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태(41)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4월이었다. 당시 그는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 근무 중이었다. 차를 운전하면서 박씨는 불안한 듯 자꾸 백미러를 확인했다. 그의 눈길은 뒤따르는 차들의 행방이 아니라 정체를 확인하는 듯했다. 박씨의 차에는 블랙박스가 달려 있었다. “50만원이 넘는 고가 장비로 뒤차를 촬영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했다. 그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회사의 미행과 갑작스런 출장 지시
박씨는 2007년부터 삼성 내의 노사협의체인 한가족협의회의 사원 쪽 위원으로 활동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배 사원의 유산 소식을 들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유산된 사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근거로 회사에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다 그는 위원에서 면직됐다. 2009년 2월의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회사 행사 불참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 관행이나 회사 생활 20여 년의 경험에 비춰봐도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 위원직 복귀를 요구했다. 회사와의 갈등이 시작됐다.
감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검은색 중형차량 한 대가 며칠 걸러 한 번씩 박씨의 퇴근길에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차 앞유리에는 삼성 로고가 있는 직원용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미행이라는 생각에 뒤따르던 차량의 번호를 적었다. 차에서 내려 신원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미행은 계속됐다. 박씨는 그 시작과 끝을 알지는 못한다. “현재 미행을 당하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다음 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감시는 박씨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었다. 목디스크가 왔다. 신경질환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9년 8월 회사는 갑작스럽게 브라질 출장 지시를 내렸다. 건강상의 이유로 갈 형편이 안 됐다. 회사는 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감봉 처분을 내렸다. 박씨는 회사에 맞섰다. 2010년 5월 회사와 한가족협의회를 상대로 감봉과 근로자위원 면직 결정에 대한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노조가 있었더라면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개인적으로 맞서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2010년 7월 다시 박씨에게 러시아 장기 출장 지시가 내려졌다. 건강상의 이유로 장기 출장이 어렵다고 항의했다. 이번에는 직무대기 발령이 났다. 빈 책상만 지키는 ‘왕따’ 근무가 시작됐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2010년 9월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에게는 제대로 된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런데 복귀 뒤 인사발령이 났다. 제품 포장 업무가 맡겨졌다. 8년 전 사무실 근무로 옮긴 뒤 다시 생산라인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인사팀에서도 박씨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해 재배치 요구에 긍정적 검토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재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1월3일 사내게시판에 한 편의 글을 올렸다. “삼성전자의 경직된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에 보장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건설하는 게 사원들의 권리를 지키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지난 11월28일 업무지시 불이행, 허위사실 유포, 회사 명예 실추, 정보보호 규정 위반, 징계 전력에 대한 뉘우침이 없음 등을 이유로 박씨를 징계해고했다. 해고는 재심을 거쳐 지난 12월7일 확정됐다.
지난 12월27일, 박씨는 또 하나의 소송을 준비했다. 자신의 근무처가 있던 경기 수원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박씨는 삼성일반노조와 함께 서울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삼성일반노조는 해고자인 김성환 위원장이 만든 법외노조(형식적인 요건이 결여된 노조)로 삼성 해고자나 산재 피해자 등에 대한 상담이나 삼성그룹 내 노조를 설립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회사의 미행뿐만 아니라 컴퓨터 검열 등의 피해도 주장했다. 또 “반드시 회사에 복귀하고,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다짐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징계 사유, 징계 양정, 징계 절차 모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박씨의 해고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출장 거부나 현장발령 거부는 이미 건강상의 이유라고 해명한 상태였고,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어서 문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소송 제기는 했지만 살길은 막막하다. 지난 12월29일에는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에 실업수당을 신청했는데 징계해고자라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또한 재검토를 요구한 상태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딸은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못한다. 요즘은 우울증에 불안까지 겹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번에 입에 털어넣는 약이 스무 알을 넘는다. 그래도 병든 스스로를 다독인다. “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가장이고 싶다.” 병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면 수원 삼성전자의 정문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선다.
“노조활동 하면 함께 근무할 수 없다”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이번 박종태씨 해고를 2011년 7월부터 시행될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노조를 설립할 만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불거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는 노조가 없다. 지금까지 수차례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지만 삼성은 회유·협박 등으로 설립 자체를 막아왔다. 일부 계열사에서는 명목상의 노조를 세워 복수노조 설립금지 조항을 악용하기도 했다. 2011년 7월이 되면 복수노조가 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노조 설립이 자유로워진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제도 시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서는 이에 대비해 2009년 12월 초부터 2010년 3월까지 2만여 명의 간부·직원 등을 상대로 무노조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807호 표지이야기 ‘무노조 교육 무개념 1박2일’ 참조).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이 보도한 무노조 교육 문건의 원본을 제시하며 “이번 박씨의 해고는 무노조 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저질러온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가 도드라진 것일 뿐”이라며 “삼성의 무노조 전략은 내년 복수노조 상황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말 삼성그룹 계열사별로 이뤄진, 노조활동이 유력시되는 직원들에 대한 개별 면담도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에 근무하는 삼성전자 직원 ㄱ씨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파트 그룹장이 ‘노조활동을 하면 함께 근무할 수 없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한다”며 “사업장별로 노조 설립에 관심이 있거나 시도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면담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친기업 노조 세워 민주노조 무력화할 수도복수노조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설립된 노조가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갖느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삼성에서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노조 설립 자체를 봉쇄할 것”이라며 “설령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구성원 다수가 참가하는 친기업적인 노조를 만든 뒤 교섭 창구를 단일화해 민주적 성격을 갖는 노조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내에는 현재 중공업·증권·화재·생명·에스원 등에 노조가 설립돼 있지만, 노골적으로 회사 쪽 편을 들거나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서는 2008년부터 삼성·포스코 등 노조 미조직 대기업에 노조를 세운다는 목표로 미조직비정규직사업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2011년을 대비해왔다. 하지만 조직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실 조경석 국장은 “복수노조에 대비해서 노조 설립에 뜻있는 내부 사원들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언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민주노총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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