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사만이 아니었다. 철거용역 업체의 대명사, 악명 높은 ‘적준’의 후신, 다원그룹이 피와 눈물 위(973호 표지이야기 참조)에 세운 계열사 수는 검찰 발표를 한참 웃돌았다. 취재 결과 ‘철거왕’ 이금열 회장이 지배하는 다원 계열사 4개가 추가로 확인됐다. 다원이 이들 회사를 동원해 법 규정을 무력화하고 재개발 철거용역비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해온 정황도 드러났다. 불법ㆍ탈법 행위에 동원되는 계열사가 늘어날수록 철거 이익은 ‘핵분열’했다. 이 회장 구속 뒤에도 다원의 ‘부당이득 창출 회로’는 정상 작동 중이다.
7월24일 한 장의 공문이 전국으로 발송됐다. ‘다원이앤씨의 언론 보도에 대한 안내의 건’이란 제목으로 팩스로 전송됐다. 발신자는 다원이앤씨의 이중열 대표였고, 수신자는 이 회사가 사업에 참여 중인 재개발조합들이었다. 공문은 “(자금 횡령 혐의로) 언론에 보도된 회장 및 회사 등은 당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03년 7월 퇴임하여 이후 일을 하거나 회사 경영 및 의사 결정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린다”며 “아무 문제 없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도 썼다. 공문 뒤엔 이 회장의 등기이사 말소 기록이 포함된 다원이앤씨 법인 등기부등본을 첨부했다. 7월24일은 이금열 회장의 검찰 체포(7월22일) 이틀 뒤였고, 구속(968억원 횡령·150억원 배임·168억원 편취 등 혐의) 하루 전이었다. 공문 내용은 이중열 대표가 최근 과 통화한 내용과도 같다. 그는 “이 회장과 다원과는 상관없다. 이 회장이 다원의 실질적 사주가 아니냐고 하는데 같이 일을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회장의 둘째동생이다.
공문을 받은 재개발 현장에선 조합 동요를 막기 위한 다원의 응급조처로 해석했다. 다원이 내부 동요 차단 목적으로 단합대회를 열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재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합과 내부의 동요만 단속하면 자신이 구속돼도 다원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개발 현장이 다원의 젖줄이 돼주는 한 이번 위기도 돌파할 수 있다는 판단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그는 무수한 정·관계 로비로 사업 확장과 검경 수사 무마를 관철시켜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철거업계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다원의 자금력은 ‘몇 개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계열사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다원그룹 계열사 구조의 정확한 파악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7월 수원지방검찰청이 중간수사 결과에서 발표한 다원 계열사 수는 13개였다. 하지만 이 추가 확인한 회사만 4개사다. 케이원엔지니어링과 경북전기는 각각 가스 철거와 전기 철거 업체로 등장한다. 이와소코리아와 프라나스프링스는 각각 토목공사와 재건축·재개발 컨설팅 등을 업종으로 한다. 기존 13개사와 합쳐 17개사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해봤다. 주소지만 살펴봐도 다원 계열사들의 실체에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상당수 회사가 서로 넘나들며 주소지를 공유한다. 철거 이익 증폭을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란 의혹이 짙다.
잠시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자. 이 회장이 적준의 이름을 바꾼 다원건설 대표가 되고 8개월 뒤 다신경비시스템이란 회사가 만들어진다. 이 회사는 2001년 2월16일 철거를 주로 하는 다원이앤지로 문패를 바꿔 달고 2006년 3월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으로 주소를 옮긴다. 같은 날 방배동의 다른 주소지에 있던 다원이앤씨가 주소를 합친다. 18일 뒤(3월21일) 설립된 다원이앤아이도 이곳에 주소를 튼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더부살이인지다원이앤지는 2008년 4월14일 케이원엔지니어링으로 이름을 바꾼다. 일주일 앞서(4월7일) 주소를 방배동 내 인근으로 옮긴다. 2년6개월 뒤(2010년 10월4일)엔 다원이앤씨가 이 주소지로 전입한다. 2011년 5월13일 케이원엔지니어링은 삼무개발로 다시 개명한다. 5개월 뒤(2011년 11월16일) 다원이앤씨는 삼무개발 주소와 분리해 방배동 내 또 다른 장소로 옮겨간다. 20여 일 뒤인 12월7일 다원이앤아이가 다원이앤씨에 주소를 합친다.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는 지금까지 같은 주소를 쓰고 있다.
삼무개발은 케이원엔지니어링에서 이름을 바꾸기 한 달 전(2011년 4월15일) 서초구 반포의 한 빌딩 2층에 주소를 등록한다. 프라나건설과 프라나스프링스가 2007년 6월25일부터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소다. 프라나건설 설립(2005년 3월29일) 2년여 뒤인 2007년 1월9일 프라나스프링스가 프라나건설에 주소를 합친다. 세 회사는 지금껏 ‘주소 공동체’다.
