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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감옥에 방치된 ‘대한국민’ 한지수씨

다이빙 강사 교육 중 살인 혐의 받고 라세비아 교도소에…
체포·재판 과정에서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신세

제784호
등록 : 2009-11-02 16:21 수정 : 2009-11-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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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왜 여기 있는 거죠? (중략) 2차 심리에서 살인죄가 적용되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판사의 판결을 들었을 때는,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중략) 그동안 눈물은 충분히 흘렸다고 생각했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뜨거움은 또다시 눈물이 될 태세입니다. (중략)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입술을 지그시 물고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다시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지수씨가 수감 중인 라세이바 교도소의 최근 모습. 온두라스의 한 교민이 면회가 사진을 찍었다. 맨 위 왼쪽이 한지수씨가 머무는 2층 침대로 위 칸을 사용한다. 선풍기, 매트리스, 침구 등 모두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아래 가운데 사진은 빨래터, 맨 아래 사진은 취사장이다. 사진을 찍은 교민은 “온두라스 국립공원 바로 밑에 교도소가 있어 계곡물을 받아 쓴다”고 전한다. 그러나 식기 등 주방 기구 역시 직접 준비해야 한다. 맨 오른쪽 사진은 부부방이다. 수감자의 배우자가 면회 왔을 때 이용한다. 이 교도소는 현재 수용 인원의 2배가 수감되어 있다고 현지인들이 전한다. “너무 열악하다”고 한씨가 말하자 교도소 관계자는 “돈이 있으면 따로 방을 하나 만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한다.

부탁받고 이웃 도움 청했을 뿐인데…

수감자 한지수. 26살. 악을 쓰고 통곡해도 이 땅에 전해질 리 없다. 편지의 ‘발신지’는 쿠데타 정부가 들어서 있는 불안정한 나라, 시차만 14시간이 되는 중남미 온두라스. 더 정확히는 라세이바 지역의 엘 포르베니르 교도소(이하 라세이바 교도소).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글은 감옥의 담장을 넘어,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와 멕시코를 거쳐 서울편 비행기를 타야만 당도한다.

지옥은 멀고, 그곳에서 보내는 ‘악몽의 한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월30일로 한씨가 그곳에 수감된 지 딱 한 달이 됐다.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성 마리스카 마스트를 지난해 8월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라 올 8월27일(현지시각) 이집트에서 붙잡혔으니 실상 두 달이 넘도록 영어(囹圄)의 몸이다.

그는 결백을 강력히 주장한다. 해서 그의 조국 대한민국을 ‘수신처’로 삼아 당당하게, 그러나 애절히 도움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기대에서 엇나갔다.

곱씹으면 억울함은 기어코 분노가 되고 한이 된다. 기억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온두라스를 방문한 때다. 볕으로 가득한 계절, 회사 생활로 모은 돈을 쥐고 ‘새 꿈’을 찾아 떠나온 길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는 이곳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고자 했다.


한씨와 가족의 설명을 종합하면, 관광지로 알려진 로아탄섬의 한 ‘다이빙숍’에서 한씨는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시작한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이중국적으로 하는 30대 남성 대니얼 로스가 강사였다.

그해 8월23일 이른 아침, 다이빙숍 근처의 한 주택에서 마리스카가 벌거벗은 채로 돌연사한다. 대니얼의 방 침대 위였다. 대니얼과 한씨가 그의 곁에 있었다.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풍경은 두고두고 한씨의 삶을 옥죄고 할퀸다. 한씨는 대니얼의 방 2개짜리 집에 세들어 살았다. “8월 초 여성 룸메이트들이 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며 “마침 댄(대니얼의 준말)이 사는 집에 빈방이 있어, 돈을 아끼려고 이사했다”고 그는 말한다.

마리스카는 대니얼의 또 다른 수강생었다. 전날 한 바에서 대니얼과 술을 마셨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이튿날 아침 6시께 침대 위에 변을 본 채, 숨을 헐떡이게 된다. 대니얼은 심폐소생술을 했고, 한씨는 대니얼의 부탁을 받고 이웃의 도움을 청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마리스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씨는 어둑새벽 대니얼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온두라스 사법당국은 대니얼과 한씨를 마리스카 살해 공범으로 본다. 한씨는 “검찰은 댄과 제가 삼각관계이고, 애정 문제로 인한 살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며 “댄은 불과 하루이틀 전 다른 여자를 데려온 적도 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로아탄 경찰은 당시 대니얼을 체포·수감했다. 한씨는 법정 증언을 했다. 한씨는 “대니얼이 영국 국적의 여권을 압수당한 채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말한다. 대니얼은 곧장 오스트레일리아 국적 여권으로 온두라스를 떠난다. 부검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족이 직접 소재 파악, 이집트는 대놓고 무시

