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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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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때 측근을 데려가지 말라



정약용이 신임 목민관에게 전하는 당부… 청렴한 생활로 위엄을 갖추고 백성을 처벌할 때 신중해야
등록 2010-06-18 16:22 수정 2020-05-03 04:26

“다른 벼슬은 구해도 괜찮지만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 정약용이 처음에 적은 글이다. 벼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수령과 서울에서 사무만 보는 경관(京官)은 영향력에서 큰 차이를 가졌다. 경관은 맡은 바 업무에 국한해서 일처리만 잘하면 되고 혹시 잘못되더라도 해당 업무에 한정될 뿐이다. 그러나 수령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만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왕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한 가지 재주나 품성이 좋은 것으로 수령직을 잘해낼 수 없다. 덕이 있어도 위엄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일을 처리하고 싶어도 학식이 밝지 못하면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리가 목민의 벼슬이었다. 더욱이 자칫 일처리가 어긋나면 모든 피해는 백성에게 돌아가서 괴롭히고 흩어지게 하는데, 원망과 재앙이 본인은 물론 후손에게까지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이 목민관의 자리를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까닭이다.

비단옷을 보면 아전이 웃는다

다산 정약용의 초상. 그는 “위엄은 청렴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

다산 정약용의 초상. 그는 “위엄은 청렴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

맡은 크기의 대소에 상관없이 목민관이라면 잘 다스림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목민관의 다스림에 백성과 관속이 ‘따른다’는 것은 두려울 때나 믿을 때다. 두려움이든 믿음이든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하지만, 두 가지 다 윗사람이 부지불식간에 행하는 여러 모습이 쌓여 만들어지므로 일순간의 감정과는 다르다. 정약용은 “위엄은 청렴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오므로 성실하면서도 청렴해야 뭇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라고 했다. 청렴이야 말로 위엄의 바탕이 되기에 처음 부임할 때 차림새부터가 중요하다. 한 고을이나 한 도(道)를 얻었어도 옷가지를 새로 마련하거나 탈 것을 새것으로 바꾸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백성에게서 빼앗는 악행을 스스로 막을 수 있다. 어리석고 배움이 없는 자들이나 겉치장으로 위엄을 꾸민다. 그렇기 때문에 아전들은 새로 부임하는 수령의 의복과 말의 차림새를 살폈다.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편하게 웃으며 마음을 놓고, 질박하면 놀라 두려움에 떨었다. 어떤 수령이 해남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비단 주머니에 매듭 장식을 길게 늘어뜨리고 행차했다. 이를 본 아전들이 “주머니를 보니 분명 음탕하고 탐욕스럽겠다” 했는데 역시 그랬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자들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사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니, 이는 정약용이 보기에 굳이 자신의 재산을 축내면서 명예까지 손상시키고 남의 미움까지 받는 더없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금의 충남 홍성인 홍주의 수령이었던 유의(柳誼)는 찢어진 갓과 거친 도포에 조랑말을 타고 다녔고, 이부자리도 남루해 요나 베개가 없었다. 유의가 검소함으로 위엄을 세워서 수령으로 있는 동안 가벼운 형벌조차 쓰지 않았는데도 교활한 무리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정약용이 목도한 일이다.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충청도관찰사로 있던 유강(柳?)은 남들이 갓끈을 산호나 호박 같은 보석으로 치장할 때 밀납으로 비슷하게 가짜로 만들어 갓끈을 장식했다.

