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백발의 앤지 젤터(61)는 영국 출신의 평화운동가다. ‘스노볼 캠페인’을 벌이며 영국 내 미군기지의 펜스를 끊었고, ‘트라이던트를 보습으로’ 운동 때 핵잠수함 트라이던트 기지에 잠입해 반핵을 외치다 구속 기소됐다. 한 달 넘게 강정마을에서 싸우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영국으로 강제 출국당했다. 조지프 거슨(66)은 ‘68세대’다. 청년 시절부터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했다. 1976년부터 ‘미국친우봉사회’에서 반전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앤지 젤터의 여전히 뜨거운 문장과 단어는 그의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했다. 조지프 거슨은 국제정치의 내밀한 동학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의견은 대부분 비슷했고 가끔 어긋났지만, 그들이 강정에서 본 것은 동일했다. 그것은 미국의 그림자였다.
구럼비 바위 본발파가 시작됐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미국의 세계전략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조지프 거슨(이하 거슨) : 분명히 그것(강정 해군기지)은 미국의 군사전략상 중요한 전환의 일부이며, 미국이 석유와 관련해 중동에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군사기지와 미사일기지로 중국을 에워싸려는 장기간의 계획이기도 하다.
앤지 젤터(이하 젤터) : 같은 견해다. 미국은 여전히 제국이다. 다만 내게 강정은 환경, 기후변화, 음식과 물의 안전성, 군국화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상기시킨다. 한국인들은 아직 기후변화 등의 문제에 대해 절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제국이라든가 군사 문제 같은 것을 주로 이야기할 뿐, 군국주의 문제를 환경문제와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질문하자면, 한국 정부와 군, 몇몇 도민들은 ‘강정 기지가 경제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슨 : 정말 경제 발전이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가 살던 미국 보스턴 항구를 핵기지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다. 수많은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약속이 있었다. 정말 그런지 조사해봤다. 기지 건설과 관련한 중요한 건설노동자와 기술자들은 보스턴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저 왔다가 그냥 갔다. 한국인들이 결국 누가 돈을 가져가는지 깊게 생각해보길 권한다. 약간의 돈이 잠깐 동안 (강정에) 들어올 수 있지만 장기간의 비용을 생각해보라. 범죄·군사주의 같은 비용 말이다. 일본 오키나와의 기지들을 살펴봐라. (산업이란) 성매매, 집창촌, 술집 이런 것들뿐이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자유주의 정부(Liberal Administration)에서 시작됐다는 게 강정마을 논란의 슬픈 측면이다.
거슨 :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의 중심지에서 그나마 주변부로 기지를 옮기는 것이 거대도시에서 기지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다수에게 혜택을 주리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현실정치’(Realpolitik)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암시했다.)
강정 문제에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관련돼 있다. 바람직한 미-중 관계, 어떻게 가능할까.
거슨 :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대만이 최우선 사항이다. 중국의 군사기지와 미사일기지들은 주일미군이 대만 독립과 관련해 중국-대만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남중국해의 자원전쟁이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교류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 한다. 그것은 좀 이상하다(Odd). 바람직한 ‘안보관계’(Security Relationship)를 만들어야 한다. (미-중) 군비 경쟁?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때 중국이 미국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황해에 끌고 오지 말라”고 말했다. 미국은 곧장 보냈다. 얼마 전 최초로 중국대사를 지냈던 외교관과 서신으로 의견을 나눴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중국 눈앞에서 중국의 목을 죄려 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건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간접자본은 붕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못 받고 집을 잃고 중산층 아이들은 점점 교육에서 소외된다. 이런 걸 고치는 게 국가안보다. 또한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야 한다.
거슨 : 세계적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쓴 글도 그렇고, 강정 기지가 무엇보다 미군기지라는 생각이 많다. 한국처럼 고도로 개발된 나라에서는 먼저 기지가 지어진 다음, 미국이 기지 사용권을 얻는다.
젤터 : 미국이 개입됐음을 숨기는 건 영국에서도 똑같다. 정식 명칭은 ‘왕립공군기지’(Royal Air Force)지만 다들 미군기지라고 부른다. 그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올해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만약 한국에서 야권이 승리해 다시 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그 정부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저항할 수 있을까.