한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강사 자격증을 땄고, 그해 9월 말 무리 없이 온두라스를 떠났다. 이집트에 다이빙 강사직을 구해 6개월가량 일했다. 그러다 출국하려던 올 8월27일, 카이로 공항에서 붙잡혀 구금까지 됐다. 9월22일엔 온두라스로 전격 송환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씨가 ‘무국적자’나 별 다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등 우리 외교당국은 이집트 경찰에 한씨가 체포·수감된 사실조차 파악 못했다. 한씨 가족은 연락이 끊기자, 주이집트 대사관 쪽에 문의했다고 한다. 한씨가 체포된 날이다. 심지어 법원에 강제 출석해 아랍어로 된, 알 수 없는 진술서에 서명까지 한 날이다.

한씨의 소재는 가족이 직접 파악했다. 수감자가 한씨의 부탁을 들어, 전화해준 덕분이다. 체포되고 일주일이 다 되어서다. 9월2일, 가족은 대사관에 연락해 ‘신병 확인’을 요청했고, 영사는 이튿날 한씨를 면회한다. ‘조국’과의 첫 대면이었다.

이집트 당국에 더 악질적 문제가 있다.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이하 비엔나영사협약)을 보면 “파견국의 국민이 체포·구금·구속되는 경우에 그 국민이 파견국의 영사기관에 통보할 것을 요청하면 접수국은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영사 통지권’이다. 요청시라고 전제했으나, 요청 없이도 통보하는 게 관례다. 또한 체포·구금 때 “영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영사 조력권’을 반드시 개인에게 고지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비엔나영사협약에 규정된 재외국민 보호·관리 장치로서 ‘영사적 보호’라 이른다.

하지만 이집트 당국은 대놓고 무시했다. 체포된 한씨는 인터폴로 송치돼 “당장 온두라스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추궁당하자 영사 면회를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수갑을 찬 채 법정으로 이동했고, 수차례 영사 접촉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됐다. 전화 사용도 금지당했다. 소지품을 압수수색당하며 돈은 물론 소지품도 분실했다. 이집트 유치장에 갇힌 첫날 그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잠을 자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목이 돌아가 있는 걸 발견하고 울면서 목을 돌렸다”.

그가 경독과 공포로 울 때도 대한민국 헌법은 말하고 있었다. “국가는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2조2항) 이에 근거해, 타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자국민을 대신해 국가가 개입하는 ‘외교적 보호’는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조국의 외교당국은 ‘관대’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 “(이집트에) 항의했지만, (체포·수감 등에 대한) 통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해명을 들었을 뿐 사과는 받지 못했다”며 “다음부턴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한다. 끝이다. 가장 중요한 영사 통지권 및 조력권 통보가 짓밟혔고, 그로 인해 영사의 개입이 늦어졌으며, 그 때문에 위법적 처우가 가능했다.

사후에만 분주한 대사관

물론 주권국의 법까지 침해하긴 어렵다. 후진국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이집트는 더 후진적이라 평가받는 온두라스와의 국제 수사 공조에는 철저했다.

인터폴 적색수배령에 따라 타국인을 직접 체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나라 간 조약을 맺은 유럽 일부 국가 등에 국한된다. 경찰청 외사과 담당자는 “우리나라도 적색수배자가 출입국할 경우, 해당 사법당국과 연락해 조처를 논의하지만 대체로 체포하기보다는 강제 출국시키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당시 한씨가 체포·송환되는 과정에서 경찰청 쪽은 “이집트가 그리 하도록 명시한 자국법이나 온두라스와의 조약이 있는지 따져 강력히 항의할 것을 외교당국에 주문했다”고 말한다. 외통부는 “양국이 조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이집트 쪽이 경찰 공조 차원에서 응한 것”이라며 “체포 여부는 해당 국가가 판단할 사항이고, 제3국 인도도 정당한 주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노력도 물론 있었다. 대사관은 이집트 검찰청, 외교부 영사담당 부차관보 등을 면담하며 한씨의 이송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온두라스에 송환된 뒤 절망은 더 커진다. 한씨는 지난 9월 말까지 로아탄 법원에서 1·2차 심리를 마치고 유죄 추정 상태로 1심 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1차 심리는 피의자의 인적 사항, 피의 사실 등을 확인하는 절차고, 2차 심리는 우리의 구속적부심에 해당한다. 주온두라스 대사관은 “2차 심리는 기소를 공식화한 절차였다”고 설명한다. 이후 한씨가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된 까닭이다.