삼무개발로 간판이 바뀌면서 등기에서 말소됐던 케이원엔지니어링이란 이름은 6개월 만인 2011년 11월7일 삼무개발에서 분할한 별도 회사로 부활한다. 남쪽에선 경북전기란 회사가 등장한다. 등기이사 명단만으론 다원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2008년 5월22일 경북 성주에서 설립된 경북전기의 주소지는 2010년 3월18일 서초구 방배동의 한 오피스텔로 ‘상경’한다. 불과 6일 만(2010년 3월24일)에 동작구 사당동으로 주소를 바꾸고, 13일 뒤(4월5일) 사당동 내 인근(경북전기의 현주소)으로 재차 이전한다. 1년7개월 뒤 한 회사가 이곳에 주소를 합친다. 삼무개발에서 분할한 케이원엔지니어링이다. 케이원엔지니어링은 3개월 뒤 서초구 방배동의 한 오피스텔 2층으로 다시 주소를 옮긴다. 2년 전 경북전기가 단 6일간 사용했던 주소지가 위치한 건물이다. 경북전기 ‘6일간의 둥지’는 이 건물 17층에 있다. 이 집은 현재 케이원엔지니어링 정아무개 대표의 거주지로 돼 있다. 경북전기가 정 대표의 집에 주소를 올렸던 당시는 삼무개발이 케이원엔지니어링(옛 회사)으로 존재할 때였다. 이쯤 되면 누가 주인이고 더부살이인지 불분명하다. 실제로 업무 공간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묘한 ‘주소 동거’를 거쳐온 케이원엔지니어링과 경북전기는 한남동 재개발구역에서 ‘짝’으로 등장하며 다원의 철거용역비를 부풀리는 데 앞장선다.
사실 짝이 아니라 ‘삼총사’다. 프라나건설이 함께 움직인다. 프라나건설·케이원엔지니어링·경북전기의 ‘팀플레이’는 2010년 4월15일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11조(시공자의 선정 등)에 4항(시공자와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기존 건축물의 철거 공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야 한다)이 신설되면서부터 활발해졌다.
지장물 철거 명목으로 중복 계약애초 4조 신설은 용산 참사(2009년 1월19일)가 계기가 됐다. 재개발조합이 철거회사를 선정하면서 발생하는 과도한 철거비 책정과 철거용역의 무자비한 폭력을 줄이자는 취지가 반영됐다. ‘철거공사 쪼개기’는 시공사가 철거회사를 선정하면 철거 폭리를 차단당할 것으로 본 다원이 폭리를 보전할 목적으로 창안한 ‘발명품’ 성격이 짙다. 재개발 현장에서 관찰되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서울 옥수13구역(조합원 1500여 명) 재개발조합은 2009년 2월 다원이앤아이와 ‘이주/철거 및 잔재처리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12만4431㎡를 79억8천만원에 계약했다. 공사 범위엔 이주관리는 물론 지장물(전기선·수도관·가스관) 철거도 포함돼 있다. 조합은 다원이앤아이 계약과 별도로 경북전기와 전기 철거, ㅇ사와는 상하수도 철거, ㅈ사와는 가스 철거 계약을 지장물 철거 명목으로 맺는다. 각각 3억7천만원, 7억1천만원, 5억3천만원을 책정했다. 일종의 중복 계약이다.
도정법 4조 신설 전에 맺은 계약이었다. 다원의 이득은 재개발조합과 체결하는 주철거계약에서 나왔고, 전기·수도·가스 철거는 부수 이익이었다. 1년2개월 뒤 4조가 만들어졌다. 다원은 ‘메인 계약’을 버리는 대신 ‘사이드 계약’에서 메인 계약만큼 이익을 뽑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 적용 이후 철거업체들은 시공사와 체결해야 하는 철거계약에서 큰 이득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지장물 철거란 명목으로 조합과 전기·수도·가스 철거계약을 별도로 맺어 고액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남동 재개발구역이 한 예다. 도정법 4조 신설 뒤 계약이 체결된 지역들이다. 다원 계열사들이 시공사 선정도 안 된 상태에서 조합과 전기·수도·가스 철거 계약을 했다. 철거업체의 ‘폭리 보전 우회로’로 선택된 ‘철거 쪼개기’가 계약금액을 급등시킨다.
한남5구역의 조합원은 1500여 명이다. 옥수13구역과 같은 규모다. 지난 7월27일 조합은 정기총회를 열어 용역업체 선정 건을 통과시켰다. ‘프라나건설·케이원엔지니어링·경북전기’란 ‘다원 삼총사’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총회 자료를 보면 지장물(상수도) 조사 및 철거 명목으로 프라나건설과 25억원, 도시가스 철거로 케이원엔지니어링과 14억원, 전기 철거로 경북전기와 8억1300만원의 계약을 맺었다(8월12일 실계약 체결). 총 47억1300만원이다. 4년 전 옥수13구역의 3개사 계약금의 3배에 가깝다. 업체 선정 방식은 지명입찰(조합이 지명한 업체만 입찰 가능)이었다. 한 조합원은 “조합이 3개 회사와 계약한 내용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모두 다원 계열사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7월27일이면 이 회장이 구속되고 이틀 뒤다. 그가 없어도 현장은 흔들림이 없다.
