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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슈탄’의 집에 초대합니다

소수민족 출신 슈탄과 도시남 짠탕이 베트남 고산도시 사파에 뿌리내린 이유
등록 2016-05-26 17:31 수정 2020-05-03 04:28



마을에서 길을 찾는 청년


① 같이 살아요 우리
② 청년이 돌아왔다, 바람이 분다
③ 작은 마을에서 큰 해답을 발견하다
④ ‘바보 슈탄’의 집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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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 기업 ‘갭욜로’가 베트남 사파 지역 하우타오 마을에 설립한 문화관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흐몽족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다.

공정여행 기업 ‘갭욜로’가 베트남 사파 지역 하우타오 마을에 설립한 문화관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흐몽족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다.

해발고도 3143m의 판씨빵산과 1800m의 함롱산으로 둘러싸인 ‘사파’는 베트남의 고산도시다. 사파 시내는 160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시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웅장한 산맥 곳곳에는 흐몽족, 자오족 등 베트남 소수민족들이 마을을 꾸리며 살아간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버스로 6시간 가까이 달려 사파에 도착하면 소수민족 복장을 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천으로 만든 팔찌와 동전주머니 따위를 내민다. 1만동(약 520원), 3만동(약 1560원)짜리들이다. 이곳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살림에 보태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여자아이들은 전통 옷감으로 천을 짜고 남자아이들은 나무를 하러 다닌다. 또 아이들은 관광객에게 팔기 위한 기념품을 등짐에 가득 넣고 산길을 몇 시간씩 걸어 사파 시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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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물로 목욕하며 호텔 대신 홈스테이

흐몽족 슈탄(30)도 그런 아이였다. 라오까이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0살쯤부터 사파 시내에서 기념품을 팔기 시작했다. 라오까이에서 사파 시내까지의 거리는 17km다. 그는 등짐을 지고 2시간 넘게 산길을 걸어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고 저녁 6시쯤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했다.

멋진 경치를 품고 있는 사파가 힐링과 트레킹을 위한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슈탄은 16살 때부터 여행 가이드 일도 함께 했다. 그는 관광객에게 사파의 숨은 명소와 트레킹하기 좋은 길을 소개해주면서 푸른 눈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슈탄이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소수민족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을 할 거야.” 슈탄은 주변 친구들에게 말했다. “바보 슈탄!” 되돌아온 답변이다. 흐몽족 친구들은 꿈에서 깨라고 했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그의 꿈을 격려했다. 이런 격려는 그가 2013년 ‘사파오짜우’를 세워 공정여행 사업을 벌이는 데 큰 힘이 됐다. 공정여행은 관광지의 환경을 보존하고 수익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 여행 방식이다.

“2007년쯤부터 사업을 구상하고 홈스테이에 참가할 지역 주민들을 모았어요. 2002년 가이드를 하면서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친구 4명이 이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이용해 홍보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고 격려해줬죠. 처음엔 비웃었던 흐몽족 친구들도 실제 관광객이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4월29일 오전 사파오짜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난 슈탄은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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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탄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규모가 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기존 사파 관광이 지역 주민의 소득을 늘려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홈스테이다. 관광객이 소수민족의 전통 가옥에서 숙박하고 현지 주민들이 만든 음식을 먹고 트레킹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여행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사파오짜우는 이 지역 주민들의 집 13곳을 홈스테이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사파 시내에서 10km 떨어진 타핀 마을 짜오마이(36)의 집도 사파오짜우의 홈스테이 장소 중 하나다. “7년 전부터 홈스테이를 해왔고 사파오짜우와 협력한 것은 6년 정도 됩니다. 예전에는 관광객이 한 달에 10명 정도 왔다면 지금은 70명 정도 와요.” 자오족의 상징인 붉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짜오마이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이 집에는 방 2개, 침대 7개가 관광객을 위해 마련돼 있다. 마당 한쪽에는 약초를 달인 물로 목욕하는 욕탕도 있다. 여행객들은 아침 일찍 짜오마이가 차려주는 밥을 먹은 뒤 사파 곳곳에서 트레킹을 즐긴다. 저녁에는 다시 돌아와 약초 달인 물로 목욕하면서 피곤을 푼다.

매출 10% 소수민족 아이들 교육에 투자
‘갭욜로’를 설립한 하노이 출신 짠탕(왼쪽)과 ‘사파오짜우’를 만든 흐몽족 출신 슈탄. 두 사람은 모두 사파 지역에서 공정여행 사업을 하고 있다.

