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 지난 2020년 가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는 22살 청년의 이름을 다시 부르짖는다. ‘전태일 3법’을 만들자고 국회를 압박한다. 왜, 다시 전태일일까. “50년 전 전태일 노동자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일터는 달라지지 않았”(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의 마지막 절규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원스레 답하지 못한다.
노회찬재단은 올해 ‘투명 노동자’에 주목하는 ‘6411프로젝트’(제1323호 참조)를 진행 중이다. ‘6411’의 연장선으로 노회찬재단은 ‘2020년 전태일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젝트를 9월 한 달 동안 진행했다. 김소민 자유기고가와 이철 작가가 일터·나이·성별은 각각 달라도 전태일과 ‘닮은 얼굴’을 한 8명을 전국 곳곳에서 만났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르포와 일기 등의 형식으로 기록했다. <한겨레21>은 전태일 50주기를 한 달 앞둔 10월 매주 이들의 기록을 전한다._편집자주
*‘2020 전태일의 일기’ 도움 주신 분들강언주(부산 에너지정의행동) 권순대(경희대학교) 박미경(전태일재단) 박상희(원전 노동자) 박정훈(라이더유니온) 솔가(뮤지션유니온) 안연정(청년허브) 오승은(공공운수노조) 오진아(소셜디자이너Doing) 이자스민(전 국회의원) 이정기(봉제인노조) 홍진아(빌라션사인)
홍창근(가명)씨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한다. ‘방사선 관리’가 그의 일이다. 6년째다. 원전을 들고 나는 모든 사람은 방사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원전 내 여러 설비와 기계 장치도 방사성 핵종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 원전 내 작업장에서 일하다보면 여러 용품, 예를 들어 마스크·장갑·장화·의류 등이 방사성물질로 때가 탈 수도 있다. 방사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부터 사람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 일을 ‘방사선 관리’라 일컫고, 이 일을 외부 업체에 맡긴다.
“영화 <판도라> 보셨어요? 밸브가 막 터지려고 하는데 현장에 들어가서 파이프 용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한전KPS 협력업체고, 그 옆에서 방사선 계측기 들고 막 얼마 나온다, 빨리 나갑시다, 하는 게 저흽니다. 사무실에서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이 한수원 직원이고요. 영화에서는 발전소장이 현장을 막 돌아다니는데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방사선 관리는 여러 업무로 나뉜다. 방사선 관리 구역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 그곳에서 작업이 진행될 때 방사선량을 확인하는 일, 방사능 측정 장비와 원전에 설치된 방사선 감시 계통을 운영하는 일, 방사선을 배출하는 물질(핵종)로 오염된 구조물과 구역을 제염(오염 제거)하는 일, 작업시 사용한 용품을 세탁하는 일, 세탁시 발생한 폐수 등 액체 폐기물을 농축하고 고형물로 만들어 처리하는 일, 다 탄 핵연료 등 여러 방사성폐기물을 드럼에 넣어 옮기는 일 등등. 사람마다 담당 업무가 정해졌지만, 일은 많고 손은 부족하니 일마다 옮겨다니며 붙어야 한다. 홍창근씨 동료는 20명 남짓이다.
“한수원에는 폐기물 관리 파트라고 해서 감독들이 있습니다. 파트장부터 해서 예닐곱 명이 있습니다. 담당하는 일이 따로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요구하는 게 다 달라요. 급하다 그러면 팀원들 일로 째고, 또 저리 째서 일해야 하고. 서류상으로는 우리 회사 현장 대리인을 통해 업무 요청을 해야 하지만, 일이 그렇게 못 돌아갑니다. 한수원 감독들이 직접 지시합니다.”
한수원은 원전을 관리하는 일의 여러 분야를 외부 인력으로 채운다. 발전설비 정비, 원전 내·외부의 여러 위험 요인을 측정하는 계측기와 설비 제어 시스템 정비, 바닷물을 끌어오거나 폐수 처리 시설을 유지하고 정비하는 일, 그리고 방사선을 관리하는 일 등이 그렇다. 발전설비를 유지·보수하고 정비하는 일은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전KPS가 맡는다. 이외의 일은 모두 용역업체에 준다. 한수원은 얼마 전 월성 1·2호기의 방사선 관리 용역을 ‘기간 24개월’ ‘예비가격기초금액 193억원’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 홍창근씨가 5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한 업무를 하는 동안 일대일로 자신을 담당하는 한수원 감독은 열 번 바뀌었다. 그는 맡은 업무에 자신이 있다.
