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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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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함이 다르다


창구마다 칸막이, 세세한 ‘약정보’, 개인별 ‘약수첩’… 도쿄 약국의 소통 서비스
등록 2008-11-21 18:12 수정 2020-05-03 04:25

이미 고령화 사회가 정착된 일본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관련 정보의 홍수로 이어진다. 주요 일간신문의 건강 섹션은 기본에, 일상의 식습관과 병에 대해 분석하는 TV 프로그램은 장수를 보장한다. 특히 한국과 다른 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약국이다. 때마침 도쿄의 약국을 취재한 직후 서울 출장길에 가벼운 사고를 당해 병원치레에 서울의 한 약국까지 돌아나오니 두 나라 약국의 차이를 실감케 된다.

도쿄 다쿠미가이엔약국의 풍경.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한 칸막이가 인상적이다.

도쿄 다쿠미가이엔약국의 풍경.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한 칸막이가 인상적이다.

약마다 사진·효력·주의점 등 제공 의무화

평소 이용해온 도쿄 센다가야구 요요기병원 옆 ‘다쿠미가이엔약국’.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조제약을 받는 창구의 칸막이다. 환자 개개인이 약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병과 관련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약사들은 환자들의 연령을 고려해 말의 빠르기를 고르고, 처방된 약에 대한 설명은 물론 확실한 주의가 요구되는 약에 대해서는 정중한 부가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약제정보 제공료를 창구에서 직접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약정보’가 2007년 4월부터 의무화됐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약의 효능과 주의사항을 일별해주는 찬찬한 설명이 고맙기만 하다.

나카무라 에이코(가명)의 약정보를 보자(사진 참조). 그가 처방 받은 약은 하루 4회 3정, 2회 4정에 아침과 취짐 전에 1정씩, 식후 2정, 그리고 붙이는 약 2종과 좌약 1종, 꽤 많다. 양도 양이지만, 대체 무슨 약이 어떤 효과를 보이고 주의점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세치로배합정’이라는 변비약에 대해 현물 사진과 더불어 실제 모양과 색깔, 포장 상태, 용법 등이 한눈에 보이는 설명을 붙여놨다. “황갈색 또는 붉은색을 띤 소변이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다량의 우유 또는 고칼슘 식품과의 병용은 피하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경우 이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의사 또는 약사에게 꼭 전해주십시오”라는 주의점이 명기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사가 단순히 조제약과 함께 프린트된 약정보를 넘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환자에게 실제 약정보를 세세히 일러주고 요주의 사항을 일깨워주며, 나아가 약을 지으면서 약과 약 사이의 ‘궁합’이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도 체크한다는 점이다. 환자로서는 혹 탈이 난 것이 약 때문은 아닐까,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 이 약을 먹으니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계속 먹어도 괜찮을까 등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비해 “술과 함께 먹으면 혈압이 내려가므로 복용시 음주를 피하라”(인데랄정), “졸음이나 어지럼증 및 시야가 흐려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 조작을 피하라”(볼타렌정) 등 특정 약품의 복용과 관련한 주의사항을 자세히 안내한다.

“환자가 약을 정확히 알고 복용하도록 돕는 것은 약사의 역할입니다. 아울러 의사의 처방을 기계적으로 조제하는 것도 뛰어넘어야 합니다. 약이란 단독 효과를 상정해 개발된 것이므로, 다른 약에 영향을 미칠 경우 분별해내는 것이 약사의 몫이죠.” 약사 경력 20년의 베테랑, 다쿠미가이엔약국의 다니모토 마사요시(44)의 말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약품 데이터 정비, 동시 복용을 피해야 하는 약품을 걸러내는 컴퓨터 시스템, 약사들 간의 학습 모임을 통한 꾸준한 연구와 매뉴얼화가 필요하다.

약 사진과 효력, 주의점 등이 세세히 적힌 약정보(왼쪽)와 약력 정보를 쌓아나가는 약수첩(오른쪽).

