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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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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셰프 키우고 싶다”

두바이 ‘7성 호텔’ 총괄조리장 출신 에드워드 권
“<예스 셰프> 출연 모습보다 실제가 더 지랄맞아… 요리사 양성학교 만드는 게 꿈”
등록 2009-11-11 17:16 수정 2020-05-03 04:25

“당신의 요리는 섹스보다 나아요.”
음식을 맛본 팝가수 마돈나의 평이다. 그를 음식으로 감동시킨 건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로 불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알아랍 수석총괄조리장이었던 에드워드 권(38·한국 이름 권영민). 미국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중국 셰러턴 그랜드 텐진 호텔 등을 거쳐 세계 최고의 호텔 조리장에 오른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요리사다. 그가 일한 부르즈알아랍은 하루 평균 숙박비가 750만원으로, 국가 원수나 세계적인 갑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TV에서 보던 VIP 손님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그를 찾아와 음식을 주문한다. 그러면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공수해 온 최고의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다. 음식값은 물론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은 “한국 국적의 셰프가 많아질수록 한국의 식문화도 그만큼 널리 퍼지게 된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은 “한국 국적의 셰프가 많아질수록 한국의 식문화도 그만큼 널리 퍼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스타 셰프’로 이름을 알린 그가 지난 5월 훌쩍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인 요리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케이블·위성채널 QTV (금요일 밤 12시 방영)에서 그는 ‘제2의 에드워드 권’을 길러내고 있다. 미국 서바이벌 요리쇼인 의 고든 렘지보다 더 독한 카리스마로 도전자들을 압도한다. 두바이를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 에드워드 권을 지난 10월27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프로그램 속 모습은 설정인가.

= 있는 모습 그대로다. 실제 모습이 훨씬 더 무섭고 지랄맞다. (웃음) 감독이 ‘삐’ 소리(욕설 처리)가 많다고 자제 요청도 하더라. 주방에서는 완벽한 음식을 만드느라 더 날카로워져서 호통과 욕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 후계자를 뽑는 에 참여한 이유는.

= 지금까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여줘도 요리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주목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 요리사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봤다. 는 요리사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 흔쾌히 출연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외국에서 요리사로 성장하면서 가졌던 응어리들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 외국 생활이 힘들었나.

=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어 미국으로 떠난 게 29살 때다. 그런데 내가 아시아인이라고 차별받는 일이 많았다. ‘독종·악질’이란 소리를 들으며 악착같이 버텼다. 그렇게 10년 만에 두바이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국에 나가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도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셰프가 갖는 인사권으로 한국인 셰프를 쓰는 거였다. 하지만 언어능력 등에서 회사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한국인 셰프를 뽑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한국인 셰프를 받기 위해 한식 코너까지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를 통해 글로벌 셰프를 키우려는 이유다.

- 쓰레기통에 있는 파프리카를 직접 먹고, 도전자들에게도 먹게 할 땐 충격이었다.

= 효과는 확실했다. 그 이후 쓸 수 있는 식재료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은 없었다. 요리사의 성장 과정엔 식재료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낭비한 식재료를 쓰레기통에서 건져 먹는 건 우리 식당에서도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 ‘제2의 에드워드 권’은 나올 것 같나.

= 최종 우승자는 나와도 내가 생각한 후계자는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미션을 줄 때 보면 경력자가 미경력자보다 못할 때가 있다. 오랜 경험이 오히려 순발력과 독창성을 막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연륜과 경험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 프로그램의 재미라, 도전자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요리사 에드워드 권

요리사 에드워드 권

어릴 적 그의 꿈은 신부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반대로 방황하다 고등학교 때 가출을 했다. 서울에 올라와 일한 한 경양식 집에서 그의 첫 주방 경험이 시작된다. 전문대 조리학과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리츠칼튼 호텔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게 됐지만 학맥·인맥을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꾼다. 미국으로 떠난 그는 슈퍼마켓을 서점 삼아 들리며 살아남기 위해 요리를 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최고 요리사의 타이틀을 따낸 것은 절박함이 있어서였다.

- 직업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게 일 같기도 하겠다.

= 전혀 모르는 음식을 접하면 그렇다. 먼저 왜 이런 음식이 만들어졌을까를 시작으로 다양한 생각을 한다. 먹고 나서는 왜 이 조리법으로 했을까 고민한다. 음식을 음미하다 보면 문화를 이해하고 익히게 돼 재밌다. 음식 맛보는 게 곤욕일 때도 있다. 2008 미국 최고의 요리사는 설암에 걸려 혀를 절단했다.

- 맛있는 음식이란 뭔가.

= 만든 사람이 맛봐서 맛있는 게 기본이다. ‘맛있다, 없다’는 간이 제일 중요하다. 비싸다고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길거리 떡볶이를 먹다가도 감동받을 수 있다.

- 도전자가 당신의 음식을 먹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더라.

= 그건 과찬일 뿐이다. 스스로 최고의 요리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늘 배우고 있다.

- 요리할 때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 난 요리를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잘 만드는 것 외에도 식기에 담는 법, 음식을 먹는 환경·분위기도 중요하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잘 먹었습니다” 대신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 한식 홍보대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 외국 생활을 해보니 우리 음식이 외국인들에게 접근성이 부족함을 알았다. 그래서 한식을 재해석하고 싶었다. 한식의 세계화를 거창하게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음식을 꼭 우리식대로 전해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말을 하기엔 우리 의식주가 이미 세계화돼 있다. 그런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면서 우리 식 그대로의 세계화를 말하면 말이 안 된다. 내가 6년 동안 최고 셰프의 자리에 올라 가졌던 경험으로 우리 한식의 틀을 부수지 않는 선에서 알리고 싶다.

- ‘두바이 7성급 호텔의 수석총괄주방장’이란 호칭을 최고의 수식어로 생각하나.

= 두바이 이전의 호텔에서도 난 최고주방장이었다. 그런데 두바이에 오게 되니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런 면에서 나를 수면으로 떠오르게 한 호칭이자 평생 따라다닐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세계 최고의 호텔에서 일했다는 건 나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 VIP 손님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일주일에 한 번씩 돈 있다는 사람은 거의 다 만난 것 같다. 빌 게이츠, 베컴 부부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 최고의 대우도 받았을 텐데 왜 한국에 왔나.

=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비싼 식재료를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똑같은 주방일 뿐이었다.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내가 두바이를 떠난다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다시 못 돌아가는 곳인 줄 알고 안타까워했는데 그렇지 않다. 처음 뚫고 들어가는 게 어렵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 세계를 무대로 뛴 요리사로서 후계자가 꼭 한국인 셰프일 필요가 있나.

= ‘제2의 에드워드 권’이 한국인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한국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다. 하지만 될 것 같다. 내가 본 한국인들은 똑똑하고 일을 잘한다. 손재주도 외국인들이 따라오지 못한다. 한국인 셰프가 외국에 많이 나가 있으면 한국 식재료를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도 두바이에서 많은 식재료를 한국에서 나는 것으로 바꿨다. 한 나라, 한 도시에 우리 국적의 셰프가 많아지면 그만큼 한국의 식문화도 널리 퍼지게 된다.

- 요리사로서 많은 것을 이뤘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 남들은 내가 정상에 서 있다고 하지만 난 10에서 5밖에 안 와 있다. 꿈은 늘 바뀌지 않나. 나도 처음엔 미국에 가는 것, 셰프가 되는 것, 세계 최고 호텔의 총주방장이 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다. 이젠 요리사 양성학교를 만들고 내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 훗날엔 내 이름으로 한국의 요리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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