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5일 오후 3시 무렵, 사상 초유의 전국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서울·인천·부산·천안 등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급작스러운 정전으로 불편을 겪고 큰 피해를 입었다. 전기가 끊기자 편리한 도시는 갑자기 불편한 곳이 돼버렸다. 24시간 전기로 환하게 불을 밝히던 사무실이 갑자기 깜깜한 콘크리트 동굴로 변했고, 고층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이동시키던 엘리베이터는 공포를 유발하는 스테인리스 감옥으로 변했다. 대체 우리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현대 도시는 편리한 곳인가, 위험한 곳인가?
정전된 뉴욕, 물바다된 뉴올리언스
사실 현대 도시는 기적이다.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는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현대 도시는 근대화의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좁은 땅 안에 수많은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가 바글거리고 있어도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체적으로 현대 도시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많은 물자를 소비해서 풍요를 누리며 편리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큰 위험을 내장한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온갖 사고와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위험도시로서 현대 도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현대 도시가 과학기술에 의지해 작동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현대 도시는 비자립적이다. 그 풍요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외부에서 들여오는 자원에 의한 것이다. 거대한 송전선과 상수관으로 공급되는 전기와 물이 기본적인 예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은 위험의 원천이기도 하다. 예컨대 핵발전은 엄청난 양의 전력을 생산하지만 지구를 죽음의 별로 만들 수도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 점을 강조해서 과학기술에 의지하는 현대사회를 아예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위험사회의 논의를 도시에 적용해서 우리는 현대 도시를 과학기술의 덫에 걸린 ‘위험도시’로 규정할 수 있다.
위험도시로서 현대 도시의 특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곳곳에서 확인됐다. 현대 도시를 대표하는 미국의 뉴욕을 보자. 뉴욕에서는 1965년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뉴욕 시민들은 초유의 정전 사태에 놀라 ‘아마겟돈’이 도래했다고 공포에 떨었다. 미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했지만 뉴욕시에서는 그 뒤로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몇 차례 더 일어났다. ‘재즈의 고향’으로서 ‘마디그라스’라는 도시 축제로도 유명한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공격을 받고 졸지에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뉴올리언스는 토목공학을 과신해서 강을 함부로 변형하고 도시를 건설한 잘못의 대가를 무섭게 치렀던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현대 과학기술에 그 뿌리를 둔다.
현대 도시가 단순히 풍요와 편리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편의 공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도시들이 이미 잘 보여주었다. 현대 도시를 단순히 풍요와 편리의 공간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위험도시의 제물이 되지 않으려면 이 명백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현대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과학기술의 양가성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야 한다. 핵발전의 경우 가장 명확한 예이지만, 과학기술은 야누스처럼 풍요와 위험의 두 얼굴을 가졌다. 우리가 풍요에만 도취해서 양가성을 잊어버리면 위험은 결국 사고로 폭발하고 만다.
50년만에 위험도시 국가로 변해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잘 관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대표적 기술 낙관론자인 미국의 앨빈 토플러는 아예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과학기술을 잘 관리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과학기술 이용에 관한 여러 연구들의 결론으로 “현대사회가 너무나 복잡해서 과학기술의 위험을 완전히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핵발전 폭발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이지만, 이미 한 차례의 준폭발사고와 두 차례의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어설픈 ‘관리만능론’은 그 자체로 사고의 원천일 뿐이다.
눈을 돌려 우리의 현실을 보자. 한국의 도시화율은 90%에 이른다. 대다수 한국인이 현대 도시에서 편리한 일상을 누리며 살고 있다.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대표적인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농촌국가에서 도시국가로 변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심각한 위험도시 국가가 되었다. 이에 관한 사례는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떤 사고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지난 9월15일의 전국 정전 사태는 위험도시의 문제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도시를 지탱하던 전기가 갑자기 끊기자 도시는 더 이상 풍요와 편리의 공간일 수 없었다. 도시가 갑자기 강력한 공간에서 취약한 공간으로 변모해버렸다. 지난 7월 경북 구미는 단수 사태에 시달려야 했다. ‘4대강 살리기’ 공사로 말미암아 구미의 취수장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미는 ‘똥 도시’가 되었다. 물이 공급되지 않아서 수세식 변기의 변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편리하고 안전한 ‘수세식 사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03년 2월의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는 지하철이라는 편리한 교통수단이 졸지에 ‘지옥철’로 변모한 참담한 사건이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앞에 두고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사고를 알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서구와 비교해서 위험도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상태에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과학기술은 풍요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큰 위험의 원천이므로 조심스럽게 이용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과학기술의 풍요에 초점을 맞춰 위험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해 유포되고 강행된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적인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4대강 살리기 공사’와 ‘핵발전 확대 정책’이 단적인 예다. 전자는 자연의 강을 인공 수로로 만드는 후진 공사이고, 후자는 절멸의 위험을 확대하는 후진 정책이다. 선진국에서는 모두 폐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강행되고 있다.
한국은 고위험 저정비 사회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비리와 부패다.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맹위를 떨치더라도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비리와 부패가 만연해서 과학기술 만능주의의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과학기술의 위험도와 그것을 관리하는 사회체계의 정비도를 기준으로 사회를 구분하면, 독일은 고위험 과학기술과 고정비 사회체계가 결합된 위험사회인 데 비해, 한국은 고위험 과학기술과 저정비 사회체계가 결합된 악성 위험사회다. 악성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이 사고로 폭발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점에서 악성 위험사회는 아예 ‘사고사회’로 부를 수 있다. 비리와 부패가 만연한 가운데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한국은 흔히 위험이 사고로 폭발하는 사고사회의 좋은 예다.
지난 전국 정전 사태도 결국 비리의 산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력공사를 찾아가서 전국 정전 사태에 대해 ‘격노’했지만,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격노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한전의 김중겸 사장은 ‘대구·경북(TK)-고려대-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이고, 한전과 11개 자회사의 감사 12명이 모두 인수위, 청와대, 현대 출신으로 돼 있다. 전력의 생산과 보급은 핵발전이라는 위험한 과학기술을 다룬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 중대한 과제를 냉철한 전문가가 투명한 방식으로 다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하들에게 ‘보답’하는 방식으로 이용했다. 그 결과, 사고사회의 문제가 여실히 입증되고 말았다.
본래 도시는 문명의 정화이며 문화의 터전이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어서 자연의 위험을 막고 안전하고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 도시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그 위험은 현대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과학기술 자체에서 비롯된다. 현대 도시를 풍요와 편리의 공간으로 일방적으로 찬미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이며 매우 위험하다. 현대 도시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관리를 개선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물자 소비를 줄이고 자체 생산을 추구해서 비자립 도시를 자립 도시로 만들고, 핵발전 같은 위험한 기술이 아니라 ‘햇빛발전’ 같은 안전한 기술의 이용을 늘려야 한다.
탈토건, 탈핵의 서울을 위하여
오는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새로운 서울시장은 위험도시의 문제에 대처해서 서울을 안전도시의 모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탈토건’과 ‘탈핵’을 기반으로 해서 복지와 고용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위험도시를 넘어서 안전도시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히 시대적 요청이다. 사고사회가 빚은 인재(人災)인 초유의 전국 정전 대란을 계기로, 위험도시로서 현대 도시의 특성을 돌아보고 안전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힘과 뜻을 모아야 할 때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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