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응원이 기적을 만들어줬어요”

보석으로 풀려난 온두라스의 한지수씨, <한겨레21>에 전화·전자우편으로 근황 전해
등록 2009-12-24 17:06 수정 2020-05-03 04:25

온두라스에서 살인 혐의를 쓰고 석 달째 수감돼 있던 한국인 한지수(26)씨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 12월3일 현지 법원에 낸 ‘예방조처 변경 신청’이 14일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우리로 치면 ‘구속 적부심’으로 풀려난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보석금 1만달러를 내고 가석방됐다”며 “앞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내년 2월께로 전망되는 본심 재판을 받게 된다”고 12월15일 밝혔다.

지난 12월16일 가석방 뒤 머물러야 하는 온두라스 한인교회에서 지난 12월16일 한지수씨 부녀가 활짝 웃고 있다. 한지수 제공

지난 12월16일 가석방 뒤 머물러야 하는 온두라스 한인교회에서 지난 12월16일 한지수씨 부녀가 활짝 웃고 있다. 한지수 제공

4개월 만에 때를 씻고

은 784호 줌인 ‘온두라스 감옥에 방치된 대한국민 한지수씨’와 787호 보도 그 뒤 ‘정부는 온두라스의 그녀를 구할까’ 기사를 통해 한지수씨 사건을 연쇄적으로 다룬 바 있다.

한씨는 지난 12월16일 에 육성과 전자우편으로 직접 근황을 전했다. “좋은 결과가 하나 나온 건데 기분이 굉장히 좋고, 앞으로 있을 일정들 모두 잘할 것 같아요.” 그의 일성은 힘찼다. ‘낙천’은 상상 이상의 변고들을 버티게 한 힘인 듯하다.

“극단적으로 생각이 치달아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나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을 생각할 때 더 그랬다”고 토로하는 한씨는 국내외 많은 이들의 응원이 “기적을 만들어줬다”며 감사 인사를 대신 전해왔다. 그는 에도 “감옥에서 기사를 보았다. 가족이 말하고 싶어했던 점을 조목조목 짚어줘 감사했다”고 말했다.

가석방이 되면서, 한씨는 교도소가 있던 라세이바에서 산페드로술라로 옮겼다. 본심 때까지 이곳에 위치한 온두라스 한인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 사실상의 감금 상태다.

하지만 이조차도 꿈이다. 가석방되자마자 교회에서 아버지 한원우(56)씨를 만나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마술처럼 두부·보쌈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때를 씻었다. 이집트에서 체포된 이래, 4개월 만의 일이다.

한씨는 이집트에선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며 씻을 수도 없어 ‘몸’이 절망했으나, 온두라스에선 좌절에 좌절로 ‘마음’이 출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온두라스 감옥이야말로 위험한 곳이었다. 폭동이 잦고, 최근 사망사건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씨는 “폭동이 일어나 감시대의 유리창이 다 깨지고, 유리 파편이나 돌들이 여자 감옥까지 날아올 정도”라며 “자세한 사정을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아버지 한씨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화장품·식량·위생용품 등을 열심히 조달했다. 한씨가 있던 라세이바 감옥은 조리기구 등 세간은 물론, 식량까지 손수 마련해야 한다.

살인 사건 피해자 국가인 네덜란드의 외교 대응을 보고 한씨는 느낀 바가 크다. 그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적극적이지 못한 게 조금 안타깝지만, 이 순간이 우리나라의 해외 자국민 보호 체계가 잡혀가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정부 차원 신원보증 여전히 없어

언니 한지희씨는 “사실 이번 가석방 과정에서도 정부 차원의 신원보증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머무는 교회가 보증을 섰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1월 국회 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서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적극적으로 재외국민 보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지수씨가 간단히 한 해를 정리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한국 땅을 밟는 것, 가장 먹고 싶은 건 온 가족이 모여 먹는 밥,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이집트 공항에서 붙잡힌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로아탄 유치장에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온두라스에서 새해를 맞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