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플란(JEPLAN)의 홍보책임자 오키타 아이코.
영화 (1989)에는 쓰레기를 연료 삼아 달리는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DeLorean)이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 10월21일 미래로 떠난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2015년 10월21일, 일본 ‘제플란’(JEPLAN·Japan Environment PLANning·일본환경설계) 설립자 이와모토 미치히코는 영화 속 자동차와 똑같이 만들어진 드로리안에 탑승했다. 버려진 옷을 수거해 만든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달리는 자동차였다. 그가 대학 시절 영화를 보고 꿈꿨던 미래를 실제로 이룬 것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현재 제플란은 일본항공 등과 손잡고 2020년을 목표로 “헌 옷 10만 벌로 제트기를 날리자”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헌 옷으로 만든 바이오엔탄올을 제트기 연료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제플란은 헌 옷을 수거해 옷을 이루는 ‘면’은 바이오에탄올로 바꾸고, 폴리에스테르는 다시 섬유로 만드는 사업을 하는 회사다. 전세계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자원 순환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들의 도전은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고 있다. 6월21일 도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 빌딩에 있는 제플란 본사를 찾았다. 홍보 책임자 오키타 아이코를 만나 ‘모든 것을 순환시킨다’는 그들의 꿈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플란의 도전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한 섬유 상사 영업사원이던 31살 이와모토는 회사 공장에서 옷을 만든 뒤 나오는 막대한 섬유 쓰레기를 그대로 버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마침 1995년 일본 정부가 용기포장 리사이클법(분리수거와 재활용에 대한 법)을 만들었고, 그는 회사에서 페트병을 재활용해 섬유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이와모토는 이 과정에서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의류가 거의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섬유 재활용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광고
그러다 2006년 도쿄대 대학원생이던 26살 다카오 마사키를 만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기술경영을 공부하던 다카오와 이와모토는 10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났음에도 뜻이 맞았다. 기술적으로 옷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오사카대학과 공동연구를 추진했다. 2007년 1월 각자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플란을 만들었다. 자본금 120만엔이던 회사는 12년 만에 26억엔(약 281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제플란이 폴리에스테르 옷을 수거해 만든 재생 폴리에스테르.
제플란의 목표는 버려지는 옷 전부를 재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회사를 설립할 때 전세계에서 대안에너지로 떠오르던 바이오에탄올에 주목했다. 바이오에탄올은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 곡물에 포함된 당을 발효해 만드는데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재생에너지다. 하지만 연료를 생산할 때 막대한 식량자원이 소비돼 지속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당시 이와모토는 면티셔츠는 식물이 원료이니 바이오에탄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다카오가 이와모토의 생각을 오사카대학 공동연구로 연결해 현실화했다.
제플란은 2009년 이마바리시에 공장을 짓고 근처 수건 공장에서 나온 섬유 부스러기(면)를 가져왔다. 면에서 셀룰로스를 추출해 효소를 넣어 당으로 변환하고 이를 발효시켜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공정에 성공했다. 이렇게 생산된 바이오에탄올은 수건 염색 공장 보일러 연료로 공급됐다. 오키타는 “대략 100% 면으로 된 티셔츠의 경우 70%를 바이오에탄올로 바꿀 수 있다. 200g 티셔츠에서 바이오에탄올 140㎖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광고
면을 바이오에탄올로 바꾼다고 모든 옷을 재활용할 수는 없다. 전세계 의류 제품 가운데 약 60%가 석유를 정제해 만드는 화학물질인 폴리에스테르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제플란의 기타큐슈 히비키나다 공장은 폴리에스테르 옷을 수거해 잘게 쪼개 에틸렌글리콜에 녹이는 공정 등을 거쳐 다시 재생 폴리에스테르수지로 만들어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를 생산한다. 이 원료는 섬유로 바뀌어 다시 옷으로 탄생하거나 우산 부품 등 플라스틱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이와모토가 자주 이야기했던 “티셔츠를 다시 티셔츠”라는 꿈도 실현됐다.
기술은 완비됐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았다. 제플란의 사업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헌 옷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키타가 말했다. “사업 초기에는 재활용으로 돈 버는 기업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재활용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라는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이와모토도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티셔츠를 재활용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여러 기업을 돌았지만 처음에는 어디도 상대해주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와모토와 제플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가 재미를 느껴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바로 2010년 시작한 ‘후쿠후쿠(FUKU-FUKU, 후쿠(ふく)는 ‘옷’이라는 뜻)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의류 브랜드와 협력해 각 매장에 헌 옷 수거함을 비치해 지속해서 헌 옷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헌 옷을 수거함에 넣으면 해당 매장에서 옷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주고, 이를 받은 소비자가 다시 매장을 방문해 옷을 사도록 유도해 기업 매출도 늘리는 방식을 구상했다.
