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태일] 14시간 미싱 돌리다 한 번씩 하늘 봐요

37년째 미싱 돌리는 홍은희씨… 젊은이들 없는 산업에 단가 후려치기가 극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22살 청년은 불타는 몸으로 절규했다.“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법 11조를 개정하라.”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하라.”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50년이 지난 2020년 가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는 22살 청년의 이름을 다시 부르짖는다. ‘전태일 3법’을 만들자고 국회를 압박한다. 왜, 다시 전태일일까. “50년 전 전태일 노동자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일터는 달라지지 않았”(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의 마지막 절규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원스레 답하지 못한다.

노회찬재단은 올해 ‘투명 노동자’에 주목하는 ‘6411프로젝트’(제1323호 참조)를 진행 중이다. ‘6411’의 연장선으로 노회찬재단은 ‘2020년 전태일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젝트를 9월 한 달 동안 진행했다. 김소민 자유기고가와 이철 작가가 일터·나이·성별은 각각 달라도 전태일과 ‘닮은 얼굴’을 한 8명을 전국 곳곳에서 만났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르포와 일기 등의 형식으로 기록했다. <한겨레21>은 전태일 50주기를 한 달 앞둔 10월 매주 이들의 기록을 전한다._편집자주

*‘2020 전태일의 일기’ 도움 주신 분들강언주(부산 에너지정의행동) 권순대(경희대학교) 박미경(전태일재단) 박상희(원전 노동자) 박정훈(라이더유니온) 솔가(뮤지션유니온) 안연정(청년허브) 오승은(공공운수노조) 오진아(소셜디자이너Doing) 이자스민(전 국회의원) 이정기(봉제인노조) 홍진아(빌라션사인)

홍은희(52)씨는 37년차 봉제노동자다. 전국화학섬유식품 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을 맡고 있다.

미싱(재봉틀) 6대 소리가 잠깐 멈췄다. 점심시간이다. 한 끼에 4500원, 매일 똑같은 식당에서 배달해준다. 제육볶음, 된장찌개, 멸치볶음 반찬이다. 10명이 일하는 사업장엔 먼지가 카펫처럼 깔려 있다. 모직 재킷을 만드는 중이라 먼지가 더 심하다. 눈이 따갑고 재채기가 난다. 45살 막내부터 62살 큰언니까지 이런저런 기관지 질환이 있다.

한 동료는 밥을 5분 만에 먹었다. 예전에 2분 만에 먹는 동료도 봤다. 국에 밥을 말아 마신다. 우리는 모두 ‘객공’, 만든 옷 수대로 임금을 받으니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들 한다. 다들 위장병을 달고 산다. 바지는 한 벌에 5천원, 재킷은 1만원 정도 받는다. 9월부터 11월까지 성수기에 바짝 돈을 벌어야 한다. 동남아 등지에서 싼값에 옷이 들어오고 공장도 영세해지니 성수기가 나날이 줄고 있다. 비수기엔 땡전 한 푼 못 버는 달도 있다.

타이밍 먹고 새벽 서너 시까지 일하던 시절

그래도 나는 이제 여유를 좀 부리고 싶다. 두 딸이 다 취직했으니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놨다. 점심을 10분 동안 먹었다. 동료들은 요즘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는데,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 이른 퇴근을 한다. 토요일엔 오후 6시까지만 일한다. 그러면 성수기에 한 달에 400만원 정도 손에 쥔다.

밥이 ‘떡밥’이다. 그래도 먹을 만하다. 진짜 냄새도 맡기 싫은 음식은 김칫국이다. 아니, 김칫국이라고 불렸던 정체 모를 국이라는 게 맞겠다. 1984년 16살 때 수출업체에 처음 취직해 기숙사에 살며 만날 먹던 게 그 국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국 냄새가 식당 전체에 배어 있었다.

부모님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둘이다. 이모가 연결해준 공장에는 내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남동생이나 오빠 공부 뒷바라지하는 사연도 다들 비슷했다.

첫날, 8명씩 사는 기숙사 방에서 언니들이 무서워 한숨도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선 사장이 타이밍이란 각성제를 줬다. 새벽 3~4시까지 일했다. 명절 즈음엔 이틀 꼬박 일하기도 했다. 옷더미에서 한 시간씩 잠깐 졸다 깼다. 일요일에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아이들이 도망갈까봐 관리자들이 기숙사를 지켰다. 월급은 얼마인지도 몰랐다. 부모님이 다 가져가고 나한테는 한 달에 2천원 정도 용돈을 줬다. 여섯 달 정도 ‘시다’(보조작업자)를 하며 곁눈질로 미싱을 배워 ‘오야’(고참 재봉사)가 됐다. 거기서 1년을 일하다 다른 사업장에 취직했다.

