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 기사를 쓰고 무려 8년이 지난 뒤 갑작스럽게 묻는 나에게 그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속으로 엄청 원망했죠.”
그는 2012년 내가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 내부고발을 한 공익신고자였다. 그가 일하던 특목고가 신입생을 선발할 때 교육부 지침을 어기고 대입에 유리한 내신 성적을 반영하고 중학교별로 가중치를 뒀다는 내용이었다. 증거 자료가 촘촘하게 첨부된 제보였고, 지역 교육청 감사 결과 제보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 공익신고의 결론은 뭘까. 2012년 기사가 나갔고, 휴직을 신청한 제보자에 대해 학교는 이듬해 4월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 절차 미준수로 징계 처분 취소 명령을 하자, 학교는 ‘절차를 지켜’ 다시 파면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다시 내려진 파면 처분에 대해 ‘해임으로 정정하라’는 결정을 했고, 제보자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법원은 징계 무효 결정을 내렸다. “위법한 입학전형 내역은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없다.” “위법행위를 알렸다는 이유로 신분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판결문은 중요한 말을 새겼다. 제보 이후 첫 승리를 거두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싸움은 끝날 줄을 몰랐다. 학교는 항소와 동시에 사건과 무관한 제보자의 과거를 문제 삼기 시작했고, 제보자는 결국 소송을 중단하고 교직 생활을 접었다. 학교는 행정처분 몇 개를 받는 데 그쳤다.
이 3년이 제보자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쉽게 가늠할 수 없다. 학교는 문제가 불거지고 제보자를 파악한 뒤 제보자에 대한 온갖 트집 잡기를 시작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렸다거나, 주차선을 잘 지키지 않는다거나, 키우는 강아지가 많이 짖어 이웃에 불편을 끼쳤다거나…. 실제 징계 사유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제보자의 제자들에게도 사실과 다른 말로 제보자를 모욕했다. “참 야비했다.” 제보자는 제보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배제되고 모욕당하고 만신창이가 됐다.
많은 공익제보자에게 유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102건(134명)의 주요 공익제보 사례를 추적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탐사기획 ‘갈 길 먼 공익제보’, 2017), 공익신고자 134명 가운데 81명(이하 중복응답)이 파면·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받았고, 36명은 민형사상 고소·고발됐고, 30명은 직장 내 따돌림과 상사의 압박을 경험했다.
제보를 준비하며 만난 감동적인 시간여러 불이익을 예견하고서도, 내부고발을 강행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입시만을 위해 달려가는 학교에서 어느덧 누구보다 적극 동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행복하지 않았다.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보하기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관련 단체를 찾아가서 상담했을 때 “교육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가 맞다”라고 학교의 불법성에 동의하는 말을 들은 순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학교 내부에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거스르는 건 안정된 직장과 생계, 그동안 교사가 되기 위해 쌓아온 시간을 허무는 일이다.
내부 공익제보자가 여러 불이익을 감수하고 제보하는 데는 이렇듯 이해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정의감, 혹은 공적 책임감이 크게 작용한다. (물론 사적 보복과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비롯한 신고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신고자가 신고를 이유로 보복받을 경우 보호조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보상금, 포상금, 불이익조치 원상회복을 위한 구조금도 지급한다.
이야기에 반전이 있다. 내가 취재했던 제보자는 사실 앞서 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 제공하는 여러 보호조치 등의 대상이 되는 공익신고자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다. 법에 따르면 그의 제보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하는 공익침해행위 신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공익침해행위를 법률이 정한 284개의 법률 위반 행위로 제한한 탓이다(2020년 11월20일부터는 467개로 늘어난다). 제보자가 제보했던 2012년에는 180개 법률 위반 행위 신고만이 공익신고로 인정됐다. 고등학교 입학 전형·절차 등을 정한 초중등교육법은 그때도 지금도 공익침해 법령이 아니다. 사립학교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사학 비리 신고자가 내부 신고를 하고도 존재하는 보호조치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적 언어로 ‘공익신고자’로 불린다. 법의 언어가 포괄하지 못하는 제보자를 상식의 언어는 포괄하고 공감한다.
나는 지난 6월부터 경기도에서 공익제보 사건을 접수·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법의 언어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무수한 제보자를 만나 그 틈새를 고민하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것이고, ‘틈새’를 열어 제보자가 제보 이후 겪을 고통의 시간에 조력할 방법을 찾아나가려 한다. 또한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말하고 제도 개선책을 함께 논의하려 한다.
고민의 근간에는 사건 발생 초기 기사 몇 건을 쓴 것 외에는 취재하지 않았던 제보자가 있다. 그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제보자는 교직을 떠난 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고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저는 운이 좋게 다른 길을 찾았지만 많은 공익제보자가 생계 곤란 등의 고통 속에 신고를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보자가 제보를 후회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뒤늦게 연락한 나에게 그가 남긴 말이다.
박수진 경기도 공익제보지원팀장
*‘제보자들’은 11년간 기자 생활을 한 뒤 현재 경기도 공익제보지원 팀에서 일하는 박수진씨가 제보자들을 만나며 깊어진 생각을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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