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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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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워라 꿈만 꾸다 끝나지 않도록”

홍콩 위성도시의 먹거리 문제 고민하며 뿌리내린 사회적 기업 지원 조직, ‘굿패밀리팜’ ‘굿랩’ ‘언리미티드 홍콩’
등록 2016-05-12 15:45 수정 2020-05-03 04:28
2015년 12월 홍콩의 사회적 기업 ‘굿패밀리팜’이 주최한 추수 기념 행사에서 주민 가족과 천자훙 공동대표(맨 오른쪽)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굿패밀리팜 제공

2015년 12월 홍콩의 사회적 기업 ‘굿패밀리팜’이 주최한 추수 기념 행사에서 주민 가족과 천자훙 공동대표(맨 오른쪽)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굿패밀리팜 제공

“풍경이 (도심과) 너무 다르죠?”

홍콩의 사회적 기업 ‘굿패밀리팜’(Good Family Farm·好家庭菜園)을 운영하는 천자훙(岑嘉宏·37) 공동대표가 버스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4월22일 오전 홍콩 지하철 둥융역에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농장으로 들어갈 모터보트를 탈 곳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하늘이 절반, 나무가 절반을 차지한 풍경이 ‘홍콩스럽지 않게’ 보이느냐는 물음이었다.

농장형 사회적 기업인 굿패밀리팜은 홍콩 국제공항과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란터우섬 북부에 있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들이 밀집한 도시 풍경으로 대표되지만, 홍콩섬·주룽반도의 도심을 벗어나면 빽빽한 빌딩숲도 자취를 감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빌딩숲’ 도심과 다른 위성도시 풍경</font></font>

대형 쇼핑센터에 둘러싸인 모던한 지하철역에서 벗어나 굿패밀리팜으로 접근할수록 농어촌 마을 풍경이 도드라졌다. 넓은 택지 가운데 불쑥 등장하는 아파트촌이 되레 튀는 모습이었는데, 역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파트촌들은 대부분 퍼블릭하우징(공공주택)이다.

둥융 지역에는 3~13동가량으로 구성된 공공아파트촌 4곳에 약 1만5천 가구가 살고 있다. 1998년 국제공항이 문을 열면서 공항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신도시 개발이 시작됐지만 병원이 3년 전, 체육센터가 2년 전에 문을 열었을 정도로 사회문화 기반 시설은 늦게 들어섰다. 굿패밀리팜이 관계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퍼블릭하우징에 거주한다.

“문제는 먹거리에 있다고 봤어요.” 굿패밀리팜에서 자전거로 10~15분, 보트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퍼블릭하우징 이둥(逸東) 단지에는 6천여 가구가 거주하는데, 아파트 내 마트는 딱 한 곳이다. 2000년대 초반 단지가 완공됐을 때는 소상공인들이 마트에서 먹거리를 팔았으나, 몇 년 전부터 대형 유통업체 한 곳이 마트를 독점 운영하고 있다. 전체 식료품 가격이 올랐다. 원래 가격이 만만치 않은 자연·유기농 식품 구입은 문턱이 더 높아졌다.

공공주택 근처에 650m² 규모의 땅을 임대한 굿패밀리팜은 2015년부터 6개월에 한 번씩 10가구 정도를 뽑아 유기농법을 알려주고 실습할 수 있도록 했다. 각종 워크숍을 열고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상대로 집과 학교 안에서 플라스틱통 등을 활용해 간편하게 농작물을 가꾸는 법, 유기농 재료로 요리하는 법 등을 알려준다.

“직접 기른 유기농산물을 요리해서 함께 나눠 먹는 행사를 빼놓지 않는다. ‘나눔’의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굿패밀리팜의 브랜드 로고는 흙을 배경으로 맞잡은 손에서 새싹이 발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기업과 커뮤니티, 자연이 어우러지는 가치를 지향한다.

