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버려진 플라스틱이 전세계 바다를 떠돌면서 지름 5㎜ 이하 미세플라스틱으로 잘게 분해된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바다생물들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고, 결국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전세계 해양쓰레기에서 80% 정도가 바로 플라스틱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아시아의 사회적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재활용 등의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로 전환하는 일을 꾀한다.
<한겨레21>은 기획연재 ‘플라스틱을 대하는 오늘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한국, 홍콩,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 있는 환경 관련 사회적기업가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이들은 7월2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국제포럼’(한겨레신문사/씨닷 주최·<한겨레21>/씨닷 주관·서울시 후원)에 참석해 환경보호와 자원순환을 통한 변화 사례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_편집자
6월4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창가로 비치는 햇살 속에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너 살로 보이는 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입을 반쯤 벌린 채 낮잠을 잔다. 여느 동네 카페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3년 전 시작한 일회용 컵 안 쓰기
카페 한쪽 벽면에 텀블러 30여 개가 진열돼 있다. 새것이 아니라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있는 텀블러다. 텀블러 진열대 아래에는 도서관 대출카드처럼 대출일과 반납일이 적힌 ‘텀블러 대여 카드’가 있다. 카페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일회용 빨대나 일회용 컵을 찾을 수 없다. 카페 한쪽에는 스테인리스·유리·쌀 재질의 빨대와 다회용 포장재, 천가방을 판다. 카페 뒤 창고에는 텀블러 500여 개가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카페 출입구 밖에는 무인 텀블러 반납함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일회용품 없는 카페로 유명한 ‘보틀팩토리’다. 음료 테이크아웃을 하려는 손님에게 회원 가입 뒤 텀블러를 빌려주고 나중에 돌려받는 ‘보틀클럽’을 운영 중이다. 정부가 지난해 8월1일 카페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기 한참 전부터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 ‘실험’을 해왔다. 디자이너였던 정다운(39)·이현철(35) 보틀팩토리 대표가 3년째 하고 있는 실험이다. 두 사람이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꿈꾼 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디자인 작업실을 얻어 ‘본업’에 열중하던 두 사람은 작업실에 오전 몇 시간만 문을 여는 팝업스토어로 카페를 열기로 했다. 정 대표는 플라스틱 등 환경문제에 관심 있었고, 이 대표는 카페 운영에 흥미가 있었다. ‘보틀카페’라는 이름을 붙이고 평소 꿈꿔온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정 대표는 “정식으로 카페를 차리는 것은 엄두가 안 났고 하루 몇 시간만 실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테이크아웃을 원하는 손님에게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받고 유리병(유리잔)에 음료를 담아줬다. 손님이 유리병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예상보다 취지에 공감하는 손님이 많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재활용 쓰레기 대란(2018년 4월)을 겪어 플라스틱과 일회용 컵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지만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없어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게 어려웠어요.“(정다운 대표)
카페 컵 공유 시스템 구상
4개월 동안 운영한 보틀카페에서 일회용품 없는 카페의 가능성을 엿본 두 사람은 카페끼리 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먼저 두 사람은 유리병 300여 개를 확보해 축제나 행사 때 빌려주는 서비스를 해봤다. 그다음에는 ‘카페 컵 공유 시스템’을 구상했다. 소비자가 회사 앞 카페에서 컵을 가지고 나와 집 근처 카페에 반납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카페 운영하는 분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의견을 들었어요. 병 300개를 빌려드린다고도 제안했고요.”(이현철 대표)
하지만 ‘시장조사’를 해보니 컵 공유 이전에 컵을 씻는 공간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 “취지에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카페 운영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만들어보자고 설득하려면 실제 카페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을 설득하려면 우리가 직접 카페를 해봐야겠더라고요.”(정 대표) “(컵 공유 시스템을) 상업적으로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우리의 문제의식이 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이 대표)
두 사람은 2018년 5월 ‘보틀팩토리’를 열었다. 번화가보다 손님이 적고 단골이 많은 동네 골목을 선택했다. 커피 원두는 포장 제품 대신 큰 통에 직접 받아오고, 탄산수 페트병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탄산수 제조기를 샀다. ‘영수증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 원하는 사람에게만 영수증을 발행하는 카드결제기도 들였다.
일회용품 없이 일주일 지내는 ‘유어보틀위크’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손님들도 텀블러를 가져오거나, 텀블러를 빌리기 위해 ‘보틀클럽’에 가입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9월에는 보틀팩토리를 비롯해 인근 카페 7곳이 손잡고 일회용품 없이 일주일 동안 카페를 운영하는 ‘유어보틀위크’(Your Bottle Week) 행사도 했다. 환경부는 2015년 전국에서 소비된 일회용 컵이 61억 개에 이른다고 추산했는데, 올해는 40억 개 밑으로 내려갈 것으로 내다본다. 두 사람은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문제를 재활용만으로 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 대표는 ‘개인적 관심’으로 2015년 6개월여 동안 무작정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의 수집·운반-선별-재활용 과정을 추적한 적이 있다. 일회용 커피컵이 여러 재질과 색깔이 섞여 재활용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해당되지 않아 민간업체에 지원금이 없다보니 재활용 시장에서 ‘찬밥’ 신세인 현실도 그때 알았다. 그는 “플라스틱 재활용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플라스틱 생산을 줄일지, 사회적 비용(처리비)이 반영되지 않은 일회용 플라스틱의 저렴한 가격이 합당한지 논의하는 단계로 이제는 옮겨가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석유 생산이 늘어날수록 플라스틱 제품이 더 많이 싸게 만들어지는 지금 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틀팩토리는 올해도 ‘일회용품 없는 카페는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알리려 한다. 축제나 행사에 텀블러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계속하고 유어보틀위크 행사도 할 계획이다.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 축제를”
“실제로 바뀌는 것을 보고 싶어요.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도 일회용 컵 문제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잖아요. 시기도 잘 맞고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 행사를 계속해보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이런 걸 계속 경험하다보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요?”(정 대표)
글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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