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화상, 질식.
경남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노동자가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사고가 세 건 연달아 일어났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는 에스케이(SK)건설이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에 짓고 있는 1040㎿(메가와트)급 민영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말한다. 2017년 2월 착공해 2021년 4월 준공 예정이며 원·하청 포함해 약 3700명이 일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이하 노조)는 잇따른 산업재해에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한다. SK건설이 하청업체와 노동자 개인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떠넘겨 사고가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이 건설현장에는 SK건설이 ‘골든룰’이라고 이름 붙인 벌칙 조항이 있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재해자가 속한 하청업체와 팀에 불이익을 주거나,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어겼을 때 불이익을 주는 제도다.
벌칙 조항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산재를 막는 효과는 없으며 오히려 산재를 은폐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지난해 12월10일 사망한 김용균씨가 일하던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도 비슷한 페널티 조항이 있었지만 잇따른 산재를 막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일명 ‘김용균법’)이 통과되며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강화됐는데, 일부 기업에서는 이를 핑계로 골든룰 같은 벌칙 조항을 도입해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재 세 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청의 책임 강화’와 산재 벌칙 조항이 왜 모순되는지 알 수 있다. 재해자 동료들의 증언과 노조의 성명서를 토대로 사고를 재구성했다. 사용자인 SK건설과 성도이엔지는 노조와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모두 “경찰 조사 중이라 지금은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사용자 쪽이 입장을 밝히면 기사로 다룰 예정이다.
#산업재해 1. 개구부 추락 사건최아무개(55)씨는 SK건설의 하청업체인 다림건설 소속이었다. 매달 계약서를 갱신하는 계약직으로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소방 비계공(임시가설물 설치 역할)으로 일했다.
3월4일, 최씨는 전기전자동 1층 바닥에 뚫린 구멍(개구부)에 빠져 2.5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머리와 어깨, 갈비뼈에 골절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일시적인 기억상실증과 지능 저하를 겪었고 수술과 치료 뒤에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
건설현장의 개구부는 원래 뚜껑이 덮여 있어야 하지만 사고 당시 뚜껑이 제 위치에 없었다. 당시 최씨와 한 팀에서 일했던 정아무개씨는 “개구부를 덮고 있던 철판이 외부 충격이 있을 때마다 자주 움직였다”고 했다. 개구부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개구부에 “안전난간, 울타리, 수직형 추락방망 또는 덮개 등의 방호 조치를 충분한 강도를 가진 구조로 튼튼하게 설치”해야 하며 “덮개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뒤집히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3조 등).
최씨의 사고 뒤 정씨는 개구부에 잠금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는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그 뒤 정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SK건설이 2018년 8월께 만든 산재 벌칙 조항인 ‘골든룰’ 때문이다. 골든룰은 재해가 발생한 협력업체의 관리자나 근로자, 작업팀에 벌칙을 준다. 예를 들어 일반재해 1회가 발생했을 때 협력업체 관리자는 경고, 관리감독자는 교체, 근로자와 작업팀은 현장 퇴출된다.
현재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정씨는 과 한 통화에서 “골든룰이 있으면 산재가 은폐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재해자가 속한 하청업체와 팀의 동료 모두 산재를 숨겨야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씨의 사고에선 유일한 목격자인 정씨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증언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정씨는 “사용자 쪽이 처음 조사할 때 작업자 과실로 몰고 가려 했다”고 했다.
다만 SK건설은 골든룰에 대해 “구성원이 기준을 준수하고 경각심을 가지도록 해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이며, 노사협의체에서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합의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다림건설 현장소장은 “정씨에게 해고를 통보한 적이 없고 ‘협의 중이니 대기하라’고 했는데 그가 자발적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부당해고 구체신청을 했다가 다림건설과 합의했다.
오아무개(60)씨는 SK건설의 하청업체인 성도이엔지 소속이었다. 매달 계약서를 갱신하는 계약직으로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9월27일, 오씨는 공기재킷을 입고 그라인더(회전하는 숫돌로 금속을 깎는 기계) 작업을 했다. 공기재킷은 조끼처럼 생긴 작업복으로, 내부에 공기를 채워 용접할 때 나오는 열기가 몸에 바로 전달되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이날 조력공이 실수로 공기가 아닌 산소를 공기재킷에 주입했다. 공기 주입관과 산소 주입관이 똑같이 생겨 헷갈렸기 때문이다.
오후 1시10분께 그라인더 불꽃이 오씨의 공기재킷에 튀었다. 불꽃은 공기재킷 안에 가득 차 있던 산소와 닿아 폭발하듯 타올랐다. 동료가 급히 불을 껐지만, 이미 신체 면적 22%에 3도 화상을 입었다. 3도는 화상 중 가장 심각한 단계로 피하조직까지 손상돼 재생이 불가능하고 피부이식만 가능한 수준이다. 오씨는 현재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다.
사고 당시 발전소 현장에 상주하는 보건관리자 4명, 응급구조사 4명은 오지 않았다. 오씨는 화재사고를 당해 감염 위험이 있었지만 성도이엔지는 그를 사무실로 데려간 뒤 회사 승합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로 인해 응급처치가 1시간가량 지연됐다. 사고 직후 응급구조사를 바로 투입하거나 응급차를 부르지 않은 것에 노조는 “산재 페널티 제도 때문에 성도이엔지가 SK건설에 사고 사실을 숨기려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성도이엔지는 산재 은폐 의혹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SK건설 안전관리 담당자는 과의 통화에서 “오씨는 정상적으로 산재 처리됐으며 은폐하려 했던 적이 없다”고 반론했다. 그는 “사고가 나서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경우 응급구조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오씨는 화상을 입었지만 의식이 있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었다. 다른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응급차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 쪽은 “오씨는 3도 화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입장이다.
