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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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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 위원장을 위장취업자로 위장하는 정부

합법 체류기한 남았지만 ‘위장취업’으로 표적단속 당한

미셸 위원장이 고발하는 “한국 정부의 파시즘”
등록 2011-03-03 15:17 수정 2020-05-03 04:26

‘카투이라 파라루만 미셸린 페드라기타’. 길고 낯선 이름이다. 그 이름이 지난 2월23일 서울행정법원 법정에서 호명됐다. 줄여서 ‘미셸 카투이라’로 불리는 불혹의 이 노동자는 지금 본국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위장취업’을 했다는 게 이유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20여 년 전 독재정권 시절에나 들어봤을 법한 사유로 지난 2월10일 미셸 카투이라의 체류 허가를 취소하고 3월7일까지 출국할 것을 요구했다. 미셸 카투이라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위원장이다. 이주노조에서는 곧바로 출국 명령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취소소송을 냈다.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은 위장취업을 이유로 한 법무부의 체류 허가 취소와 출국 명령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는 “고용 노동부가 알선한 업체에 다닌 것이 위장취업이냐”고 되물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은 위장취업을 이유로 한 법무부의 체류 허가 취소와 출국 명령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는 “고용 노동부가 알선한 업체에 다닌 것이 위장취업이냐”고 되물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정부가 알선한 회사에 위장취업?

이날 소송 심리를 마치고 나온 미셸 위원장의 얼굴은 의외로 밝았다. 그가 설명하는 ‘위장취업’의 이면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얼마나 군색한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입국관리법 제89조 1항 2호 위반(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체류허가 등을 받은 것이 밝혀진 경우)을 내세웠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조사 결과 체류허가 신청시 제출한 내용(ㄷ사 근무)과 달리 관할 세무서에 등록된 사업자등록증상의 기재된 주소지에는 ㄷ사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체류허가 취소와 출국 명령은 그것을 근거로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ㄷ사가 정말 존재하지 않았는지다. 미셸 위원장이 ㄷ사에 오기 전 일한 곳은 원래 ㅇ사다. ㅇ사는 임금을 체불하고, 정규 업무 이외의 야간근로를 강요했다. 미셸 위원장은 고용노동부에 직장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고,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서 ㄷ사를 소개했다. 여기서 핵심은 위장취업을 했다는 ㄷ사를 ‘정부가 알선했다’는 사실이다. ㄷ사는 구두 수선을 하는 업체였는데, 미셸 위원장이 옮겨온 뒤 일감 부족으로 사실상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미셸 위원장은 “일감 부족으로 일이 줄어들고 임금이 체불되기는 했지만 이주노조 활동이 수월해졌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소개해준 업체에서 일하다가 그 업체의 일이 없어진 게 이주노동자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또 같은 주소에 업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정이 어려운 ㄷ사가 원래 자리에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못해 같은 층의 다른 사무실 한켠을 빌려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송을 맡고 있는 윤지영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업체가 휴업 상태라고 해서 그 업체의 이주노동자를 문제 삼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은 회사의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된 이주노동자를 내쫓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체류 자격이 취소되고 출국 명령을 내린 예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미셸 위원장의 목소리는 격앙돼갔다. 한국말이 여전히 서툰 그는 어쩌다 이주노동자의 대표가 됐을까? 원래 그는 먹고살기 위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누이·형제들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먼저 입국 허가가 나온 한국으로 왔다. 그저 돈을 벌 생각밖에 없었다.

끝없는 이주노조 위원장 잔혹사

“정말 묵묵히 일만 했어요.” 2006년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곳은 울산의 한 자동차 범퍼 생산업체였다. 페인트칠을 했다. 당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날이 많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필리핀에서 온 동료가 함께 일하던 한국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모두가 침묵했다. 참다 못한 미셸이 가해자를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가해자 대신 사장이 나섰다. “소송해도 좋다. 필리핀으로 갈 생각 하고 그렇게 하라”며 도리어 협박했다. “당시엔 노동법도 뭣도 몰라서…. 그 친구를 남겨놓고 온 게 마음에 걸려요.” 1년 뒤 미셸은 계약 만료로 직장을 옮기게 되고, 그 필리핀 동료는 그 업체에 남았다. 벌써 5년 전의 일인데 미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수난은 이어졌다. 이후 옮긴 경기 용인의 한 전자업체에서 옆자리 동료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때 이주노조를 처음 알게 됐다. 2년 뒤 미셸은 합법적인 신분의 첫 이주노조 위원장이 됐다.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지난 2월22일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출국 명령을 철회하고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강제출국 명령의 부당함을 알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 2월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법무부는 2005년 5월 이주노조 출범 뒤 이주노조 간부들을 집중 단속하고 추방해왔다. 미셸 위원장의 전임인 림부 토르너 위원장은 2008년 5월2일 부위원장인 소부르와 함께 불법체류 단속을 당한 뒤 이틀 만에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법무부는 보름도 되지 않아 이들을 내쫓았다. 강제퇴거 명령 효력정지 신청 등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퇴거 명령 집행을 미뤄줄 것을 권고했지만 이 또한 소용없었다. 이들뿐만 아니다. 초대 위원장 아노아르 후세인은 노조 설립 20일 만에 단속을 당했다. 1년 넘게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아야 했던 아노아르는 결국 추방됐다. 2대 위원장이던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도 2007년 11월27일 동시에 집중 단속돼 추방됐다. ‘이주노조 잔혹사’라 할 만하다.

미셸 위원장 이전의 간부들을 법무부가 전격적으로 국외 추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적법한 체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셸 위원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는 2009년 갱신한 비전문취업(E-9) 자격의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갖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2012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일할 수 있다. 법무부가 미셸 위원장이 취임한 뒤 2년 동안 어찌하지 못한 것도, 유례없이 위장취업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롭게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상식적으로 해결되면 다음 위원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할머니를 보러 가고 싶어요.”

미셸 위원장의 고향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동쪽으로 3시간 차로 달리면 나오는 리잘 지방의 타나이라는 도시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고향의 폭포가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대로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등 그가 주장했던 사안 가운데 제대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2년 동안 그가 이끌던 이주노조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 노조다.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등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이주노조 합법화 권고안을 냈다. 이주노조는 2005년 서울지방노동청에 낸 조합설립신고서가 반려된 뒤 서울노동청을 상대로 시작한 소송이 벌써 6년째다. 그사이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이주노조의 합법성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의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부터 2011년 자신에 대한 출국 명령에 이르는 1년여가 미셸 위원장에게는 10년 같다.

“정부가 나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표적삼아 추방 노력을 한 지난 1년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짓밟는 사건의 연속이었어요. 이는 한국 사회에 살아 있는 파시즘의 증거입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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