거슨 : 현 정부와 군이 야권이 강정 기지를 짓지 않으려 하는 점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다. 아마 그래서 기지 건설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일 게다. 공사가 진전되면 되돌리기 어려우니까. 단시간 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제주도에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와 압력이 있다는 점이다.
젤터 : 내 대답은 ‘불신’(Doubt)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이다. (기지 건설 반대) 압박이 충분하지 않다면 정치인들은 또한 그걸 고려한다. 기본적으로 기지를 막아내느냐는 한국 민중에 달려 있다. 그건 투표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강정에) 관여(Involved)하느냐의 문제다.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어떻게 전망하나.
거슨 : 어느 정도의 성취는 있을 수 있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테러를 막는 것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진실은 미국이 핵무기를 계속 유지할 것을 고집하는 한, 다른 국가들도 그러리라는 것이다. 그런 이중규범(Double Standards)과 위선(Hypocracy)이 핵 위기를 심화한다.
오바마 대통령 아래서 미국의 핵 전략에 변화가 있을까.
거슨 : 그러리라 본다. 대기자 밥 우드워드(워터게이트 특종 기자)가 어떻게 미국 군부가 오바마 대통령을 요리하는지에 대해 책을 썼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우선 과제는 핵 확산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군 예산을 배정하고 핵무기 제작 등 추잡한 짓들(Nasty Things)도 계속하고는 있다. 그와 동시에 극비리에 핵 정책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결과는 비공개지만, 보도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현재 핵무기를 유지하는 것, 둘째 700~800기 정도로 핵무기를 줄이는 것, 셋째 300~500기로 줄이는 것.
젤터 :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핵무기 산업은 통제를 벗어나 있다. 그것(핵무기 폐지)은 다른 나라들이 “당신들 5개 나라가 진짜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계속 지적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다. 여전히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문제다.
과거 북핵 사태 때 민족주의에 경도된 한국의 일부 진보파는 미국의 이중 규범을 근거로 북한도 핵실험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 논쟁을 보며 냉전 시기 유럽 좌파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떠올렸다. 양심적인 좌파들은 소련의 핵무기에 반대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은 찬성했다.
거슨 : 어느 나라도,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핵무기를 실험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젤터 : 핵무기는 인간의 도덕감정(Moral Integrity)을 파괴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도민 속인 해군, 기습 발파
결국 폭파된 구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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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가 깨졌다. 해군기지 시공회사인 대림산업은 3월19일 오후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을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지난 3월7일부터 해안 발파가 이뤄졌지만 바위 발파는 처음이다. 그날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처분에 따른 청문 하루 전날이었다. 제주도가 ‘왜 기지 건설을 정지해야 하는지 잠시 논의하자’고 정한 날 하루 전에 해군이 발파를 강행한 것이다. 지난 3월20일 청문에서도 부두 설계와 관련해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 해군의 요청에 따라 청문은 다시 3월29일로 연기됐다.
근본적인 대립은 설계 문제 너머에 있다. 이런 대립은 해군과 정부가 불러왔다는 평가가 많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기지 건설 반대 의지가 없었다. 2011년 9월 주민과 활동가들이 구속될 때도 별다른 견해 표명이 없었다. 2011년에는 제주도의회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를 취소 의결한 것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다. 말하자면 도의회가 ‘기지 건설에 제동을 걸자’고 제안하자 우근민 도지사가 ‘이왕 기지를 짓기로 한 걸 되돌리면 더 문제니 그냥 가자’고 답한 셈이다.
이런 도지사의 태도는 국방부 때문에 바뀐다. 국방부와 정부가 2009년 제주도와 협약서를 체결하며 도민을 속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김태환 전 도지사는 국방부의 요구로 군과 ‘해군기지’ 제목의 협약서에 서명한 뒤 도민들에게는 ‘관광미항’이라는 제목의 협약서를 공개했다. 국방부는 물러섬이 없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아예 ‘해군기지’라고 못박았다. 화난 도민들에게 ‘그래서 어쩌란 것인가’라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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