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제2박사방’ 보니…남고생 피해자, 그걸 지켜보는 1천명

가해 행위를 저지른 뒤 피해를 호소하는 남자 중·고등학생들,
연령이 낮아진 ‘제2의 박사방’은 여전
등록 2020-11-29 20:13 수정 2020-12-02 11:56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우리는 2019년 7월부터 1년 넘게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최근에는 성착취 영상 공유가 빈번히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아 성착취물 공유가 줄어든 건 맞다. 그러나 성착취 영상을 소지하는 이들을 다 잡아 원본을 삭제하는 수사력이 마련되기 전에는, 디지털성범죄가 근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침에 눈떠서 텔레그램을 확인하면 또 다른 디지털성범죄의 현장이 펼쳐져 있다. 요즘 가해자들은 이전에도 ‘유명’했던 ‘녀’라며 불법촬영 영상을 재유포하고, “귀한 자료를 풀어줬다”며 칭찬한다. 아무 말 없이 영상만 올리는 이도 적잖다. 가해자들에게 칭찬받은 또 다른 가해자는 “쟤 이름 알려줄까?”라며 신나서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유포한다. 심지어 성적 사진 합성물 피해 사진을 돌려보고는 “시집 다 갔네ㅋㅋㅋ”라며 거리낌 없이 성희롱한다.

가해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피해 영상물을 구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귀여운 중학생 사진 달라” “박사방 자료 없냐”라는 대화 등이 지속해서 올라온다. 이들의 대화를 살펴보는 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들은 n번방 사건이 공론되고 디지털성범죄를 처벌하는 법이 생겼음에도 ‘텔레그램’을 활보한다. 텔레그램 안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막을 이가 아직도 없다.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찍어 공유한 ‘중앙정보부’방에서 일명 ‘지인능욕’을 의뢰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그런 범죄가 이뤄지는 대화방 모습.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찍어 공유한 ‘중앙정보부’방에서 일명 ‘지인능욕’을 의뢰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그런 범죄가 이뤄지는 대화방 모습.

제보 절반 이상이 10대 피해자

n번방 사건 이후, 세간에 ‘최초 신고자’로 알려진 우리에게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제보가 들어온다. 제보 중 본인을 10대라고 밝힌 피해자가 절반 이상이다. 이 중에는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르다 ‘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다. 때로는 본인이 디지털성범죄 가해를 저지른 것 같다며 반성을 쏟아내기도 한다.

“16살 남학생입니다. 제 잘못인 건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A의 제보를 보고, 우리는 텔레그램 안에서 자경단을 자처했던 ‘중앙정보부’ 대화방을 떠올렸다.

‘중앙정보부’방 운영진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너네 지인 사진을 가져오면 성적 사진과 합성해주겠다”(일명 ‘지인능욕’)고 광고한 뒤, 연락한 ‘의뢰인’과 대화하며 신상정보를 확인했다. 어느 정도 신상이 파악되면 “디지털성범죄를 의뢰한 가해자”라며 이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갈무리해서 공개했다. 또 지인능욕을 의뢰한 가해자들에게 개인정보(이름·나이·학교)와 잘못했다는 내용이 적힌 반성문을 쓰도록 했고 반성문을 읽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중앙정보부’방에 공개하기도 했다. 공개된 의뢰자는 미성년자가 많았다. ‘중앙정보부’방을 운영했던 닉네임 김재규(전아무개) 또한 17살 미성년자였다. 김재규는 지난 9월 1심에서 장기 5년, 단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A는 우리에게 성착취 피해를 호소했다. ‘중앙정보부’방의 가해 시기와는 달랐다. A는 “그때 잠시 미쳤는지 지인 사진과 성적 사진을 합성해달라고 가해자에게 요청했는데, 가해자가 내가 요청한 사실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며 “가해자가 내 전화번호는 물론 피해자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도 알고 심지어 내 집주소도 알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기에 제보한 B 역시 같은 범죄 유형의 피해자였다. A처럼 본인 또래의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가해자였다가 피해자가 됐다. 가해자는 B에게 링크를 보내며 “이 게시글에 들어가서 성희롱 댓글 달아봐”라고 했고, B가 댓글을 달자마자 그 화면을 ‘캡처’해 피해자에게 알리겠다며 B를 협박했다.

가해 행위를 저질러놓고 본인의 피해를 호소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는 ‘10대 아이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는 게 옳을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일주일 넘게 고민했다. 그저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신고하라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가해자였지만 피해자가 되면 이렇게 절실해지는 이들의 메시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A와 B를 비롯한 미성년 남성들의 개인정보와 유출된 사진이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지 확인하고 신고하려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해 정황이 담긴 캡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회신이 오지 않거나, 우리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리라고 생각했는지 계정 자체를 삭제하기도 했다.

