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단체 회원들이 부끄러운 허물 벗기의 첫걸음을 뗐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개혁추진위원회,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회,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 70여 명은 5월22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겸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고질적인 내부 비리를 척결하자는 것. 궁극적인 목표는 명확했다. (회장 1명이 아니라) 회원들을 위한 보훈단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보훈단체로 거듭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세 가지 제안의 성명을 채택해, 청와대 총무비서관실로 전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보훈단체 적폐 청산은 기대에 못 미쳐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하고, “보훈단체의 개혁적인 회원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3개 단체 공동 모임을 결성했다”고 이날 집회를 연 배경을 설명했다.
보훈단체 거듭나기 첫걸음집회에는 상이군경회의 불법 명의대여 사업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공동 피해자인 여동생과 함께 나온 김원일씨는 “보훈단체의 불법 명의대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피해를 입은 이가 많지만, 국가보훈처나 검찰·경찰 어디에서도 도움받을 길이 없어 홀로 맞서다가 자포자기한다”면서 “이제 피해자 협의회를 조직했고 서로 힘을 모아 공동 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별도로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만들고 구호를 적은 팻말을 들었다.
박금구 특임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관제데모와 수익사업 비리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3개 보훈단체가 원래 목적과 취지에 맞게 거듭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비록 수는 많지 않지만, 보훈단체에 이런 목소리를 용기 있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모습을 국민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보훈단체 집회는 권력과 돈으로 동원되는 관제데모와 동의어로 여겨졌다. 보훈단체 회원들이 회장의 뜻을 거슬러 공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관제데모에 익숙한 이들이 낯선 민주집회를 연 만큼, 모든 것이 서툴렀다. 3개 단체의 개혁세력이라지만, 내부 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이 같을 뿐 각각의 속사정은 달랐다. 집회 하루 전 일정 연기를 하자는 이견이 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내부 혼선으로 고엽제전우회 회원 다수가 불참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집회 중간중간 고성도 터져나왔다. 일부 회원은 “우리 요구가 끝내 관철되지 않으면, 우리 식대로 다음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명에는 진정한 보훈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검찰에 보훈단체 비리 전담수사반을 설치하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보훈단체들의 불법 명의대여 사업으로 민간인 피해자가 양산되고 고소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선 검찰과 경찰에서는 보훈단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부분 무혐의 처리된다는 것이다. “검찰에 고소하면 경찰로 사건을 내려보내고, 경찰에서는 몇 달 시간을 끌다가 유야무야 종결짓곤 한다”면서 “보훈단체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전담수사반을 서울지검에 설치해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둘째, 대부분 불법 명의대여 방식으로 수행되는 보훈단체들의 수익사업을 전면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불법과 비리로 점철된 지금과 같은 식의 보훈단체 수익사업은 국가 재정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해당 업계의 중소기업들한테도 피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셋째, 회장 1인 독재 체제 청산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회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회장·임원 선거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위탁해 부정선거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대의원들이 회장을 선출하는 현행 간선제에 대해서도 “회원의 선거권을 박탈해 민주적인 선거가 될 수 없으며 회장 1인 독재 체제를 고착시킨다”고 비판했다.
3개 보훈단체 개혁세력 대표들은 “회원들이 이렇게 뜻을 모아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면서 “첫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회원을 위한 보훈단체라는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모든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임무유공자회의 박상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확실하게 보훈단체 적폐 청산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상이군경회 인천폐기물사업소 피해자들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국가가 보훈단체에 부여해준 수의계약권을 악용해, (보훈단체들이) 불법적으로 명의를 빌려주는 대명사업(명의대여 사업)을 자행해왔다”면서 “사업이 탈 없이 돌아가면 합법적인 직영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사고가 터지면 문제의 사업소가 상이군경회 산하기관이 아니고 사업소장은 직원이 아니라면서 법적·경제적 책임을 피해나간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인천폐기물사업소가 상이군경회의 산하기관임을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속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자살까지 했다”면서 국가보훈처에 피해자 구제를 위한 피해 접수 창구를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김덕남 회장 김현대 기자 고소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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