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까짓 쇼 집어치워.” “정 쏘고 싶으면 우리들 가슴팍에다 쏴.”
격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군인들은 당황했다. 현장 책임자인 듯한 박아무개 대령이 나섰다. “어르신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훈련장을 관리하는 6포병여단의 부여단장이라고 했다.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더 볼 것 없다니까.” “이러고도 국민의 군대야?” 현장을 이탈하는 주민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육군본부에서도 왔으니, 마을 위로 포탄이 날아가는 상황을 직접 확인시킵시다.” 주민 몇 사람이 나서 설득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는 걸 뭣하러 보여줘?” “155mm, 8인치 포는 어디다 감춰놓고, 저따위 딱총 몇 개 끌고나와 장난치려 해?” 군이 주민들의 요청으로 마련한 포사격의 소음 피해 공개 검증 행사는 결국 포 한 발 못 쏴보고 45분 만에 무산됐다.
소음에 놀란 척추 다친 주민들10월31일 오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일대는 육군 6군단의 포격 훈련장이 밀집한 곳이다. 한탄강이 길게 남쪽으로 굽이 돌아 흐르는 이 마을엔 52, 53, 60, 64진지 등의 6개 포진지가 있다. 강 건너 서쪽의 거저울 훈련장에 5개 포진지가, 동쪽의 꽃봉 훈련장에 비슷한 규모의 포진지가 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반경 2km 안에 20개에 가까운 포진지가 마을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형세다. 육군 제6군단에 소속된 3개 사단과 1개 포병여단이 사용하는 이 훈련장들을 통칭해 ‘다락대 포병사격장’으로 부른다. 모든 진지에서 발사하는 포탄의 표적지점이 종자산(해발 642m) 자락의 다락대여서 그렇다.
이 일대에선 포격 훈련으로 인한 소음과 진동, 궤도 차량이 일으키는 매연과 분진 등으로 최근 10여 년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여름엔 사격장을 확보하지 못한 경기 김포와 경북 포항의 해병부대까지 ‘원정훈련’을 온다는 사실이 드러나, 주민들이 훈련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날 소동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6포병여단이 마련한 포격 소음 측정 행사에 평소 훈련 때 배치되던 155mm 자주포 등 대구경 화기가 아닌, 105mm 곡사포 6문만 배치된 사실이 확인돼 빚어졌다. 주민들은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고 의도적으로 훈련 환경을 바꾼 것 아니냐”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군 관계자는 “앞으로 마을과 가까운 진지에서는 105mm 등 작은 구경의 포사격만 할 계획이기 때문에, 사전 양해를 구한 뒤 화기를 편성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은 “마을에서 포사격을 계속하려는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며 ‘참관 거부’를 선언하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주민들이 전하는 피해 상황은 심각했다. 신답리 주민 생존권연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300여 명의 마을 주민 가운데 86명이 소음으로 인한 청력 저하 등을 호소했고, 150가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0가구가 포격 때 진동으로 지붕과 벽체 균열, 창문과 전등 파손을 경험했다고 진술했다. 2009년 9월25일에는 포탄 파편이 대낮에 마을을 지나던 승용차 지붕과 빈 집 안마당에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주민 김진홍씨는 “논에서 일하다 갑작스런 155mm 일제 사격(TOT) 소리에 놀라 넘어지는 바람에 서울 청담동 병원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귀농인 전현수씨 역시 2010년 9월 집에서 돌을 나르다 포성에 놀라 허리를 다친 뒤 하체 마비 증세가 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북괴군보다 못한 놈들”이날 오후, 주민 황대진씨와 함께 포진지가 조성된 마을과 주변 구릉을 둘러봤다. 6군단이 3번 국도 일대에 흩어져 있던 13개 포사격장을 통합해 조성한 거저울 훈련장은 신답리 주거지역과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구릉의 능선 위에서 바라본 서쪽 사면의 포진지에선 군인들의 포격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쪽 사면 아래로는 한탄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추수를 끝낸 신답리의 논과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민가, 더 멀리는 포탄의 표적지점인 다락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 아래 포진지와 표적지점을 잇는 직선상에 마을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게 보이죠? 소음만 문제가 아닙니다. 머리 위로 한 해 수천 발의 포탄이 날아다니는 마을에서 누가 안심하고 살 수 있겠어요?” 1996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고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은 황대진씨는 3년 전부터 신답리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군 출신인 자신조차 납득하지 못하는데, 주민들의 불신은 어느 정도겠느냐며 안타까워 했다. “김포, 포항에서만 오는 게 아니에요. 오키나와 주둔 미군까지 이곳에 와서 포를 쏘고 간다고 합디다. 군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빗발치는 민원에도 군은 훈련장 이전 같은, 주민들이 요구하는 근본 대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마을 인근 진지에서 운용하는 포는 소구경(105mm 같은)으로 제한하고, 궤도차량 이동으로 인한 도로 파손과 분진과 소음 등을 막기 위해 전용 우회도로를 만들겠다는 수준이다.
주민들은 ‘그 정도론 어림없다’는 태도다. 한 70대 주민 입에선 이날 “북괴군보다 못한 놈들”이란 말까지 나왔다. “김정은이란 놈도 임진각에 포 쏜다고 위협하며 선량한 인민은 대피하라고 했다더라. 이게 대한민국 군대가 할 짓이냐?” 곳곳에서 “옳소”란 호응이 터져나왔다. 인근 장탄리 이장 이영재(58)씨는 주민들의 박탈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훈련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더구나 전방지역인데 우리가 왜 군의 고마움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지붕 위로, 우리 아이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머리 위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105mm인지, 155mm인지 알아맞힐 정도면 정말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전국의 사격장이 다 그렇다”하지만 군은 기존 사격 방침을 바꾸긴 힘들다는 태도다. 포탄이 민가 상공을 지나지 않게 마을 앞쪽(꽃봉 훈련장)에서만 사격하면 표적지점과의 거리가 짧아지는데다, 다양한 사거리에서 이동 사격을 해야 하는 포의 전술 운용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이날 육군본부에서 나온 훈련장 계획장교(중령)는 ‘신답리처럼 포탄의 탄도가 민가 밀집지역을 가로지르는 포 사격장이 더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국 사격장이 다 그렇다”고 답했다. 다음날 육군본부로 직접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수치 확인을 요청했으나, “출장 중이라 당장은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도 신답리 주변 진지에선 105mm와 155mm 포격 훈련이 이어졌다.
연천=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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