노조 쪽은 “사용자 쪽이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번과 같은 가스 주입관 연결 실수를 막기 위해 가스 종류에 따라 접속 부위의 크기와 모양을 다르게 하라는 정부 지침이 있다(안전보건공단 ‘공기재킷의 제작·사용에 관한 기술지침’). 서로 다른 가스관은 아예 연결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다. SK건설과 성도이엔지는 이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주아무개(48)씨도 SK건설의 하청업체인 성도이엔지 소속이었다. 매달 계약서를 갱신하는 계약직으로 올해 7월부터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배관공으로 일했다.
10월4일, 주씨는 팀원들과 함께 지름 84㎝의 대형 파이프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그즈음 SK건설이 12월27일까지 터빈 1호기 설치를 완료하고 시범가동을 해야 한다며 작업을 독촉했다. 아침 8시 일을 시작해 오후 5시에 마쳐야 하지만 이날은 연장근무를 했다. 오후 5시40분께, 작업을 위해 파이프 내부로 들어갔던 주씨가 쓰러져 있는 걸 같은 팀원이 발견했다.
주씨는 파이프 내부에 가득 찬 아르곤으로 인해 질식한 상태였다. 아르곤은 용접할 때 금속의 산화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불활성 기체다. 사고 당일 파이프의 다른 부위를 용접하면서 아르곤을 썼는데, 그때 사용했던 아르곤이 낮은 지대에 고여 있었다. 아르곤은 공기보다 무거운 기체라 공기를 위로 밀어낸다. 파이프 내부 바닥의 산소 농도는 4%에 불과했다. 한두 모금만 마셔도 뇌에 치명적이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농도다.
발견 당시 주씨는 호흡이 멈춰 있었고 맥박만 뛰고 있었다. 동료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관리자에게 연락했지만 20분이 지나서야 응급구조사 1명이 도착했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주씨가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밀폐 공간에서 노동자가 질식하는 일은 그동안 건설현장에서 수없이 반복해 벌어졌다. 그래서 법으로도 엄격히 안전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원청·하청)는 밀폐 공간에 노동자를 투입하기 전에 항상 산소·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작업 내용, 작업자 정보를 확인한 뒤 작업장 출입구에 게시해야 한다. 또 밀폐 공간 외부에 감시인을 배치하고 노동자에게 공기호흡기 등 보호구와 대피용 기구를 지급하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19조 등).
주씨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의 근로감독관은 과 한 통화에서 “사업주가 지켜야 할 밀폐 공간 작업규칙을 SK건설과 성도이엔지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말했다. 한편 주씨의 유족은 “10월5일 현장검증 당시 사용자 쪽 간부가 ‘우리는 그 작업을 시키지 않았다’고 부정하며 사망자 책임으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추락, 화상, 질식. 세 건의 산재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 쌓인 문제를 보여준다. 노조는 SK건설이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청업체와 노동자 개인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전가하다가 결국 사망사고까지 났다고 지적한다.
골든룰은 사실 SK건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사)도 곧 산재 페널티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공사 안전혁신실이 8월에 만든 ‘현장조직 산업안전 혁신계획’에는 위험작업에 대한 안전작업허가서 발행, 안전개선요구서 발행 등 공사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용균법 통과 뒤 정부가 공공기관에 “산재 사고사망의 획기적 감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 나온 대책이기도 하다(3월19일 관계부처 합동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
혁신계획에는 ‘안전평가제 상·벌점 제도’도 들어 있다. 공사·자회사·협력사의 관리자와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사고 기간이 길어지면 상점을 주고, 산재가 생기거나 안전수칙을 위반하면 벌점을 주는 제도다. 일정 기간 점수를 더해 인센티브와 벌칙을 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9월23일 상·벌점 제도에 반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상·벌점 제도가 “시설에 대한 구조적 개선 없이 시행되면 가장 힘없는 노동자에게 책임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노동자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모를 바꿔주지 않은 채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벌점만 부과하면, 노동자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모를 쓸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작은 사고가 났을 때 구조적 개선 없이 벌점으로 처리하면 당연히 자회사, 용역사 관리자들은 벌점을 모면하려고 사고를 은폐한다”고도 밝혔다.
실제 은 2015년 무렵까지 산재 페널티 제도가 운영된 대한항공의 직원들로부터 비슷한 증언을 들었다(제1218호 ‘대한항공, 산재 신청하면 팀 점수 깎았다’). 대한항공은 과거 산재 발생 횟수를 개인·부서 인사평가에 반영했다. 산재 신청을 할 때 주위 동료와 상급자의 눈치를 보는 구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산재가 은폐됐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과거 제도의 여파로 지금도 일하다 다쳤을 때 산재 대신 병가나 병휴(휴가)를 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신철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산재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팀원과 관리자들이 벌점을 받고 문책을 당하는데 과연 마음 편하게 산재를 신고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원청이 진짜 산재를 막고 싶으면,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시설을 개선하면 된다. 그리고 하청업체에서 산재를 은폐했을 때 벌점을 주면 된다”고 말했다.
고성(경남)=변지민 기자 d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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