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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언론인들의 존재증명

감당 안 될 정도로 대박난 <뉴스타파> 노종면 기자·이근행 PD… “MB 시대 자기검열하는 동료 언론들에게 자극 됐으면”
등록 2012-02-08 16:46 수정 2024-11-06 11:24

2010년이었다. 노종면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천안함 취재 현장에서였다. YTN ‘해직’ 기자였지만 언론노조 등 언론 3단체 천안함 언론검증위 위원으로 천안함 취재를 하는 기자들과 공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 선임 반대를 주도한 이유로 해고된 지 2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현장에 있었더라면”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취재하는 어떤 기자라도 ‘노종면이 현장에 있었더라면’이라는 바람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근행 PD를 만난 것도 2010년이었다. 노조위원장으로 39일간 문화방송 파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작지만 강건했다. 자부심이 넘쳤다. 김재철 사장의 부임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PD가 노조위원장으로 39일 동안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낸 그 과정을 폄하할 수는 없다. 두 번의 파업을 주도한 그는 결국 그 이유로 해고됐다.

‘드림팀’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해직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조합이다. 문화방송

‘드림팀’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해직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조합이다. 문화방송


노종면 “앵커 때도 이런 뜨거운 반응 없어”

지난 2월2일 두 사람을 만나려고 인터넷 방송 <뉴스타파> 제작 현장을 찾았다. <뉴스타파>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대박이 났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관위 투표소 변경 의혹,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무기 도입 추진 등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던 주제들을 다뤘다. 방송 직후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아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한 서버가 견디지 못했다. 유튜브에서만 5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특히 선관위 투표소 변경 의혹은 <뉴스타파>가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됐다. 반응이 뜨겁자 선관위에서는 직접 <뉴스타파> 제작진을 찾아 설명하기도 했다. 노 기자는 “선관위가 사실관계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 기자는 “선관위는 보도 내용에 오류는 없지만 선관위가 투표소 변경 과정에서 선거 방해 의도를 가진 게 아니었고 착오와 실수가 있었다는 설명을 했다”고 전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음모론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 기자는 “SNS로 맞대응하는 것보다 차후 취재를 통해 사실관계를 납득시키는 것이 옳겠다는 판단”이라고 답했다. 보도로 입증하겠다는 언론인의 결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언론노조 사무실 한 귀퉁이의 촬영 현장은 썰렁했다. 이근행 PD가 맡은 투표소 변경 내용에 대한 보충 취재가 진행돼, 예정된 녹화는 취소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이 PD는 ‘큐’ 사인을 하고 있어야 했다. 기획과 촬영, 인터뷰, 편집 등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직접 현장에 나간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문화방송<PD수첩>시절, 4주에 한 번 한 꼭지를 맡아 기획을 진행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적 토대였다. 1회의 반응에 대해 물었다.

“갈증이 있었나 봅니다. 1회 시청자 수를 따지면 YTN 시절과 맞먹는 것 같아요. 하지만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것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상파 뉴스 이상이라고 해야겠죠. <뉴스타파>를 보는 사람들은 이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본 사람들이어서인지 의견표명이 더 적극적입니다. 몇 년 동안 앵커를 하면서도 이런 반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근행 “취재 인프라 충분치 않아 힘들어”

노 기자도 취재·편집·기획 등 모든 과정에서 함께하고 있다. ‘돌발영상’을 만든 당사자이자, 메인 뉴스를 진행한 YTN의 대표적인 앵커였다. YTN 시절에 만든 돌발영상을 본뜬 ‘공갈영상’을 직접 만들어 한 꼭지를 책임지기도 한다. 목적의식은 분명했다. 노 기자는 “당연히 해야 할 보도를 하고 있지 않은, 또는 못하는 동료 언론인들에게 자극이 됐으면 한다”며 “특종이 목적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검열 때문에 취재를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른 언론인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자극’은 일종의 경고로 해석되기도 한다. “기성매체가 지금 환경 변화와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존 독점적·우월적 지위를 누린다면 결국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곧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방송이 일반 시청자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시스템으로 오해되고, 그 내부에 있는 언론인들도 그런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이번 방송이 SNS, 팟캐스트 등 달라진 매체 환경을 실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송의 엄숙주의를 깬 돌발영상의 당사자답다. “그래도 (방송의) 기본은 똑같다”고 말한다. <뉴스타파>의 사무실이자 촬영 스튜디오, 편집실 등을 겸하는 언론노조의 한 회의실에서는 청와대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이근행 PD가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노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지 30여 분이 흐르고 나서다. 현장의 기운이 남아 있어 얼굴이 상기됐다. 기자의 질문에 “(인력·자원이) 열악해서…”라고 멋쩍게 웃는다. “그래도 문화방송 동료들이 허접하다고 말하면 서운하다”고 덧붙인다. 그의 등장과 함께 사무실은 소란스러워졌다. 취재를 마친 제작진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촬영팀이 장비를 들고 현장에서 복귀했고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인터뷰에 예의를 차릴 겨를 없이 현장은 돌아갔다. 문화방송 파업에 대해 먼저 물었다.