‘갭욜로’를 설립한 하노이 출신 짠탕(왼쪽)과 ‘사파오짜우’를 만든 흐몽족 출신 슈탄. 두 사람은 모두 사파 지역에서 공정여행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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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들의 소득은 높은 편이다. “농사만 짓는 이곳 주민들 소득은 1년에 300만~400만동(약 15만6천~20만8천원) 수준에 불과해요. 하지만 홈스테이를 하는 집은 한 달에 1천만~2천만동(약 52만~104만원)을 벌어요.” 슈탄이 말했다. 사파오짜우를 통해 이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 수는 1년에 5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매출은 한 달에 10억동(약 52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슈탄의 꿈은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사파오짜우는 사파 시내에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36명의 소수민족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다. 각자의 마을에서 사파에 있는 학교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슈탄이 기숙사를 만든 이유다. 기숙사 옆 건물에 마련된 4개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사파로 자원봉사를 온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배운다. 베트남어도 배운다. 소수민족의 언어는 베트남 표준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사업이 교육사업이에요. 2011년부터 집을 임대해서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슈탄은 소수민족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3층짜리 건물과 2층짜리 건물 두 곳을 소개하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1억동(약 520만원) 수준이다. 매출의 10분의 1에 달하는 큰돈이지만 슈탄은 개의치 않는다.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가고 기념품을 팔아야 했어요. 그런 삶이 반복되면 미래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곳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교육사업만큼은 꼭 해낼 거예요.” 슈탄의 눈빛이 반짝였다.

슈탄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동갑내기 짠탕(30) 역시 2014년부터 사파에 자리를 잡고 공정여행 기업인 ‘갭욜로’(GAP YOLO)를 세웠다. 그는 하노이에서 태어나 베트남 투자기획청 공무원을 하고 싱가포르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스스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만큼 ‘금수저’다. “투자기획청에서 베트남의 농민이나 어민을 돕기 위한 일을 기획했어요. 보조금 정책이나 각종 지원 정책을 고민해서 추진하고 싶었지만 이뤄지는 게 전혀 없었죠.”

투자기획청 공무원, 베트남 인민신문 직원, 싱가포르 유학 등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걷던 짠탕은 2013년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이듬해인 2014년 9월 사파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시작한 일은 커피숍 매니저였다. 그가 운영하는 커피숍의 맞은편 가게에는 소수민족들이 짠 전통 옷감으로 만든 물건을 파는 부이득콩(23)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이 주목한 것 역시 공정여행이었다. 뜻이 맞는 두 사람이 만나니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짠탕이 사파행을 택한 지 두 달 만인 2014년 11월 두 사람은 갭욜로를 세웠다. 지금은 사파뿐 아니라 베트남의 깟바, 하롱 등 총 7개 지역에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파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집과 땅을 도시 사람들에게 팔아왔어요. 그곳에는 호텔이 들어섰죠. 이들이 자기 땅을 팔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하고 지역 문화를 보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4월28일 낮 갭욜로가 위탁운영을 맡고 있는 ‘트룩 람 호텔’에서 만난 짠탕이 말했다. 그는 3개 마을에서 6곳의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조식 포함, 하루 숙박비 6천원 남짓

계단식 논밭이 절경을 이루는 하우타오 마을의 산 중턱에는 홈스테이로 활용되는 장티찌(28)의 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날 오후 5시께 만난 장티찌는 자신의 집에서 한창 전통 옷감을 이용해 스카프를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스카프를 만들면 사파 시내까지 걸어가서 팔아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홈스테이를 하는 관광객에게만 팔아도 충분해요.” 재봉질을 하던 장티찌가 웃으며 말했다.

공정여행은 관광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준다. “홈스테이를 한 것은 우연이었어요. 사파 시내에는 5일 숙박을 할 수 있는 호텔이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사파 시내에서 하우타오 마을까지 들어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괜히 예약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넓게 펼쳐진 계단식 논밭을 보니 모든 것을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여행 온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 것도 새롭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친절해요. 하루 숙박비가 6천원도 되지 않는데 아침밥까지 포함된 것도 장점이죠.” 중국에서 베트남까지 90일 넘게 자전거 여행을 하던 중 장티찌 집에서 머물게 된 박정웅(28)씨의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갭욜로를 찾은 여행객들은 3500명 규모다. 한 달 매출은 5억동(약 26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설립자금이 200만동(약 10만4천원)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큰 성공이다. “매출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버는 돈만 보면 전혀 성공했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짠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슈탄과 다르지 않다. 교육이다. 그는 사파 지역 3개 마을에 문화관을 만들었다. 오전에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문화관에 모여 영어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한다.