“지난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얘기가 나오면서 계약 기간을 줄여서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도 월급 주는 회사가 바뀌었는데, 이전 회사는 5년 가까이 했습니다. 3년 따고 연장하고 연장해서. 그냥 궁금해서 은행 대출을 조회해봤는데 재직 기간이 안 뜨더라고요. 연차는 신입 수준으로 원상 복귀됐습니다. 봉급은 노조가 신경 써서 연차 쌓인 대로 가져왔습니다.”
박성식(가명)씨는 20년 넘게 원전에서 일하고 있다. ‘월급 주는 회사’만 여덟 번이 바뀌었다. 사람은 남아서 같은 일을 하지만, 회사는 들고 난다. 사장 얼굴을 보는 일도 힘들다. 회사 운영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면서 사장이 현장에 얼굴 비치는 일이 더욱 줄었다. 용역비는 노무비(현장 인건비)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1인 객단가는 연 1억3천만원 수준이다. 50명 규모, 2년 기간의 용역이면 부가세를 포함해 143억원이다. 여기서 노무비를 제외한 93억원 정도가 사장 통장에 ‘꽂힌다’. 작업에 필요한 용품은 한수원이 사서 제공하니, 용역업체에 원전 사업은 ‘꿀단지’다.
일용직 노동자가 걸레질하듯 제염“제 첫 봉급이 이거 떼고 저거 떼니까 80만원. 이거 갖고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지금은 단가가 높아요. 엔지니어링 단가를 계속 높여줬으니까. 근데 1억3천 중에서 8천 넘게 사장이 가져가버려요. 아이엠에프(IMF) 이후에 대한민국 절반 이상을 용역으로 만들어버렸는데,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했냐 말이에요. 발전소 지을 때도 보니까, 대기업이 수주해서 얼마 떼고 내려주고, 받은 놈이 또 얼마 떼고 내려주고. 와서 일하는 애들 보니까 (하청의 하청이) 네다섯 번째 애들이야.”
3년 전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됐다. 원전을 해체하는 일이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산업으로 떠올랐다. ‘1천조원의 시장, 원전해체 시장’ 같은 선전 문구도 등장했다. 전세계에 수명이 끝나 가동을 멈춘 원전은 130여 기, 수명을 다한 원전은 계속 늘어날 터였다. 원전을 해체하려면 원전 내 저장 수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을 줄여야 하니 원전 내 오염 지역과 설비를 제염해야 한다. 제염은 오염물질이 묻은 표면을 깎거나 닦는 일이다. 깎거나 닦아낸 건 드럼통에 넣어 방사성폐기물로 처리하고, 남은 건 원전 밖으로 빼서 다시 활용할 수 있다. 모두 방사선 관리 용역의 일이다.
“원자로 격납용기 두께 잰다고 돔 전체에다 비계를 쳤어요. 작업 끝나고 그걸 이제 제염하는데, 아저씨들 전부 다 일용직이야. 이쪽이 오염됐으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닦아야 한다고. 근데 집에서 걸레질하듯이 닦아버려. 그럼 전체로 전이된다고요. 폐로에 들어가면 더 바빠지는 게 우리 직종이에요. 근데 나는 걱정되는 게 한수원이 이걸 용역으로 잘게 쪼개서 철재류, 고무류, 케이블류 이렇게 발주 넣어버릴까봐. 이렇게 하면 어떤 사람이 와서 일하겠어요. 드럼 5개로 끝낼 수 있는 걸 200개, 300개로 만들어버린다고. 폐로는 기술이 하고 장비가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해요.”
홍창근씨의 6년 전 첫 연봉은 2700만원.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급하게 사람을 찾은 터라 급작스레 높인 연봉이었다. 이듬해 들어온 후배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방사선 관리 용역 노동자의 연봉 평균은 4천만원대다. 한수원 직원의 연봉 평균은 9천만원이 넘는다. 한수원이 밝힌 자사 직원의 피폭선량 평균은 연간 0.06밀리시버트(mSv), 협력업체 평균은 연간 0.65mSv다. 홍창근씨가 액체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받는 방사선량은 연간 15mSv에 육박하기도 한다. 일은 사람이 하고, 개인이 맞닥뜨리는 위험은 평균치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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