첫 직장인 수출업체는 서울 종로5가에 있던 공장보다는 나았다. ‘이화사’. 1987년에 일했는데 아직도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 1층에 합판으로 다락을 만들어 2층처럼 썼다. 아래엔 미싱을 두고 위에선 재단을 했다. 똑바로 설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미싱 사이로 기어나와야 했다. 다락 한쪽에 베니어판을 치고 기숙사로 썼다. 아침 8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베니어판 뒤로 가서 잤다. 밥도 공장 안에서 먹었다. 일요일에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관리자들이 망을 봤다. 과자 하나 사 먹을 수 없었다. 아침에 배고파 김칫국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김치만 넣은 멀건 국이었다.

근로계약서도 4대 보험도 남의 일

“이렇게는 못 살겠다.” 6명이 모의했다. 사장한테 일요일에 밖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 요구하기로 했다. 벼르고 벼르다 한 명이 대표로 사장에게 다가갔다. 모두 맘을 졸이고 지켜봤다.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사장이 그 친구 뺨을 때리고 쌍욕을 해댔다. 그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 그땐 아무 말 못했다. 며칠 뒤 6명이 짐을 싸 다짜고짜 관리자들을 밀치고 나왔다. 그러다 청계피복노조를 알게 됐다. 노조랑 같이 종로5가 골목에 호소문과 대자보를 붙였다. 덕분에 8개월 만에 밀린 임금을 받았다. 그때부터 1990년까지 청계피복노조에서 함께 활동했다.

근로계약서는 첫 수출업체 이후엔 써본 적이 없다. 4대 보험, 나한테 해당된 적 없다. 아플 땐 사장이 며칠 봐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둬야 했다. 일을 쉰 적이 거의 없다.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다시 일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할 여유가 없었다. 생계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우리 애들은 대학까지 보내고 싶었다. 자정쯤 퇴근해 다음 날 식구들이 먹을 밥을 했다. 새벽 3시에 자고 아침 6시30분쯤 일어났다. 큰애 7살 때까지는 친정에서 맡아줬는데 이후엔 아이들끼리 내가 퇴근할 때까지 집을 지켰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커줬다. 딸들이 대학생이 됐을 때 방학이라도 아르바이트하지 말라고 했다. 여행 가라고 경비도 대줬다. 내가 못 해본 거 아이들이 맘껏 해보길 바랐다. 내가 1박2일짜리 여행이라도 가본 건 5년이 채 안 된다.

지금 일하는 곳엔 큰 창문이 있다. “하늘이 어쩌면 저렇게 예뻐.” 요즘 일하다 창밖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다. 미싱 앞에 계속 앉아 일할 때는 목부터 어깨까지 내려오는 통증을 참기 힘들다. 동료들도 대개 목디스크가 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일할 수 있게 일부러 ‘시다’ 몫까지 내가 한다. 환풍기도 없고 해도 못 보며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어릴 때 해를 더 봤다면 키가 더 자랐을까?

은퇴하면 긴 여행을 하고 싶어라

지금은 사업장에 젊은이가 없다. 40대 후반도 드물다. 일감이 주니 단가 후려치기가 심해졌다. 봉제 사업장이 몰려 있는 서울 창신동 주변에선 셔츠 한 장에 4천원 정도 하는데, 이 지역 외곽에선 1700원까지 후려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값에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겠다. 서로 정보가 없다보니 단가 후려치기가 더 쉽다. 내가 2018년부터 활동하는 서울봉제인지회에서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공정한 임금을 받으려면 기준 단가 같은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옷에 사고 난다. 하루에 서너 디자인을 만들 때도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그려온 그림이 내 손을 거쳐 옷으로 예쁘게 딱 떨어져 나올 때 뿌듯하다. 봉제는 내 기술이고, 이 일을 하게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동료들끼리 점심 먹고 30분 정도 같이 커피 마실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더 이 일을 할지는 모르겠다. 예전엔 40대 중반에 일 그만두고 여행 다니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큰딸은 아이를 낳았고, 둘째 딸도 곧 결혼한다. 적적해서 어떻게 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정말 혼자 한번 살아보고 싶다. 뒤돌아보면 철들고 평생 부모님이며 아이들이며 뒷바라지하느라 버거웠다. 은퇴하면 긴 여행을 하고 싶다.

김소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