3차 심리는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2차 심리 종료 뒤 60일 안에 이뤄진다. 3차 심리가 끝나고 실제 법리 다툼을 할 수 있는 1심 재판이 열린다. 이 사이에도 60일의 유예가 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4개월은 옥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대사관은 “주재국의 재판 수요, 느린 업무 관행 등을 감안했을 때 실제 재판은 더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씨는 불구속 재판을 요청하는 ‘구속변경심리’를 따로 신청할 수 있다. 대사관은 “그 경우,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담당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이 정식 기소하기 전, 한씨 가족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신원보증을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정부는 거부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공관이 한씨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씨가 도주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씨 가족이 대사관을 통해 들은 얘기는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대단히 구체적인 선진국의 자국민 보호 지침

현재 한씨는 변호사를 다시 선임하려고 한다. 2차 심리를 절망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만5천달러가 사라졌다. 대사관이 선임해준 그 변호사는 1차 심리 땐 배석도 못했다. 쿠데타로 공항이 폐쇄되면서 로하탄 섬으로 오는 항공편이 끊겨 변호사는 물론 영사 얼굴도 보지 못한 채 1차 심리를 혼자 감당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 대사관은 “심리 연기를 요청했고, 이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고 말한다. 줄곧 사후에만 우리 대사관은 분주했다.

해외 선진국의 자국민 보호 수준은 한국이 쳐다보기도 어렵다. <국제법상 재외 자국민의 보호에 관한 연구>(이진규·2008)를 보면 관련법은 물론 업무지침도 대단히 구체적이다. 스웨덴은 영사 지원 상황으로 △해외에서의 곤경을 여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외국 법원 등의 결정에 따라 자유가 구속됐을 경우 조사·재판·통역 등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주한 미국대사관 영사들은 3개월에 1회씩 한국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인 수형자들을 정기 방문한다. 면담 통역을 위해 한국인 직원도 대동한다.

우리나라는 △체포·구금 사실을 통보받은 경우, 재외국민과의 접촉을 통해 신원·혐의 내용 파악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주재국에 요청 △해당 재외국민 요청시 주재국 사법제도에 대한 일반적 정보 제공, 변호사 선임 절차 조언 △재판 상황 지속적 파악, 필요시 재판 방청 △복역 중 인권침해 여부 확인 및 시정 요구 등을 규정한다.

한씨 가족은 “정부의 도움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외교당국은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이 간극은 선진국의 지침이 명징하고 실질적 보호를 적시한 반면, 한국은 비엔나영사협약에 이미 담긴 규정에 의거해 당위적 지침을 주되게 다룬다는 차이에서 노정되기도 한다.

실제 숨진 마리스카의 나라, 네덜란드만 봐도 대응은 상당히 다르다. 한씨가 이집트에서 온두라스로 송환되는 과정 대부분을 네덜란드 경찰이 동행했다. 한씨를 태운 비행기는 특이하게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기도 했다. 그곳에 주온두라스 네덜란드 대사관 직원이 와 있었다.

그 나라 영사 지침을 보면 이렇다. △유럽 이외의 국가에 수감된 경우 월 30유로 수당 지급 △수감자에게 음식·의복·약품 구입비 또는 귀국항공권 구입비용 대출 △해당국의 적법 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 경우 제2의 법적 검토를 위한 비용 지원.

대한민국 국민, 한씨가 수감된 라세이바 교도소는 2003년 내부 폭동으로 80명이 넘게 숨졌던 곳이다. 위태로운 정국 속 위험한 교도소에서 결백을 주장하는 한국인 여성 홀로 있다. 중형을 선고받은 3명의 여성 가결수와 한방을 쪼개 쓴다. 조리기구, 침대용품 등 모든 세간은 물론 음식까지 직접 조달해야 한다. 재력 있는 수형자는 에어컨, 텔레비전, 심지어 총까지 소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온두라스의 불안정한 정세와 열악한 구치소 환경 등을 감안해 한씨가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선처를 요청하는 등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1차 용의자인 대니얼의 신병 확보를 위해 적극적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온두라스 대사관도 “현지 대법원장을 접촉해, 우리 정부의 우려사항과 요청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결이 어떻게 날지 내다보기 어렵다. 외교당국이 선처를 요청하는 이유로 꼽는 온두라스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망이 더 불가능한 악순환이 있다. 검찰은 한씨에게 30년 실형을 구형한 상태다.

