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3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에서는 동영상 시사회가 열렸다. 주인공은 돼지였다. 지난 1월 경기 이천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진행된 구제역 살처분 장면을 담은 6분짜리 동영상에 참가자들은 경악했다. 각 인터넷 포털에서는 ‘돼지 동영상’이라는 단어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생매장 순간 일제히 우짖는 돼지들의 굉음은 지옥도였다.
그곳에서도 구제역 바이러스 살균을 위해 석회를 뿌렸다. 석회와 반응한 돼지 사체는 녹으며 끓어올랐을 것이다. 한 달이 흐른 지금, 이제 걱정은 구제역이 아니라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다. 안전성 논란에 주민들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몰 지역이 몰린 이천과 여주에서는 생수 판매가 급증했다.
독성 파악도 안 된 상태로 방류?
침출수는 뭘까? 침출수는 고체 폐기물이 물리·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면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매립 처분하는 폐기물에서 나오는 고농도 폐수를 의미한다. 공공 수역 및 지하수를 오염시킬 염려가 있어 처리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4500여 곳에 달하는 가축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를 한꺼번에 전국의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일반 폐수의 경우 하수처리장에서 생화학적 산소요구량, 총질소, 총대장균 같은 수질검사를 거쳐 기준치 이내로 나오면 그냥 방류하는 사례를 들어 하천 수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침출수를 방류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정부의 침출수 대책에 전문가들의 반응은 차갑다. 이강근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누구도 사체 침출수에 대한 독성실험을 전면적으로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안전성을 자신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 동물 사체의 침출수가 어떤 상태인지는 어떤 연구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광용 박사(환경독성학)는 “침출수가 탄저균이나 구제역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침출수는 토양화되는 과정에서 비료처럼 분해된 것이 아니라 오수로 부패된 것이어서 환경오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침출수가 강에 유입돼도 안전하다는 것은 무책임한 말일 수 있다”며 “현재 시민환경연구소에서는 전국 매몰지 시료를 채취해 구제역 바이러스 여부와 생태 독성 여부를 직접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대안은 백가쟁명이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국민 정서나 국가 이미지를 언급하면서 톱밥을 섞어 소각장에 보내 처리하는 방법을 실행토록 고려 중이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처럼 “생물학적 유기물이므로 축산분뇨를 퇴비로 만드는 것처럼 고온 멸균해 퇴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침출수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일단 침출수 추출을 시작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가장 광범위한 매립지를 보유한 경기도는 한 달 이상 지난 매몰지 안에 유산균과 구연산 혼합액을 넣어 침출수를 산성으로 만든 다음 뽑아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강산성의 환경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살 수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이렇게 뽑아낸 침출수를 가축분뇨 처리시설로 옮겨 미생물을 활용해 1차로 정화하고, 다시 하수처리장으로 보내 2차 처리를 한다. 이 방법은 침출수를 추출하는 과정이나 옮기는 과정에서 공기로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분뇨 처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채택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침출수 배출관 45%가 부실경기도 관계자는 “매몰 과정에서 생석회의 발열로 살균이 이미 진행돼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안전성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강근 서울대 교수는 “지금 어떤 방법이 병원균을 완전히 차단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100% 안전하지는 않더라도 침출수 오염 확산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현실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침출수를 처리할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출수를 뽑아내는 게 여의치 않은 곳이 많다. 현재 전체 4500여 개에 달하는 매몰지 가운데 2017곳이 몰린 경기도에서 1844곳을 조사한 결과 45%인 829곳의 침출수 유공관이 부실 시공돼 모두 재시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공관은 사체가 부패하면서 나오는 침출수를 모아 빨아들일 수 있도록 한 플라스틱 관이다.
애초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매몰을 원상복구하고 친환경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생태적 차원에서 매몰지에 흙을 더해 자연정화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생태국장은 “애초부터 충분한 흙과 함께 매몰됐다면 부패가 아니라 분해 작용이 시작됐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다시 파내서 토양을 함께 섞는 방식으로 토양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몰에 동원된 중장비가 그대로 동원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토양오염 물질이 공기 중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 등을 오염 물질 위에 설치하고 장기간 격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비다. 2월26일부터 내린 비는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적셨다. 특히 경상북도는 1064곳의 매몰지 가운데 280여 곳의 침출수가 그대로 고여 있고, 낙동강이나 그 지류 하천에 조성된 매몰지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빗물이 침출수를 넘치게 하거나 지하수로 스며들게 해 2차 피해가 올 것을 우려한다. 경기도는 서둘러 전체 2230개의 도내 매몰지 표면에 0.2mm 두께의 비닐을 두 겹으로 깔고 필요한 경우 그 위에 방수포를 깔아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도록 했다.
지하수와 만나면 피해 규모 예측 불가하지만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특히 침출수가 지하수와 만나면 그 피해 범위를 측정하기 어렵다. 이강근 교수는 “현재 매몰지 구조로는 완전 방수가 힘들어 시간이 흐르면서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각각의 매몰지 오염도를 따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광용 박사는 “지하수의 맥은 예측하기 힘들다”며 “비가 오면 침출수를 더 멀리 이동시킬 것이며, 이는 침출수에 실린 균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침출수 오염 우려와 관련해 매몰지 인근에 야생동물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솟구친 침출수에 야생 쥐와 너구리, 새 등이 접촉한 것을 확인했다”며 “만에 하나 바이러스가 사멸하지 않은 채로 접촉된다면 얼마나 어떻게 퍼져나갈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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