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회의에 강력한 훼방꾼이 나타났다. 바로 신종 플루였다. 회의 하루 전 나혜윤 독편위원이 기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어제부터 몸이 안 좋아져서 오늘 병원에 갔다가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 아쉽고 죄송한 마음….”
결국 11월24일 저녁에 열린 회의는 5명의 독편위원만이 모인 채 시작됐다. 초면인 독편위원들 사이엔 어색함이 가득했지만, 김밥을 먹으며 자기소개를 거치는 동안 어색함은 어느새 웃음소리로 대체됐다. 한광덕 기자가 합류한 뒤풀이 자리에서는 “회의를 좀더 자주 열어야 한다” “앞선 독편위들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 “번개 모임도 가끔 하자” 등 결의가 넘쳐났다. 결의가 얼마나 현실화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한겨레21> 781~786호
사회 반갑다. 앞으로 많은 활동 부탁드린다. 여러분 개인에게도 독편위원 활동이 뜻깊은 경험이 됐으면 한다. 첫 회의여서 ‘소환’된 기자도 없으니, 자연스레 얘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781~786호 에서 가장 얘기해보고 싶은 기사부터 말해보자.
박지숙 ‘노동 OTL’이 가장 맘에 드는 기사였다. 처음에는 직접 체험한 것이어서 그런지 좀 감정적이라고 느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이해가 되더라. 나도 한때 감자탕집 비슷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봐서 더 공감이 됐다. 다만 자칫 그 업종에서 일하는 분들께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박준호 처절했다. 현장에서 도망가고픈 게 진심이라던 기자의 말이 그대로 느껴졌다. 손에 기름을 묻히긴 싫지만 그런 것에 눈감기 싫은 이들이 보통 기자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기자들을 현장에 투입한 것 자체가 대단했다. 진보 쪽이야 애정을 가지고 노동 현장을 지켜보겠지만, 기사를 쓰는 것과 현장에 가는 것은 다르다. 가구 공장에서 타카 핀에 손가락을 찍힌 대목에서는 더욱 감정이입이 되더라.
K 독자 댓글로 소개됐던데, 식당 아주머니들의 음담패설 이야기는 그쪽 분들은 다 그렇다고 보게 될까 싶어 걱정되더라. 그런 면에서 통계 등을 붙여 그런 일 하는 이들의 평균치를 보여준 점이 좋았다.
홍부일 노동의 다양한 측면을 잘 잡았다. 난로공장과 식당 뒤 어떻게 다음 노동 OTL을 펴갈지 궁금했는데, 이주노동자와 결부시킨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불법 사람’들이 문을 잠근 상태에서 일한다는 내용을 읽으며 말로만 듣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았다.
정유진 독자들이 직접 느끼는 노동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 점에서 인턴들의 삶 등 독자 상당수가 실제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조명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준호 784호 표지이야기 ‘돼지와 새 그리고 신종 플루의 진실’이 인상 깊었다. 재미있으면서도 공부하며 읽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 것 같더라.
박지숙 이 기사에서 다른 주간지들과 확실히 차별화가 되더라. 다른 주간지에서는 일간지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한 정도가 보통이었다. ‘전염병이 개인의 질병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제기하는 것도 좋았다. 내용은 어려웠다지만 신선했다.
K 당국에서 신종 플루와 관련해 너무 겁을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치사율이 낮다면서도 하루하루 사망자 수를 카운트해가며 불안을 조장하는 것 같다. 좀 안심시켜주는 식으로 갔으면 좋겠다.
정유진 어려웠지만 알게 된 것이 많은 기사였다.
홍부일 기사가 어려워 중간에 “패스”라며 넘겼다. (웃음) 782호에서 다룬 박정희 전 대통령 기사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사실 학교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좋은 인식을 주입받는다. 보릿고개에서 구원한 분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국민 인권과 관련한 박 전 대통령의 과오도 알게 됐고, ‘밥으로 따지면 스탈린이 최고 지도자’ 기사는 굉장히 인상깊었다. 다른 나라 독재자들과 비교한 게 신선했다.
회의에 앞서 포즈를 취한 19기 독편위원들. 왼쪽부터 박지숙, 홍부일, 박준호, 정유진 의원. K위원은 회의에 늦었고, 나혜윤 위원은 신종 플루로 인해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다.