징역 30년 구형, 절박한 시간이 가고 있다

주온두라스 대사관은 “정치적 교섭에 의해 석방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고용해 과학적 자료와 증인을 확보해야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재외국민에 대한 외교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꾸준히 시비가 일어왔다.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때 교민 대피를 소홀히 해 비난을 샀고, 2001년 9월과 2004년 5월 중국 내 한인 사형수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하거나 구명에 실패하면서 논란을 겪었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총체적 부실을 상징했다.

김석규 전 주일대사는 한 인터뷰에서 “문서수발과 자국민 보호는 외교관의 기본 업무”라며 “외교관들이 큰일만 하려고, 땀 흘리는 일은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여러 재외국민은 ‘한국의 외교’를 비슷한 시각으로 본다. 2009년 8월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1306명의 재외국민이 각종 혐의로 수감 중이다. 여기에 한지수씨가 새로 추가된다.

학계에선 영사적 보호를 사전예방적, 외교적 보호를 사후구제적 장치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씨의 경우, 영사적 보호의 시작이 늦었고, 이후의 조처는 줄곧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외교적 보호가 같은 절차를 밟을지 모른다.

온두라스는 이제 우기로 접어든다. 비가 잦아진다. 한지수씨만 이미 우기 복판에서 흠씬 젖어 있다.

가족·시민들의 구명 노력

교민은 면회하고 건설사는 합판 공수

한지수씨(사진 오른쪽)
한지수(26·사진 오른쪽)씨의 단란했던 가정은 폐가처럼 적막하다.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업을 접고 9월 말부터 온두라스로 가 재판을 돕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국제앰네스티 등 의탁할 인권단체를 수소문 중이다. 어머니는 친정 부모에게 딸 이야기를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쓰러질까 염려해서다.

언니 지희(27·회사원·왼쪽)씨는 구명운동을 하느라 네댓 시간 겨우 잔다. “낮밤이 사라졌다. 모두 낮이다.” 퇴근 뒤 온라인을 통해 구명운동을 펼치고, 새벽엔 아버지·동생과 연락을 한다.

가족은 외교당국에 대한 서운함이 많다. 그러나 내색하기를 주저한다. 여전히 국가의 조력이 절실한 까닭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 않음을 안다. 주온두라스 대사관만도 두 달 동안 90회에 걸쳐 한씨네와 전자우편, 면담, 전화상담 등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지희씨는 “가장 안타깝고 답답하게도, 그 나라 사법체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국가에 대한 만족도는 설명이 아닌, 체감인 것이다.

특히 더 조국이 아쉬운 건, 사망자의 나라인 네덜란드 때문이다. 최근 한씨가 등록했던 다이빙숍의 한 강사가 한씨의 억울함을 알리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네덜란드 대사관 쪽에서 찾아와 그 글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한지수씨의 설명이다. 마리스카 사망 1주년 프로그램이 자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한씨 송환 과정에선 경찰이 직접 동행했다.

한지희씨는 “물적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네덜란드의 압박이 있다고 본다”며 “우리 정부는 타국의 사법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며 공정성을 얘기하지만, 한쪽이 힘을 가할 때 다른 한쪽이 그만큼 가하지 않으면, 결국 불공정이 초래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주온두라스 한국대사관은 “네덜란드 정부는 한씨가 재판에 회부된 이후에는 사법부와 접촉을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 전에는 ‘접촉’했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다행히도 부족분은 국민이 메워주고 있다. 2차 심리가 불리하게 결론 나면서 한지희씨가 인터넷에 올린 구명 글이 삽시간에 호응을 얻은 덕분이다. 지금은 카페(cafe.daum.net/onlyforhan)가 만들어져 있다. 절절한 사연들이 이어진다. 교민들이 직접 한씨를 면회하고, 김치·라면 등 “1년을 (옥살이하며) 먹어도 충분할 음식”을 갖다주고, 현지에서 병원을 짓고 있는 ㅅ건설사는 감옥 안 침대에 꼭 필요한, 그러나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던 합판을 공수해줬다.

누리꾼들 호응도 대단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미 청원이 돼 있고, 한씨의 사연을 네덜란드어·영어·프랑스어(마리스카의 아버지가 프랑스에 있음)로 번역해서 전파하겠다는 이도 있다. 그의 동문인 서강대·명덕외고 동기와 선후배들도 적극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가히 국제적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에서 이런 전화를 준 적이 있다고 한지희씨는 말한다. “우리 과 직원이 열 몇 명인데, 사실 온두라스에 가야 맞지만 직원 수가 적어 갈 순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 희망이며 절망이다. 그 아쉬운 균형을 국경을 초월한 시민들이 깨주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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