홈스테이로 소득이 늘어난 집에는 아이 교육을 위한 적금을 권유한다. “장티찌의 경우 한 달 소득이 2천만동(약 104만원) 정도예요. 얼마 전부터 아이 교육을 위해 매달 300만동(약 15만6천원) 정도씩 적금을 들도록 했죠. 그 정도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쯤 대학 학비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어요.”

마을 전통과 미래를 동시에 가꾸는 청년들

두 동갑내기 청년은 출생지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르다. 하지만 두 청년은 수익이 전통을 지킬 힘을, 교육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슈탄과 짠탕이 가진 믿음은 사파에 뿌리내려 이제 막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페달  밟으며  ‘진짜  캄보디아’를  만나다


5월4일 오후, 정환봉 기자(가운데)가 캄보디아 바탐방의 공정여행 기업 ‘속사바이크’의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5월4일 오후, 정환봉 기자(가운데)가 캄보디아 바탐방의 공정여행 기업 ‘속사바이크’의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무더위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니 뜨거운 열기가 포근한 온기의 바람이 되어 뺨을 스쳤다. 울창한 나무와 시골집, 전통 사원들이 보이는 길이 펼쳐졌다.
캄보디아 바탐방의 공정여행 기업 ‘속사바이크’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20분쯤 달리자 앞서 있던 가이드가 멈추라는 손짓을 한다. 자전거 여행의 첫 관광지는 월남쌈과 같은 동남아 음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스페이퍼를 만드는 집이다.
현지인 가이드는 집주인을 만나면 양손을 모으고 ‘쫌리업수어’라고 인사하라고 귀띔했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라이스페이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핀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아궁이 위에선 쌀이 끓었고, 볕이 드는 다른 쪽에선 만들어진 라이스페이퍼가 건조되고 있었다.
다음 코스는 말린 바나나를 만드는 집이었다. 나인톤(75) 할머니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맞았다. “속사바이크와 함께한 뒤 형편이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바나나농사를 지으면서 시장에 나가 장사까지 해야 살림을 꾸릴 수 있었어요. 이제는 찾아오는 관광객에게만 말린 바나나를 팔아도 충분해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2010년 설립된 속사바이크는 바탐방 지역의 자전거 여행 코스를 여러 곳 개발해 관광사업을 벌이고 있다. 주요 여행 장소는 유명한 사원이나 오래된 성, 뛰어난 경치의 강이나 호수가 아니다. 캄보디아 주민들의 평범한 집이다.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에 마을 환경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
“속사바이크와 함께하는 가구가 27곳이에요. 관광객에게 자전거를 타고 캄보디아의 자연을 느끼면서 마을 주민들의 진짜 삶을 살펴볼 기회를 주는 거죠.” 속사바이크에서 사업매니저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머천트(26)가 말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매출의 80% 가까이가 마을 주민들과 현지 가이드의 몫으로 돌아간다. 주민들은 자신의 집을 찾는 자전거 관광객 수에 따라 수익금을 나눠 받는다. 관광객이 물건을 사가는 것은 덤이다.
공정여행으로 마을 주민들의 삶은 나아졌지만 속사바이크의 운영은 쉽지 않다. “사무실 임대료, 자전거 수리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많아요. 수익을 우선하지 않는 사회적 기업이다보니 늘 운영비가 문제죠.” 크리스토퍼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하게 돈을 벌어 이익을 내는 일은 재미없잖아요. 공정여행은 마을과 함께 발전하고 커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에요. 함께 성장한다는 건 멋진 일 아닌가요?” 크리스토퍼는 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냐며 되물었다.
“속사바이크에서는 진짜 캄보디아를 볼 수 있어요.” 영국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세계사를 공부한 크리스토퍼는 이른 나이에 여행업계에 발을 들인 뒤 유럽과 대만을 거쳐 캄보디아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속사바이크에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공정여행의 정신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바탐방(캄보디아)=정환봉 기자


사파(베트남)=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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