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학교를 그만뒀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교사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 권유보다는 강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가지 말로 학생을 억압하는 교육, 폭력적인 교육 현실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학원을 다니며 길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언젠가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이들이 내가 내는 소리를 들어줄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꿈이라는 것.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타일리스트의 꿈을 꾸고 있는 중국 지린성에서 온 16살 이주 청소년 덕곤이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학교를 포기하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지금 다니는 이주민센터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미용도 배우고 있어요.” 자신의 꿈을 스타일리스트라고 소개한 덕곤이. 꿈에 걸맞게 스타일이 범상치 않았다. 염색한 머리와 귀걸이, 옷도 굉장히 멋있게 입었다. 부러워지는 순간이라고 할까나? 이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덕곤이는 한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됐다. 온 지는 1년6개월이 됐다. 한국에 오기 전 덕곤이는 지린성에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0년 전에 이혼을 했고, 한국으로 일하러 떠난 어머니와 떨어져 기숙학교 같은 곳에서 지냈다. 같은 집에 살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는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늘 어색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도 많이 없다는 덕곤이. 어머니와 같이 살려고 한국에 왔지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센터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나처럼 덕곤이도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덕곤이는 센터에서 받는 교육과 미용학원에서 배우는 공부가 다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볼 생각은 안 해본 걸까?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이주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화장실에서 발로 걷어차이는 일도 당하고…. 중국 부모들은 일하러 다니니까 아이들한테 용돈을 많이 주거든요. 근데 돈을 뺏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덕곤이는 자연스럽게 학교를 포기했다. 또한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일이 학교의 정규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학교보다 다른 길을 택했다. 대신 경기도 수원이주민센터를 다닌다. 덕곤이는 친척의 소개로 이주민센터에 오게 됐단다. 센터에서 받는 교육도 맘에 들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정말 좋다고 한다. 덕곤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덕곤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정붙이는 곳이 센터였다. 생각 외로 센터의 교육과정은 엄청 많았다. 댄스, 한국어, 컴퓨터, 바느질, 연극, 운동, 진로지도, 시민교육 등 많은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이주 청소년들의 학교 이야기는 덕곤이를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덕곤이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꿈꾸고 있었다. 같은 청소년이라는 점, 학교를 떠났다는 점, 그런 공통점 때문에 덕곤이와 점점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
“택시 아저씨가 안 좋아해요”
덕곤이가 한국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별로 없긴 하지만, 택시 아저씨가 안 좋아해요. 택시아저씨가 말하는 게, 중국 사람이 여기 한국에 왜 왔냐고 물어봐요. 그 아저씨가 주는 느낌이 ‘나는 높은 사람이다, 너는 낮은 사람이고’ 하고 무시하는 느낌이었어요.” 청소년은 이미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는다. 어른들은 동의조차 없이 반말을 하고 함부로 대한다. 그런데 국적이 다른 이주민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니 같은 청소년으로서 더 화가 났다.
그러나 덕곤이에게 이런 차별보다 더 이상한 것은 한국의 문화라고 했다. 중국에서 덕곤이의 친구들은 나이가 다 달랐다고 한다. 덕곤이는 16살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덕곤이의 친구들은 22살도 있었다고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살 위 사람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상하 관계가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서 자란 나도 이런 일이 부당하게 생각되는데, 생경한 문화를 접한 덕곤이는 어떨까, 참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덕곤이가 참 힘들겠구나 싶었던 문제가 있다. 덕곤이는 1년에 한 번씩 중국을 갔다 와야 한다. 지금 갖고 있는 유학생 비자(F1) 갱신을 위해서다.
덕곤이는 늘 경계에 서 있는 듯 느껴졌다. 중국에서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경계에 있고, 그것은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멀어져 있던 시간이 늘 그를 주변에 맴돌게 했고, 한국은 계속되는 비자 갱신으로 덕곤이를 한국과 중국의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게 만들었다. 넘고 싶어도 넘을 수 없는 차디찬 선이 그어진 곳. 한국과 중국은 16살 덕곤이가 늘 어딘가 속해 있고픈 곳이겠지만 어느 나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덕곤이를 받아주지 않는 듯했다.
한국과 중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중국은 너무 촌스러운 거 같아”라고 말하는 덕곤이. 그는 한국에 비해 중국의 패션이 전반적으로 촌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패션·스타일 쪽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도 한다. 그에게 한국과 중국의 차이는 패션과 문화에서 온다.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어요. 그냥 편한 대로 살면 되니까요. 바라는 게 있다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메이크업, 헤어, 패션디자인…. 내 꿈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센터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내 꿈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으면…”그가 느끼는 한국 사회는 이주민센터의 선생님들, 좋은 친구들, 그리고 중국과 다른 세련된 한국의 패션이다. 그런 느낌이 학교라는 높은 담벼락 안으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학교 안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으면 가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자기 친구에게 조언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교, 다름을 배려하고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학교. 나는 그곳을 떠나서 꿈을 찾았고, 덕곤이는 그곳을 가보지 않았기에 꿈을 꾸고 있다.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학교 바깥에서 하는 우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맞겠지? 학교가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학교를 버린 게 맞겠지? 그런 질문을 던지며 덕곤이와 나의 미래를 모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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