앙심 품고 처벌하는 건 중죄

청렴과 더불어 곁에 사람을 부림에 주의해야 한다. 수령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고 백성을 일일이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릴 사람을 객관적으로 잘 판단했다고 자만하거나, 올바른 판단으로 뽑은 사람이라며 자주 부리게 될 때가 위험하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생각을 꾸리는 단계에 따라 쉽게 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기준과 기호는 객관적인 듯싶지만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 잘 맞는다고 가깝게 두면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편향이 되므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편향이 생기면 주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이 없는 말단직이어도 수령과 같은 한 고을의 장관이 아껴하거나 자주 가까이하면 누구보다 힘있는 사람이 되기 쉽다. 누군가를 자주 부리게 되면 책임자 고유의 권한이 곁의 사람에게 스며들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준이면서 일을 처리하는 원칙은 공명정대함이다. 수령이 얼마나 공명정대한지는 평소의 모습과 벌을 내리는 정도로 금세 주위 사람에게 드러나게 된다. “수령이 매우 엄하게 노하였는데도 곤장질이 오히려 가벼운 경우는 뇌물이 있었기 때문이고, 수령이 본래 말없이 조용하다가 곤장질이 갑자기 사나워진 경우는 앙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런데 정약용은 뇌물을 받고 처벌을 약하게 하는 것보다 개인적 감정으로 심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 더욱 그르다고 보았다. 백성을 자애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이 죄를 용서받고자 가산을 축내서 뇌물을 낸 경우라면 너그럽게 웃으며 용서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요즘으로 보면 벌금형과 같이 죗값으로 재산을 헐었으므로, 몹시 때려서 중상까지 입히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수령이 앙심을 갖고 곤장질을 사납게 한 것은 그저 두고 볼 수 없는 중죄에 해당한다. 반드시 감춰진 사정이 있는지를 조사해 엄히 죄를 따져야 할 일이다. 오리대감 이원익 역시 수령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사나운 마음이라고 했다.

어려운 선거 기간을 거치는 동안 당선자를 도운 고마운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조선시대 수령 역시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 또한 일처리가 자신과 맞고 유능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정약용은 신임 수령이 부임할 때 옷차림으로 청렴함을 갖추는 것만큼이나 동행하는 사람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의 왕서(王恕)가 윈난 지방을 다스리러 갈 때 하인을 데려가지 않는 까닭을 말하기를 “하인을 데리고 가고 싶지만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워서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공로가 있는 사람은 다음날 별도로 후하게 도와줄 것을 기약할 것이지 동행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동행은 가족까지 포함해 많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물며 측근 중 수령이 아끼는 사람은 백성들이 그를 수령처럼 두려워하게 되는데 수령의 가족이야 아무리 적게 동행한다 하더라도 더 말할 것이 없다. 정약용이 제시한 좋은 방도는 수령의 자제와 관속이 말을 섞지 않는 것이었다. 서로 마주칠 수는 있겠지만 대화하는 것은 피해야 수령의 다스림이 공명정대할 수 있다고 정약용은 생각했다.

정치는 사람을 쓰는 용인(用人)과 함께 법을 지키는 입법(立法)이 요체를 이룬다. 고려시대 허조(許稠)가 전주판관이 되었을 때 일처리에 공명정대하고 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허조는 ‘법 아닌 것으로 일을 처단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非法斷事 皇天降罰)는 여덟 글자를 작은 현판에 써서 동헌에 걸어놓고 있었다. 공자는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명분부터 바로잡겠다고 했다. 명분은 눈속임을 위한 미명과는 다르다. 명분을 바르게 세워야 일처리나 모든 문화가 바르게 되어 백성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성호 이익은 명분이 한번 무너지면 용맹과 힘을 모두 제멋대로 써서 나라가 하루도 존속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계했다.

법을 지키되, 법에 얽매이지 말아야

고사성어 중에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것이 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이었던 미생이란 자는 사모하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별 뜻 없이 미생과 다리 밑에서 만나자는 허약을 했다. 미생은 약속만을 믿고 다리 밑에서 기다렸는데 물이 불어나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를 붙잡고 견디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미생의 믿음에 대해 어떤 이는 고지식함을 들어 칭송할 수도 있겠지만, 미생지신이라 하면 대부분 작은 욕심에 갇혀 소중한 목숨을 잃은 어리석음을 책망할 때 쓰인다. 한결같이 곧게 법만 지키는 일이 때로는 너무 구애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소는 넘나듦이 있더라도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은 옛사람도 간혹 변통하는 수가 있었다. 법을 지킬지 변통할지의 기준은 자신의 욕심인지 백성을 위하는 바른 마음인지에 달렸다. 반대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 법을 이용하고, 백성의 바람을 법의 이름으로 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청렴해 위엄을 갖추고 공명정대함으로 백성을 대하다 보면 어느덧 목민관의 자리를 놓고 돌아가야 할 때가 온다. 그렇게 자신에게 떳떳한 재임 시절을 보낸 자라면 정약용이 말한 것처럼 돌아가는 행장이 모든 것을 벗어던진 듯 조촐해 낡은 수레와 야윈 말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지 않을까.

이선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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