 공익제보자들은 일상의 불법으로부터 동네와 주변을 지키는 ‘홍 반장’에 가깝다. 사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 ‘보호’ 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많은 내부 신고자에게 조직이 펼치는 어마무시한 보복과 불이익 때문이다. 언론에서 흔히 보도되는 공익제보자들도 주로 내부 신고자다. 내부 신고자만 알 수 있는 사실을 증거 자료로 확보해서 제보하는 경우 부패와 불법의 정도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엔진 결함을 알고도 리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신고해 결국 해직 처리된 김광호씨, 하나고의 입시 부정을 알리고 해임됐다 해임 무효 처분을 받아냈지만 결국 학교를 떠난 전경원 교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공익신고는 꼭 내부 신고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보 페이지에 접속해 신고서를 작성하는 적극성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불법행위에 눈감지 않는 예민함과 사진 촬영 등 증거를 확보하는 철저함과 귀찮음을 무릅써야 하지만.
신고 내용이 사실로 확인돼 행정처분이나 법적 처분이 내려지면 공익제보지원위원회의 공익성 등에 대한 심의에 따라 포상금이 지급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청렴포털이 중앙 공익신고 창구이지만 경기도, 서울시, 부산시, 대구시, 인천시 등 대부분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 서울특별시교육청·경기도교육청 등 지역 교육청도 자체 공익신고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 지역 일은 그 지역에 신고하는 게 제일 좋다. 스노든만이 제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홍 반장’이 될 수 있다. ‘홍 반장’이 많아지면 세상은 조금 더 안전하고 깨끗해지지 않을까.
박수진 경기도 공익제보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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