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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받지 못한 아버지의 적금

일제가 군인 등의 임금 떼 강제 가입시킨 군사우편저금… 한일협정으로 돈 한국에서 주는데도 사실 확인 소극적인 일본
등록 2012-03-16 16:30 수정 2020-05-03 04:26

경기도 구리에 거주하는 박남순(69)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의 부친 박만수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1943년 11월 해군 군속으로 징용돼 1944년 2월 미크로네시아제도의 트럭섬을 둘러싼 ‘트럭섬 공방전’ 과정에서 숨졌다. 미드웨이해전에서 이긴 미군이 일본의 숨통을 끊으려고 파죽지세로 필리핀을 향해 진격하던 시기였다. 그는 “아버지가 징용될 때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1엔에 2천 곱한 금액 지급
이후 조국은 해방됐고, 박씨는 나이를 먹었다. 부친을 잃은 박씨의 상처가 조금 아물게 된 것은 그 뒤로 6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6월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만들어진 뒤, 박씨는 사망자 유족에게 주는 위로금(2천만원)과 부친 이름으로 남겨진 미불 임금 등에 대한 미수금 지원금을 지급받았다. 돈보다도 일본의 전쟁에 동원돼 24살에 숨진 아버지가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됐다는 사실이 좋았다.
박씨는 지난해 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를 통해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부친의 이름으로 가입된 군사우편저금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군사우편저금이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정부가 군인과 군속들에게 지급되던 임금의 일부를 떼어 강제적으로 가입시킨 적금의 일종이다. 그러나 1965년 체결된 한일협약에 따라 유족들의 청구권이 사라져, 이 돈을 지급할 의무는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는 2007년 12월 지원법을 만들어 1엔에 2천을 곱한 금액을 유족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그에 따라 박씨 등 37명의 유족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아버지들의 이름’으로 얼마의 군사우편저금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일본 관계기관에 액수 확인을 요청하는 서류를 보낸다.
서류를 보낸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회신이 오지 않았다. 상황이 궁금해진 이희자 보추협 공동대표 등은 지난 2월20일 곤노 아즈마 일본 민주당 의원의 소개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일본 실무자들을 항의 방문했다. 보추협의 항의를 받은 일본 실무자들은 “우편저금 관련 명부에는 국적이 없어 자료 제공이 힘들다”고 말했다가, “(일본에 동원된 군인·군속들의 인적사항을 담은) 유수명부를 통해 출신지를 확인하면 한국인을 가려낼 수 있다”는 보추협의 지적을 받고 “자료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 2월20일 일본 도쿄에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단(오른쪽)이 군사우편저금 관련 서류를 관리하는 유조은행을 방문해 ‘조속한 자료 제공’을 요청하고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지난 2월20일 일본 도쿄에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단(오른쪽)이 군사우편저금 관련 서류를 관리하는 유조은행을 방문해 ‘조속한 자료 제공’을 요청하고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일본 성의 갖고 자료 제공해야”

김민철 보추협 집행위원장은 “액수가 확인되면 돈을 지급할 의무는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에 있는데도 자료 제공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위로금 등의 지급 신청이 6월에 끝나는 만큼 일본이 좀더 성의를 갖고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한겨레 국제부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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