“건물을 부수지 않고 어떻게 캐내냐”‘다원 삼총사’는 한남3구역에도 등장한다. 구역도 다르고 조합도 다르지만 유독 3개 분야 철거계약을 따낸 업체는 모두 똑같다. 상수도와 도시가스, 전기 조사·폐쇄·이설 업체로 각각 프라나건설(입찰금액 55억9200만원), 케이원엔지니어링(34억3300만원), 경북전기(39억8900만원)를 선정했다. 한남3구역의 조합원 규모는 옥수13구역의 2배(3300여 명)다. 3개사 철거비용은 8배가 넘는다. 지난 5월4일 총회에서 가결시켰다. ‘철거 이득의 핵분열’인 셈이다.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일 때였다.
한남3·5구역 입찰·계약 금액 모두 부가세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재개발 비리에 해박한 한 법조인은 “계약의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부가세가 추가로 붙는다. 횡령에도 부가세가 붙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분담금 부담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두 구역 모두 파크앤시티가 정비업체(재개발·재건축 컨설팅)로 관여하고 있다. 파크앤시티는 용산 참사 때 사고 구역 정비업체였다. 당시 철거용역 업체는 호람이었다. 다원에서 갈라져나온 참마루건설에서 재차 분화한 업체로 알려져 있다. 정비업체와 철거업체를 매개로 용산과 한남이 오버랩된다.
도정법 4조 신설 뒤부터 철거용역 선정은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뒤 시공사 계약 때 함께 이뤄진다. 다원과 조합은 전체 철거가 아닌 지장물 철거라고 설명한다. 시공사 선정 전 철거계약을 금지한 도정법 규정에 해당하지 않아 조합과 계약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계약이 성립하려면 건물과 시설물을 부수지 않고 전기선·수도관·가스관만 따로 캐내야 한다. 한 재개발 전문가의 말이다.
“철거는 건물과 기반시설 전체를 한꺼번에 부순 뒤 그 속에서 전기선·수도관·가스관 등을 고철로 골라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건물·시설을 부수지 않고 전기선·수도관·가스관만 별도로 철거한다는 것은 상식적·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전체 철거계약을 했는데도 별도 계약을 더해 돈을 뜯어가는 구조다.”
철거지역에서 고철을 매입하는 한 업자는 “전기선·수도관·가스관은 건물이나 시설물 콘크리트 속에 같이 묻혀 있다. 건물을 부수지 않고 어떻게 캐낸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한 건설사의 전직 고위 임원은 “업체의 역할에 ‘이설’도 포함돼 있는데 철거한 전기선·수도관·가스선을 어떻게 새집에 이설하나. 그건 범죄”라고 말했다.
한남5구역 조합장은 “(프라나건설·케이원엔지니어링·경북전기가) 다원 계열사란 사실은 몰랐다. 정식 절차에 따라 선정했을 뿐이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용역도 많이 하고 우수한 업체라고 판단해서 계약했다. 전기·수도·가스를 분리 철거하는 것은 다른 구역에서 다 하는 방식이다. 도정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만일 도정법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계약 사실을 원천무효화하면 된다”고 답했다. 도정법 48조 2항과 한남5구역 조합 정관은 건축물·지장물 철거를 관리처분 인가 뒤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남5구역은 사업시행 인가도 안 난 상태다.
‘폭리의 새 영역’, 이주관리까지 분리최근엔 전기·수도·가스 외에 이주관리를 철거에서 별도로 떼어내 추가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번 무대엔 삼무개발이 선다. 삼무개발은 지난 4월18일 옥수13구역 재개발조합과 ‘이주촉진 용역계약’을 11억5천만원에 체결했다. 4년 전 다원이앤아이가 철거계약을 맺을 때 이주관리(주민을 강제로 내쫓는 과정으로 폭력 논란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영역) 업무까지 포함시켜 용역비를 계산한 상태였다. 기존 철거용역 업무는 철거와 이주관리를 통틀어 지칭했다. 다원은 이주관리까지 철거에서 분리해 ‘폭리의 새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튀겨먹는 돈이 이 정도면 10% 리베이트 기술은 기술도 아니”란 말이 업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다원은 ‘철거용역비의 20%를 계약금으로 받은 날 곧바로 10%를 현금으로 조합에 되돌려주는 관행’을 만든 업체로도 유명하다. ‘철거 쪼개기’도 다원이 창시했으나 지금은 모든 재개발 현장에서 보편화됐다. 폐단을 줄이려 만든 법의 틈을 비집고 다원과 철거용역 업체들이 진화하고 있다. 부당이득을 향한 집념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계좌 추적을 통한 다원의 횡령·배임에 초점을 맞춰온 검찰이 재개발 비리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수사가 다원 비리에 한정될 경우 다원의 ‘부당이득 시장’을 다른 철거업체에 나눠주는 결과만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원을 지탱하는 재개발 현장의 자금원이 유지되는 한 이 회장이 정·관계 로비 명단을 실토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작은 로비 정황을 이야기하면 형량을 깎아줄 거냐며 이씨가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정·관계 로비에 사용됐을 현금 흐름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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