6개월 전 굿패밀리팜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농사와 요리에 재능 있는 주민들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둥융굿테이스트’(Tung Chung Good Taste) 사업이다. 허브·농산물을 활용한 수프·잼 등을 상품화해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개발 속도와 비례하는 환경오염을 막는 동시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그린투어’ 상품도 개발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역 풍경을 둘러보며 곳곳에 묻힌 이야깃거리를 발굴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들려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만의 농장을 만들자</font></font>
2016년 4월21일 민간 사회적 기업 창업 지원 조직인 굿랩에서 만난 ‘언리미티드홍콩’ 켈빈 청 대표. 굿랩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겸하고 있다. 김효실 기자

2016년 4월21일 민간 사회적 기업 창업 지원 조직인 굿랩에서 만난 ‘언리미티드홍콩’ 켈빈 청 대표. 굿랩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겸하고 있다. 김효실 기자

굿패밀리팜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 ‘굿랩’(Good Lab), ‘매드’(MaD·메이크 어 디퍼런스), ‘언리미티드 홍콩’ 같은 민간 사회적 기업 창업 지원 조직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천자훙 공동대표는 굿패밀리팜을 만들기 전 무역회사에서 7년가량 일했다. 농사일에 흥미가 있긴 했지만 주말농장에 참여하면서 ‘취미’로만 즐겼다. 2010년에는 유기농장협회에서 주최한 유기농업 강연을 들었다. 강연에서 문화기획자와 영상제작자로 일하던 공동창업자 2명을 처음 만났다. “우리만의 농장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도시 근교에 작은 밭을 임대했다. 천자훙 공동대표가 상근을 맡고 다른 두 동료는 직장일과 병행했다. ‘밭’을 넘어 ‘농장’ 수준으로 확대할 방법을 찾다가, 코워킹 스페이스이자 사회혁신가 네트워킹과 사회적 기업 창업 교육 지원을 하는 굿랩에서 주최한 특강을 듣게 되었다. 기업의 ‘양적 확장’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았다.

“강의 주제가 ‘사회적 기업을 본인 흥미에 맞게 어떻게 시작하느냐’였는데,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기왕 농사짓고 즐기는 김에 수익만 내거나 자급자족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지역 학교, 지역 임대 농장 등 단계별로 확장할 것을 조언한 것도 굿랩이었다.

특강에 연사로 참여한 켈빈 청은 2008년 영국에서 음식 재활용 사회적 기업 ‘푸드사이클’을 만든 경험자다. 4년가량 푸드사이클을 경영한 뒤 다른 최고경영자(CEO)에게 단체를 넘겨주고 2013년 고향인 홍콩으로 돌아와 ‘언리미티드 홍콩’을 만들었다. 사회적 기업 창업 교육과 펀딩을 지원하는 ‘언리미티드 UK’의 홍콩 버전인 셈이다. 언리미티드 홍콩은 2015년 굿패밀리팜도 지원했다. 같은 해부터 켈빈 청은 굿랩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돈보다 교육·네트워크 절실</font></font>

지난 4월21일 굿랩에서 만난 켈빈 청은 펀딩보다 절실한 ‘교육·멘토링’의 역할을 강조했다. “펀딩도 지원하긴 하지만, 사회적 기업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게 돈만 주는 것은 성공률을 떨어뜨린다. 자원을 공유하거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연결해주는 일이 더 필요하다. 또 단순히 꿈을 꾸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계획’ 단계에 대한 생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계획이 없으면 말하고 꿈꾸는 것에서 그친다.”

그는 또 사회적 기업을 ‘트렌드’로 접근하는 일을 경계하며 20대 나이에 굳이 창업을 완수하려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금 청년 중에는 자신이 하는 일로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이가 많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트렌디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사회변화를 일으키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지름길은 없다고 본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이미 성공한 사회적 기업 아이디어를 자신의 커뮤니티에 적용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게 사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세부적 계획을 세우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를 쌓기 위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리다오·주룽청(홍콩)=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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