“당연한 귀결이지요. 지금의 상황이 없다면 다음 정권이 어떤 성향이더라도 다시 이른바 ‘공영’방송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찾기 힘들 거예요.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국민을 상대로 어떤 방송으로도 설득하기 힘든 상황이 올 거고요. 이명박 정권과 문화방송 사장의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방송 보도의 기능을 되찾는, 후임 사장이 오더라도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요구가 필요할 거예요. 사장 선임제도나 (사장 선임의 권한 등을 가진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위원회의 개혁을 우선 해야 할 겁니다.”

그는 “87년 체제를 언론 역사에 투영해보면 방송사로서는 그것의 한계가 왔고 새롭게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길목이 될 것”이라며 “지난 (39일의 파업) 투쟁보다 더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뉴스타파>로 돌아갔다. 어려운 여건에 대해 솔직히 말한다.

“취재 일선에서 뉴스의 흐름들과 함께하거나 취재 인프라가 충분하지는 않아요. 해직자로 기존 제도권 밖에 있으니 취재 아이템이 축적되지 않는 상태고요.”


“애리조나 프로젝트로 봐달라”

취재할 여건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마자 후원금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실제 인터뷰 중에 레슬러이면서 방송인이기도 한 김남훈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지원할 방법을 알려달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PD를 비롯한 제작진은 일단 후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어려운 상황을 감내하면서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직 언론인이라는 신분에서 내가 갖고 있는 존재의 이유는 뭘까, 이런 고민의 답이랄까. 솔직히 놀 수는 없고. 하하하.”

이 PD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지만, 팟캐스트나 SNS에 대한 생태적인 거부감이 있다는 고백에 주저함이 없다. 활자 세대로 책이 편하다. 그런 그가 개인의 취향으로 사회적 의무감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년차 <PD수첩> PD가 아닌 2주차 <뉴스타파> PD의 발로 뛰고 있었다. 당장은 복직보다 ‘다음엔 또 뭐하지’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의 고민은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노종면이라는 존재가 든든하다. “친하지 않다”며 사진 촬영에 어색해하는 두 사람은 <뉴스타파>의 공동 운명체다. <뉴스타파>의 열악한 조건을 들어 지속 가능성을 물었다.

“일단 주어진 조건을 인정하고 무리 없이 돌아가도록 세팅을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1년짜리 ‘남극의 눈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한국방송 정직자도 생겼고(한국방송은 최근 2010년의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당시 노조 간부들에게 무더기 정직 조처를 했음) YTN 해고자들도 있으니까. 어쨌든 당분간은 끄떡없이 계속 갈 것 같아요. 하하하.”(이근행 PD)

이 PD의 짓궂은 농담에 노 기자는 진지한 원칙을 세우고 다가왔다. <뉴스타파>를 “애리조나 프로젝트로 봐달라”는 것이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란 1976년 미국의 <애리조나 리퍼블릭>이라는 지역언론에서 마피아 문제를 취재하던 탐사전문기자가 피살을 당하자, 미국 각지에서 수십 명의 기자들이 휴직이나 퇴직을 자처하고 애리조나에 모여 탐사보도를 진행하며 그 진상을 파헤쳐 언론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사건을 말한다.

언론인들이 ‘죽어야 사는’ 잔인한 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총 61명의 언론인이 기소됐고, 183명이 해고를 포함한 중징계를 받았다. 2012년 2월 현재 문화방송은 총파업에 돌입했고, 한국방송은 보도본부장을 불신임하고 조만간 파업 찬반 투표를 결정할 예정이다. <부산일보> 사태도, <국민일보>의 파업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파>는 계속된다. 노종면 기자와 함께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식 YTN 사장 선임 반대를 계기로 해직된 권석재 YTN 기자가 촬영과 조명을 맡았다. 제작에 참여하는 김용진 한국방송 기자의 경우 한국방송의 탐사보도팀을 이끌다 취재와 무관한 부서로 전출됐다가 2010년 정직 4개월을 받은 ‘경력’이 있다. 최상재 SBS PD(전 언론노조 위원장)도 얼마 전 SBS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섰다. <뉴스타파>를 봐야 하는 2012년은 언론인들에게 ‘죽어야 사는’ 잔인한 해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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