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6699">에 “앞사람의 말씀이나 지나간 행적을 많이 알고 익힘으로써 자기의 덕을 쌓는다”고 하였다. 경험은 직접 겪어서 얻을 수도 있고, 글이나 말을 통해 얻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얼마나 체화해 삶의 지혜로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역사가 현재 시점에서 유용한 까닭이기도 하다. 지방정치를 이끌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역사에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조선시대 목민관들의 면모를 소개하는 연재를 마련했다. 7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font>
목민관(牧民官)이라 할 때 목(牧)은 음을 나타내는 ‘복’(복)과 뜻을 담은 ‘우’(牛)가 합쳐져 만들어진 형성문자다. 복은 회초리를 손에 든 모양을 나타낸다. 따라서 목(牧)이란 ‘소를 회초리로 모는 모양이나 사람’을 기본 뜻으로 한다. 나아가 파생된 뜻은 ‘가축을 기르다, 다스리다, 복종하다, 수양하다, 경계를 정하다’ 등의 동사와 ‘법, 행정구역’ 등의 명사로까지 확장됐다. 이처럼 목(牧)은 가축을 기르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행위나 법, 더 나아가 구체적인 행정구역 등을 통칭하는 말이 되므로 결국 목민관은 백성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언어인 것이다.
<font color="#00847C">목민, 인정과 폭압이 공존하는 단어</font>
목민의 어원과 함의를 통해 목민이란 말에는, 인정(仁政)과 폭압이 양면의 동전처럼 공존함을 살필 수 있다. 목민관은 백성을 다스리고 돌보는 한 고을의 으뜸 장관이지만, 한편 백성에게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현재에도 잔존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근원은 국민에게 있지만 실제로는 국민에 의해 선택된 선출직 공무원이 권력을 대행하면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근원은 인재(人才)에 있는 것이다. 바른 정치를 펴려 한다면 적임자를 선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욕심이 많고, 잔인포학하고, 무능하고 유약하고, 게으르고 용렬하며, 직무를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목민관 자리에서 물리치도록 하였다. 꼭 맞는 적임자에 대한 상은, 절대로 멀리해야 할 기준을 활용하면 명확해진다.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목민관으로 절대 경계해야 할 조건의 반대어가 곧 목민관의 덕목인 것이다. 욕심을 버린 공명정대함을 지닐 원천적 힘인 청렴, 백성을 다스리는 데 유능하고 성실함을 갖춘 헌신, 그리고 항상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민본. 수십 가지 덕목 중 최고의 목민관을 고르는 명확한 기준이지 않을까. 이 가운데 청렴의 덕목에서 주목해야 할 이가 이원익이다.
‘오리대감’으로 유명한 이원익은 안주목사로서 쌓은 선정(善政)이 남달랐다. 이원익은 안주 땅에 처음으로 뽕나무를 심어 백성의 살림을 돌본 사례로 크게 칭송됐다. 또한 이원익이 안주목사를 지낸 이후 부임한 목민관에 대해 잘하고 못하고를 얘기할 때 “앞서 이(李) 어르신이 있었다”고 하여 좋은 목민관의 기준으로 그 이름이 백성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원익이 얼마나 민심을 얻었는지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임금이 피신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원익을 평안도관찰사로 삼아 먼저 파견한 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전란 속에서 임금이 안전하게 행차할 준비를 하기에 가장 적임일 만큼 이원익은 안주 지역은 물론 평안도 전체에서 신망을 얻은 목민관이었던 것이다.
‘7년 전쟁’이라 불리기도 하는 임진왜란을 겪은 뒤 전국은 어지럽고 살림살이가 어렵기 그지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힘을 키워 강성해지고 있었다. 이원익은 북방 상황이 어려운 때 평안도·함경도·황해도를 책임지는 3도체찰사 직임을 맡게 되었다. 북쪽 국경을 다잡아야 하는 중차대한 길을 떠나며 이원익은 임금에게 유언처럼 다짐하듯 말씀을 올렸다. “임진난을 당해 초야에 계실 때처럼 상께서는 반드시 경비를 절감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재용을 절제 있게 한 뒤에야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절망한 백성에게서 어떻게 함부로 재용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힘을 덜어주어야만 백성이 살아갈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목전의 급선무입니다.”