회사 인지도가 없어 처음에는 기업과 손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 의류·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이 제플란의 취지에 공감해 매장에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하며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키타가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무인양품을 포함해 처음에 5개 기업의 참여로 시작했다. 일일이 제플란의 취지를 말하고 설득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평가가 좋아졌다.” 실제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헌 옷 수거함을 비치한 매장이 수거함이 없는 매장보다 매출이 소폭 오르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은 기부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프로젝트는 사회공헌도 하고 기업 매출에도 도움이 됐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확대됐다.”
광고
현재 후쿠후쿠 프로젝트는 ‘브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파타고니아, 아식스 등 50개 넘는 유명 의류 브랜드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한다. ‘브링 스폿’(BRING Spot)이란 헌 옷 수거함은 일본 전역 의류 매장 1680곳에 설치됐다.
제플란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방점을 찍는 것은 소비자와 기업에게 “재활용이 옳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을 하면 즐겁다”이다. 제플란은 그래야 지속가능하다고 믿는다. 제플란이 영화 를 제작한 미국 NBC유니버설과 손잡고 쓰레기로 달리는 자동차 ‘드로리안’ 이벤트를 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이와모토는 대학 시절 때 본 영화를 떠올려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6만 명이 드로리안을 달리게 하겠다며 헌 옷을 내놨다. 오키타가 그 이유를 추정했다. “2015년 10월21일 이벤트를 앞두고 8~10월 헌 옷을 수거했는데 평균 1년에 수거될 양이 3개월 만에 모였다. 소비자가 평소 귀찮게 느낄 수 있는 헌 옷 재활용에 즐거움을 제공하니 공감대가 커진 것 같다.”
2020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헌 옷으로 비행기를 날리자”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제플란은 일본항공과 환경 스타트업 GEI(Green Earth Institute) 등과 손잡고 헌 옷 10만 벌을 모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옷으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해 비행기 연료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헌 옷을 보낸 사람 200명을 추첨해 바이오엔탄올로 나는 비행기에 같이 탈 계획이다.
일본 제플란 설립자 이와모토 미치히코가 헌 옷으로 만든 바이오에탄올로 달리는 자동차 ‘드로리안’에 타고 있다. 제플란 제공
제플란은 즐거움에 더해 소비자에게 ‘재활용이 멋지고 매력적인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유명 의류 브랜드와 협력해 재생 폴리에스테르수지로 만든 티셔츠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존 제품과 디자인·품질 면에서 차이가 없는 티셔츠를 내놓고 있다.
최근 일본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는 ‘브링(Bring) 티셔츠’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제플란에서 생산한 재생 폴리에스테르수지 일부를 활용해 티셔츠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스노우피크는 누리집에 “티셔츠라는 제품을 통해 많은 분이 부담 없이 재활용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제플란의 헌 옷 수거에 동참하겠다고 알렸다. 오키타는 “스노우피크나 비비안웨스트우드 등의 브랜드에서 제플란의 재생 폴리에스테르를 원료로 멋지게 디자인한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플란의 도전은 이제 일본을 넘어서려고 한다. 섬유산업으로 유명한 프랑스 리옹에 폴리에스테르 재활용 공장 건설과 재활용 기술 전수를 추진 중이다. 의류산업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리옹의 고민과 제플란의 문제의식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순환경제를 위해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제플란은 프랑스 진출을 통해 ‘헌 옷 수거-재활용’ 시스템을 유럽에도 전파하겠다는 꿈을 꾼다.
제플란은 누리집에 ‘모든 것은 순환한다’(Circulate Everything)고 강조하며 “우리는 석유와 에너지의 사용을 줄여 우리 세계를 보호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이 노력은 이산화탄소 등 유해가스 배출도 줄일 것이다”라고 야심 찬 목표를 내세운다. 오키타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소비자가 사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매력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도 조언했다. “본인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나 가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야겠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옳은 것’을 강요하기보다 즐거움을 줘야 소비자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즐겁고 매력 있는 활동을 벌이면 더 많은 사람이 플라스틱 문제와 재활용의 중요성에 공감할 거예요.”(끝)
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 https://cnspay.hani.co.kr:82/h21/support.hani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