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8년 12월28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9월18일 국방부는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내놨다. 당시 국방부는 종교적 자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복무 분야는 24시간 근접 보호가 필요한 치매 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수발과 같이 사회복무자 배치 분야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로 하고 “복무 방법 및 기간은 출퇴근 없이 해당 복무 시설에서 합숙하면서 현역병의 2배 수준을 복무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12월28일 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11년3개월10일 전보다 오히려 한참 후퇴한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로 정한 것은 참여정부 때와 같지만 복무 장소와 형태를 ‘교정시설 합숙근무’로 단일화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현역병의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국제기구 권고에 어긋날뿐더러, 복무 장소를 교정시설로 제한한 것 등 국방부 안이 총체적으로 징벌적이라고 우려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쟁없는세상·참여연대는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포용국가’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체복무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말로 정부안을 평가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면서,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해방 후 1만9천여 명이 수감되고 나서야, 1970년대 강제 입영으로 5명의 목숨을 빼앗은 지 40년이 넘어서야, 2000년 병역거부가 사회 이슈로 등장한 지 18년이 지나고 나서야, 2007년 국방부가 스스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지 11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12월28일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대체복무제 입법을 위한 정부안이 발표된 것은 오로지 이 헌재 결정 덕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안은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지 않다. 헌재는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수준’을 가질 경우 또다시 위헌 판단을 내릴 여지가 있음을 밝혔다.
국방부는 현역복무와 대체복무의 형평성을 언급하면서 공중보건의 복무 기간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공중보건의는 최소 중위 1호봉 기본급과 관사가 지급되며 출퇴근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교정시설에서 24시간 합숙하며 훨씬 강도 높은 업무를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공중보건의와 똑같이 설정하는 건 형평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심각한 차별이다.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수정·오재창·임재성 변호사,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5명은 입장문을 통해 “복무 여건이나 복무 강도가 현역병보다 무거운 상황에서 복무 기간까지 현역병의 2배로 설정하게 되면 형평성은 무너지고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징벌로 기능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 역시 현역병보다 지나치게 긴 대체복무 기간을 금하고 있다. 2008년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이 무장 군 복무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2017년 10월 유럽인권재판소는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의 1.5배가 넘는 아르메니아의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이며 유럽인권협약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펴낸 를 보면, 징병제를 택한 25개국 중 대부분이 이 권고를 따를 뿐만 아니라 현역과 대체복무 기간을 같게 설정한 나라도 있다. 독일에선 과거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 9개월과 똑같다. 중국과 군사적 긴장 관계가 상존하는 대만에서도 현역 복무기간과 같은 4개월만 대체복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를 넘는 나라는 5개국뿐이다. 그중 그리스(15개월), 키르기스·조지아·몽골(이상 24개월)은 대체복무 기간이 한국보다 짧다. 대체복무 기간이 36개월인 나라는 한국·벨라루스·아르메니아 3개국뿐인데, 아르메니아는 현역이 24개월이라 대체복무 기간이 1.5배를 넘지 않는다.
정부안은 대체복무 장소를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시설로만 정했다. “군복무와 유사하게 영내에서 24시간 생활”하는 것이 유일하게 기재된 이유다. 임재성 변호사는 12월31일 과 한 통화에서 “교정시설 등 기피 시설 합숙 복무 기간은 현역병의 1.5배, 소방시설 복무 기간은 2배 등으로 복무 장소와 기간을 다양화하는 방안이 있었는데 가장 보수적인 국방부 안으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헌재 결정 전 대체복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대체복무제가 국방 문제이면서 동시에 소수자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법무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적절한 개입이나 통제가 필요했다”며 “법무부와 인권위가 실무추진단에서 제 목소리를 많이 내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복무 기간·형태 등과 관련해 이견이 크다보니, 대체복무제를 출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며 “일단 시행한 뒤 비현실적인 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 보완적인 장치(규정)를 많이 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방부 안을 보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1년 범위에서 복무 기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 및 공익 관련 시설을 대체복무 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 복무 분야를 다양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두었다. 하지만 향후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영역일 뿐 실제 복무 기간과 형태 등이 다양해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는 과 한 통화에서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을 2월7일까지로 길게 잡았기 때문에, 그 기간에 관련 단체별로 입장을 전달해 정부한테 요구하고 추후 국회 논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인권 기준에 맞는 법안이 도입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위원장과 민홍철 국방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면담 등을 통해 ‘현역복무와의 형평성’과 ‘소수자 인권 보호’를 두루 충족하는 법안이 되도록 힘쓰겠다는 취지다. 신미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는 “국방부 안대로 법이 시행되면 또 국제권고가 나오고 헌법소원도 제기될 거라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정부안은 2년이지만, 국회에 이미 더 짧게(1.5배) 발의된 법안들이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최대한 잘 심사할 수 있도록 요구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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