<font color="#C21A8D">“제향을 줄일 수 없다니 신은 의혹됩니다”</font>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이 무게를 가지려면 그 말과 사람이 합당해야만 한다. 이원익이 난리를 겪은 임금에게, 피난 중이었을 때처럼 경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말을 올릴 수 있었고 임금이 귀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이원익이 몸소 행했기 때문이다.
이원익은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재란도 겪어야 했다. 앞서 선조를 모시고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정묘재란 때는 인조를 모셨다. 난리가 끝났을 때 선조에게 아뢰었던 것처럼 이원익은 인조에게 검약을 아뢰었다. “상께서 공주에 계실 때 간소하고 검약하기를 힘써 세금을 모두 줄이겠다는 분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간에게 내린 명령을 보니 종묘와 사직의 제향에 대한 것은 줄일 수 없다고 하시니 신은 의혹됩니다. 백성이 편안하면 종묘와 사직의 제사가 영구히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이 편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니 종묘 제사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향의 규모를 줄이는 것도 조상을 받들어 효도하는 방도인 것입니다.”
이원익은 임금에게 했듯이 그의 친족에게도 검약의 이유를 자세히 전했다. 검약은 그저 재물만을 아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원익이 검약을 말한 것은 무엇을 위해 왜 검약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원익에게 검약이란 종국에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한 단서였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그 방법이 다른 것이 없다. 나부터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물건을 아끼는 것으로 근본을 삼도록 하여라. 벌주고 상을 내리는 일과 명령을 내림에 공평무사하면 백성의 마음이 저절로 기뻐할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오직 공명정대해야만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이원익은 다섯 번의 영의정을 거친 뒤 늙고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고향에 돌아왔다. 이원익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쓸쓸히 혼자 지냈기에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 이원익은 돗자리를 짜서 팔아 연명했다고 전해진다.
‘키 작은 재상’이라고 불린 이원익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해지는데, 대부분 그의 소박한 삶이나 올곧은 성품과 관련됐다. 어느 날 이원익이 여느 때처럼 베옷을 입고 돗자리를 짜고 있었다. 갑자기 한 산지기가 어린아이의 팔목을 꽉 틀어쥐고 나타났다. “잠깐 부탁 좀 합시다. 나무를 베지 못하게 돼 있는 성내에서 나무를 벤 아이요. 내 금세 가서 포졸을 데려올 테니 이 아이를 꼭 좀 붙잡고 있어주시오.” 산지기의 말이 끝난 뒤에도 이원익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자 불안해하며 산지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이 아이를 놓치면 당신이 대신 옥에 갇힐 줄 아시오.” 산지기는 협박하듯 으르며 말을 내뱉더니 황급히 자리를 떠나 관가를 향했다. 그제야 입을 열어 이원익이 겁에 질려 우는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나라법을 어기고 나무를 베었느냐?” “홀로 계신 어머님이 병에 걸려 누워 계신데 땔감이 없어 냉방에 계십니다. 약 살 돈도 없고 방이라도 따뜻하게 해드리고자….” 아이의 대답은 울음에 묻혀 끝이 흐려졌다. 이원익은 우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슬며시 문 밖으로 내밀었다. “가거라.” 울음이 가득한 아이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기쁨과 불안감이 교차해 눈망울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원익이 재차 몸을 밀어주고서야 아이는 몸을 굽혀 인사하기가 바쁘게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지기와 포졸이 도착했다.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안 산지기는 포졸을 앞세워 이원익에게 막말을 내뱉고 횡포를 부렸다. 하지만 이원익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수습했다.
<font color="#008ABD">형편 어려워 나무 벤 아이를 풀어주다</font>청렴은 재물에만 국한된 맑고 검소한 굳은 뜻이 아니다. 청렴은 재물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심을 위해 무엇인가를 탐하고 움켜쥐는 일체의 행동을 멀리해 맑고 검소한 생활을 꾸리는 것이다. 이원익이 진정 청렴한 목민관일 수 있었던 것은 재용을 아끼는 만큼 개인의 편의를 위해 권력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군가를 위한다는 선한 목적에서도 이원익은 조심하고 살펴 다른 면에서 해롭게 되지 않을까를 염려했던 것이다.
이선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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