가해자였다가 피해자가 된 미성년 남성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에 윤리적인 고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본 사진들에서 성적으로 합성돼 피해를 입은 여성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본인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유통’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쉽게 범죄자가 되다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텔레그램에 성착취 영상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며칠 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본 미성년 여자 중학생 C와 남자 고등학생 D의 경우는 피해가 심각했다. 300명 넘게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선 C의 일상 사진과 딥페이크(사진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영상화하는 것) 영상, 성적 사진과 합성한 합성물들이 올라왔다. 200명가량 참여한 두 번째 대화방, 수십 명 규모의 세 번째 대화방에서도 C의 합성물이 재유포됐다. 가해자는 두 달 전부터 피해자의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하루에 한 장씩 성적 사진 합성물을 올리겠다”고 공지했다. 세 대화방을 합쳐 총 500명이 넘는 참여자에게 C의 합성물을 보고 ‘성희롱’하도록 유도했다. “지금 이 방에 C를 강간하려는 애들만 몇 명이냐”는 가해자들의 ‘농담’이 오갔다.

D의 피해도 막아야 했다.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 그리고 다니는 학교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1200명 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합성된 D의 사진이 올라왔다. “D가 오늘 올린 사진 가져왔다” “이 방 참여자 200명 데려가서 단체로 강간하고 싶다”는 말이 오갔다. 대화방 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참여자 수는 계속 늘었다. ‘강간’을 하겠다는 가해자들이 우글대는 범죄 현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경찰청에 신고하고 계속 그들의 대화 화면을 갈무리해 증거를 남기는 일이었다.

“지인능욕 글 작성해서 보내면 (피해자) 신상 알려준다” “지속적으로 지인능욕 댓글 남기면 다른 사진도 줄게” 등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말’만 잘하면, 더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을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은 순화한 표현이다. 이를 보는 대화방 참여자는 1천 명이 넘는다.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 무료방’의 회원 수가 1천 명이었다. 제2의 박사방은 오늘도 살아남아 있다.

최근 경기도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몸캠피싱’(영상통화를 녹화해 퍼뜨리는 성착취) 범죄가 일어났다. 몸캠피싱을 당한 남성 피해자가 한 학급에만 2명 있었다. 몸캠피싱 피해를 입은 학생 E는 랜덤채팅을 하다가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유했고, 이후 상대방이 원하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자 돈 협박이 시작됐다고 한다. 학생 F는 담임교사 최아무개씨에게 피싱 문자가 전송됐다. 최 교사에게 전송된 문자에는 학생 F가 자위 행위를 하는 사진과 학생의 이름, 연락처까지 있었다. 학생 E와 F 모두 돈 협박을 당한 뒤 부모님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해 더 이상의 피해는 막았다.

‘추적단 불꽃’은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다. 이들은 성착취 텔레그램 대화방 100개에서 목격한 내용을 담은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펴냈다.

‘추적단 불꽃’은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다. 이들은 성착취 텔레그램 대화방 100개에서 목격한 내용을 담은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펴냈다.

누가 이들을 피해-가해의 경계선으로 내몰았나

최 교사는 한 학급에 피해자가 2명이나 생겨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피해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최 교사는 우리에게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디지털성범죄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 사이에 익명으로 질의응답을 하는 ‘에스크’를 통해 성희롱 발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익명이다보니 가해 학생을 잡기 어렵다”고 답했다. 최 교사는 “이성에 한창 관심 많을 시기이고, 모르는 이성과 쉽게 랜덤채팅으로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해자는 도서관 당신 옆에 앉은 그 사람일 수도,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 아침에 우리와 같은 지하철에 탄 10대일 수도 있다. 자신의 성을 보호하는 법도, 다른 이의 성을 존중하는 법도 모른 채 어른이 될 청소년들은 계속 자라나고 있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성범죄가 ‘범죄’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그렇다, 사회가 변하는 건 맞다. 그러나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조주빈(박사)이, 문형욱(갓갓)이 잡혔다고 디지털성범죄가 끝난 건 아니다. 여성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디지털성범죄의 근절은 “남의 사진을 함부로 공유하고 희롱하는 행위는 놀이가 아닌 범죄”라는 인식의 합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합의는 어른들이 이끌어야 할 몫이다. 지속해서 낮아지는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에 책임감을 느끼는 어른이 많아지길 빈다.

추적단 불꽃

*‘추적단 불꽃 모니터링’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추적단 불꽃’과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