박준호 나는 ‘다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내용 아니냐’란 생각이 들었다. 스탈린과 비교한 것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통념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거 무슨 얘기지’라며 인식을 뒤집는 계기가 됐을 것 같다.
정유진 ‘김재규가 쏘지 않았다면’ 기사가 인상깊었다. 경제가 바닥을 치는 시점에서 암살당했기에 경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는 지적에 깜짝 놀랐다. 학교에 낼 독서감상문에 이 기사를 인용했다.
박지숙 의 박정희 보도를 다룬 기사가 제일 눈에 띄더라. 가 나서서 박 전 대통령을 그렇게 띄웠다니…. 미디어의 영향을 짚어준 점이 새로웠다.
K 내가 초등학생 때 박 전 대통령이 숨졌는데, 그 때문에 라는 만화가 결방된 기억이 난다. (웃음) ‘가난에서 구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지’라는 게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인데, ‘결과가 괜찮으니 과정은 어떠해도 괜찮다’는 이런 논리가 이명박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4대강 하느라 환경파괴 좀 할 수 있지 뭐…. 이 이런 논리의 허상을 깨주는 작업을 계속해줬으면 좋겠다.
박지숙 아쉬운 점도 있다. 진보 쪽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바닥에 깔려 있긴 한데,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도 박정희 담론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진보가 그를 뛰어넘으려면, 그 그늘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전면적으로 다뤄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박준호 최근 ‘사람이야기’ 난이 다시 생겼던데 어찌된 일인가?
사회 올해 초까지도 있었던 꼭지다. 적절한 소재가 없을 때 억지로 면을 메우는 듯해서 없앴는데, 쓸 이야기가 있으면 그때그때 쓰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박준호 작은 부분이긴 한데, 중간에 빨간 줄 하나 긋는 게 전부인 편집이 좀 생뚱맞더라. 레드 기획 뒤로 디자인이 흐름이 있는데 사람이야기는 전혀 융화가 안 되더라.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은 다른 시사주간지보다 낫다.
사회 글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인가? (웃음)
박준호 느낌을 얘기하자면 은 현상을 다루는 데 강점이 있고 은 자기의 판을 짜서 보여주는 쪽에 강점이 있는 것 같다.
박지숙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심야생태보고서’는 재미는 있는데 크게 공감되지는 않는 듯하다. 성생활, 건전하게 룸살롱 가기, 학생들의 심야탐방, 이런 새로운 소재를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781~786호 여섯 권 가운데 절반이 표지이야기가 노동이었다. 노동 OTL이 두 개에 손바닥 문학상까지…(사실은 783호 ‘국가의 오른손과 왼손의 혈투’까지 4번이었다-편집자). 너무 한꺼번에 몰려 있으니 은 노동 얘기밖에 안 한다는 느낌을 주더라. 손바닥 문학상이라도 좀 다르게 꾸몄더라면 좋았겠다.
K 786호 초점 ‘특명하달 “삽질로 논란 끝장내라”’는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 예산안 통과 전 공사 강행 등 대부분 아는 내용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아는 것을 또다시 언급하기보다는 해결 방안을 보여줬더라면 좋았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보도만 보다 보면 패배의식에 젖을까 걱정되더라. ‘백날 뭐라고 써봐야 어차피 할 건데’라는…. 이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홍부일 783호 ‘시티파머’ 기사도 실망스러웠다. 레드 기획 정도면 몰라도 뭔가를 홍보하는 느낌만 받았다. 이렇게 기르면 좋다고 할 뿐이잖나. 세계 도시가 녹색으로 갈아입는다는 보조기사도 다른 기획에서 다룬 외국 도시들 이야기와 중첩되는 느낌이었다.
정유진 난 비판할 만한 기사는 별로 못 찾았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786호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 뒤편에 소개된 요즘 투쟁하는 분들에 대한 기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교육 예산 삭감 때문에 학생들이 투쟁을 했는데, 기사를 읽으며 ‘여기 사람들은 삶을 다 내걸며 이렇게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바닥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내던 모습이 생각나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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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기 독자편집위원
사회·정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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