약 사진과 효력, 주의점 등이 세세히 적힌 약정보(왼쪽)와 약력 정보를 쌓아나가는 약수첩(오른쪽).

한국 대형 약국의 바쁜 풍경

서울의 약국 모습은 달랐다. 서울에서 가벼운 자동차 접촉 사고를 당한 뒤 목뼈 주변 근육 통증으로 2주간의 약물 치료를 진단받은 날,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았다. 처방전에 적힌 엑소패린정, 스티렌정, 소말겐정 등 3종류의 알약 2주분을 받았다. 스스로 약사에게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 약들에 대해 뭐가 뭔지 알 길이 없다. 창구에서 묻는 사람 역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이 몰릴 경우 그런 것을 물었다가는 눈총 받을 것 같은 느낌이다. 대학 부속 종합병원 인근 대형 약국에서 환자 1명에게 소요하는 시간이 2분여 정도라는 한국 상황에서 약에 대한 설명은 어쩌면 ‘사치스럽다’.

일본에선 약정보뿐 아니라 ‘약수첩’도 보편화하고 있다. 의무화된 약정보와 달리 아직 유료이긴 하지만, 현재 일본인의 40%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는 ‘약수첩’은 현업 의사들도 입을 모아 높게 평가한다. 처방을 내릴 때 필수인 환자의 약력을 참고할 수 있으니 외려 가지고 다녀주는 환자에게 감사하고, 꼼꼼히 기록된 내용들이 거의 환자의 진료 기록 차트와 맞먹을 정도란다.

도쿄도약제사회가 제작한 약수첩은 ‘의료기관 어디에든 꼭 지참하세요’라고 적힌 겉장을 넘기면 약이름, 복용 방법, 주의사항, 의료기관명, 담당의사, 약국명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한 내용이 기록된 실(seal)을 붙이게 돼 있다. 또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개인정보를 적은 난이 있고, 각 페이지 위쪽엔 “복용 방법과 양에 대해서는 지시에 따릅시다” “자신의 판단으로 약을 중단하는 일은 삼갑시다” “오랜된 약은 먹지 맙시다” 등 약에 관한 캠페인이 펼쳐진다.

‘전일본 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가 제작한 약수첩은 한 차원 진화했다. 건강체크 기록이 가능하고,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상의 목표를 적고 평가하도록 했다. 또 정기검진과 진료에 대해 기록하는 난도 있고, “약의 사용 목적과 방법, 주의사항들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을 들을 것” “약에 대해 불안한 것은 사양치 말고 의사에게 물을 것” “약을 복용한 뒤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병이 더 악화됐을 경우 빨리 의사와 약사에게 상담하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대처하지 말 것” 등 환자의 편에 선 권고가 적혀있다.

약국 대기실에 비치된 제약회사들의 각종 질환 관련 정보지 틈에서 약사 다니모토가 꼭 봐달라며 종이 한 장을 건넨다. 도쿄민의련 약제사위원회와 협립의사협동조합이 함께 만든 ‘후발의약품 캠페인’ 전단이다. 후발의약품이란 개념이 생소해 물었다.

“같은 효능을 지닌 약인데, 시기상 더 늦게 나온 약을 이르는 말이죠. 새로 개발된 선발의약품의 특허기간이 종료된 10년 뒤, 2∼8할의 가격으로 다른 제약회사에서 발매된 약입니다. 유효성과 안정성 품질평가를 마친 선발의약품과 동일한 성분입니다.”

값싼 ‘후발 의약품’ 사용 캠페인

안전·유효·저렴한 가격의 약을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를 지향하는, 환자를 생각하는 약사와 의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간장약 하나도 브랜드를 지정하면 그대로 써야 하는 한국 상황과 대별된다.

마지막으로 전단 한쪽의 메시지. “어떤 약을 사용하느냐, 의료인과 사용자가 함께 정하는 시대입니다. 약의 비용·효과에 대한 의문, 부작용에 대한 걱정 등을 직원과 상담하세요.”

약국이 환자에게 소통의 서비스를 제언하는 이 문구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왜일까.

도쿄(일본)=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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