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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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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엄마를, 엄마가 친구를… ‘연대의 착한 사슬’

노숙인 자활 위한 ‘하루를 쓰다’ 달력 만들었던 최성문씨의 네팔 여성을 위한 ‘대안생리대’ 만들기 프로젝트… 600여 개 만들어 7월 말 카트만두 여성들에게 직접 전달
등록 2015-07-30 18:15 수정 2020-05-03 04:28

혼자 무모하게 시작한 일이었다. 1차 때 13명, 2차 때 12명, 3차 때 10명, 4차 때 13명, 5차 때 9명 등 고정 멤버를 포함해 40여 명이 참여해 함께 만들었다. 딸이 엄마를 초대했고, 그 엄마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작업했다. 직장에서 피곤했을 텐데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달려와준 사람도 있었다. 7월7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최성문씨가 벅차하면서 말했다. “사슬 같았어요. 좋은 사슬, 연대의 사슬.”

‘네팔 지진피해 여성을 위한 대안생리대 만들기 모임’ 마지막 날인 6월24일, 최성문(오른쪽 세 번째)씨와 함께한 사람들이 600여 개의 대안생리대를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5월부터 두 달간 7차례 진행된 바느질 모임은 따뜻한 열정의 연대를 확인한 시간들이었다. 최용석 제공

‘네팔 지진피해 여성을 위한 대안생리대 만들기 모임’ 마지막 날인 6월24일, 최성문(오른쪽 세 번째)씨와 함께한 사람들이 600여 개의 대안생리대를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5월부터 두 달간 7차례 진행된 바느질 모임은 따뜻한 열정의 연대를 확인한 시간들이었다. 최용석 제공

지난 4월25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 근처에서 강도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84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 발생 직후 모든 언론이 히말라야가 흔들리고, 세계문화유산이 내려앉은 그 땅의 처참함을 보도했다. 무너진 흙과 돌더미 아래 매몰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에 안타까워했고, 폐허의 현장에서 삶을 이어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에 먹먹해했다.

‘속보’가 사라진 뒤의 네팔을 위해…

최성문씨는 절망의 재난 현장을 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2014년 1년 동안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노숙인들이 직접 쓰는 ‘하루를 쓰다’ 달력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이게 될까’ 했는데 그게 됐다. 365일 동안 365명이 달력의 날짜 하나씩을 썼다. 무언가에 참여하게 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당사자 노숙인들이 열심히 나섰고, 수많은 시민은 물론 양동근·악동뮤지션·윤도현 등 유명 뮤지션들도 참여했다. 영상도 만들고 장기 전시도 했다. 그 수익금으로 노숙인과 탈북인들이 함께하는 만둣집을 열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이 아니라 네팔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페이스북을 보던 그는 20년째 신뢰하며 알고 지내던 임영신 이매진피스(공정여행단체) 대표가 5월1일 이미 네팔로 떠났다는 글을 봤다.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속보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저 무너진 집들은, 거리에 쳐진 텐트들은 좀처럼 사라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의 곳곳에서 아프게 배워왔습니다. (중략) 네팔의 소중한 벗들이 맨발로 그려가는 절망의 지도가 희망의 지도가 되기를, 그 지도를 따라 무너진 집과 마을들을 세워가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기를 소망하며 먼저 작은 걸음을 시작해봅니다.” 네팔로 향하는 이유를 밝힌 임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도 있었다. “산간 지역 사람들에게 비를 피할 텐트 하나를 보내는 비용 2만5천원, 대안생리대 한 세트 제작 비용 5천원.”

최성문씨의 눈을 붙든 건 ‘대안생리대 한 세트 제작 비용’이라는 말이었다. 대안생리대는 일회용 생리대가 아닌 천으로 만든 생리대를 말한다. 빨아서 쓸 수 있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화학약품 처리가 없어 몸에 훨씬 좋다. 땅이 갈라져 몸 하나 누이기도 마땅찮을 곳에서 생리대를 만들기 위해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절박해졌다. 그는 임영신 대표에게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혹시 여기서 대안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보내면 도움이 될까.” 1분도 되지 않아 답이 날아왔다. “물론 도움이 되지.”

이미 비욘드 네팔(네팔 여성·아이·농민에 귀울이는 비영리단체)이 식량, 대안생리대 등을 나누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간 네팔 산간마을 여성들은 낡은 옷가지나 천을 잘라 생리대 대신 쓰고 있었다. 그마저도 무너진 집에서 챙겨나오지 못해 곤혹스런 처지였다. 대안생리대를 받은 그들은 “어디 말할 곳도 없어서 곤궁했는데 고마운 선물”이라고 반겼다.

“필요하지만 말할 곳 없어 곤궁했는데…”

최씨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5월2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혹시 네팔에 보낼 대안생리대 만드실 분 있나요? 저는 한 번도 안 만들어봤으나 제 바느질 실력이라면 누군가 앞장서서 지휘해주신다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요.^^ ”

참여하겠다는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저 손이오!” “가르쳐주세요~.” “저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아들이랑 가는 게 민폐만 안 되면 첫날 가서 만드는 법을 배워 집에서 만들어 가겠습니다~.” “저는 대전 쪽에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여기서 만들어 보낼게요.”

서울 마포구 합정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는 카페를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5월5일 어린이날 첫 번째 모임이 열렸다. 20대 커플, 필리핀에서 온 활동가, 어린이날 신나게 놀고 모임에 참가한 4인 가족 등 13명이 모였다. 다들 바느질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4시간 동안 네팔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또 서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나누며 10개의 대안생리대를 만들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고작 10개라니 막막했다. ‘500개쯤은 만들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5월5일 모임 후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불이 붙은 건 그때였다. 합정에서 바느질 공방 ‘네모의 꿈’을 운영하는 이지은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할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안정적인 공간과 조금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재봉틀, 전문가가 생겼다. 이지은 대표는 5년 전 여성환경연대와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동대문의 한 퀼트숍에서 예쁜 천을 보내줬고, 경기도 바느질 공방에서 만든 대안생리대 30개가 도착했다. 제작비로 보태쓰라며 성금이 답지하기도 했다.

최성문씨가 ‘연대의 사슬’이라는 말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모자라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이 작은 불씨를 붙이면 더 많은 열정과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모여들어요. 그렇게 해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아요.” 5월20일부터 6월24일까지 매주 수요일 바느질공방 ‘네모의 꿈’에서 6차례에 걸쳐 ‘네팔 여성을 위한 대안생리대 만들기 모임’이 열렸다. 고정 멤버는 5명 정도였고, 매주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일본어 번역가, 웹디자이너, 아이를 입양한 엄마 등이었다. 친한 후배 한 명은 엄마를 모시고 왔다. 60대 어머니는 “나는 폐경이야”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친구 2명을 모시고 왔다. ‘엄마들’의 도움은 든든했다.

‘폐경’한 엄마도 도와주는 모임

“엄마도 도와준다는 느낌은 각별했어요. 뭐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엄마들은 그냥 오시지 않고, 늘 먹거리를 가지고 오셔서 넉넉함을 더해주셨죠.” 애초 목표로 한 500개는 대전에서 보내준 100여 개 등이 보태져 달성됐다. 그리고 마지막 날 강원도 원주의 여성들도 100여 개를 더 만들어 보냈다. 모두 640개의 대안생리대가 완성됐다.

최성문씨는 이매진피스와 함께 7월25일 640개의 생리대를 네팔 여성들에게 직접 전하러 카트만두로 떠난다. 네팔 여성들의 말 못할 곤궁함을 채우기 위해 ‘한땀 한땀’ 바느질에 담은 마음들도 함께 건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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