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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있어요?” “응, 진짜같은 가짜도 있지”

남대문 수입상가 유명 의약품 불법 판매 현장… 오·남용으로 건강권 위협
등록 2008-11-07 14:10 수정 2020-05-03 04:25

“저기, 비아그라 있어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10월30일 오후 2시 서울 남대문시장 수입지하상가. ○○○식품점이라고 쓰인 작은 입간판 아래에는 식품이 아닌 약품들이 버젓이 놓여 있었다. 가게 주인 할머니가 대번에 반가운 듯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중국산이 있고 진짜 비아그라가 있는데 중국산은 5천원, 미국산은 1만8천원”이라고 답했다. “중국산은 가짜 아니에요?”라고 묻자 “진짜 같은 가짜”라고 했다. 심지어 주인은 “중국산 성분이 몸에 더 해가 없다”며 “한번 써본 사람들은 효과 좋다고 계속 사간다”고 덧붙였다.
중국산 한 알, 미국산 한 알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반문했다. “진짜 살 거야? 이건 우리도 불법이기 때문에 저 밖에 나가서 가져와야 해. 안 살 거면 못 보여주지.” ‘꼭 사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자 주인은 약과 화장품들이 쌓여 있는 선반에서 원통 모양의 향수갑 하나를 꺼냈다. 갑 뚜껑을 열자 파란 알약들이 들어 있었다. 손으로 한 알을 꺼내 하얀 봉투에 넣어줬다. 미국산은 아예 주인 할머니 허리춤에 있는 봉투에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춤에 있는 봉투에서 또 다른 새하얀 봉투로 ‘진짜’라는 비아그라를 옮겨 넣어줬다. 주인은 중국산이 들어 있는 봉투에 ‘중’자를 손수 쓴 뒤 “비교해보고 좋은 걸로 다음번에 또 사라”고 일렀다. “술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덧붙였다.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구입한 비아그라 알약.  김정효 기자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구입한 비아그라 알약. 김정효 기자

위궤양 약 달라는데 중국산 소화제 줘

‘비아그라’ 불법 구매 현장을 지켜본 대한약사회 진윤희 홍보팀장은 “약을 저렇게 열어둔 상태에서 판매하면 약이 어떤 특정 물질에 노출돼 오염될 수도 있고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현행 약사법은 허가받은 약국 개설자나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44조). 또한 판매자는 ‘조제’의 목적이 아니고서는 수입자가 봉함한 의약품의 용기나 포장을 개봉해서 판매할 수 없다(48조).

이 가게에선 ‘비아그라’는 물론이고 위궤양약인 ‘잔탁 150mg’ 같은 전문의약품도 함께 팔고 있었다. 환율이 올라 잔탁 가격이 1만8천원에서 2만7천원으로 훌쩍 뛰었다.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고 망설이자 약품과 식품을 섞어 파는 수입상가에서 일명 ‘캐비지’라고 불리는 중국산 소화제를 권했다. 잔탁은 위궤양약이고 ‘캐비지’는 소화제다. 위궤양약은 위산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약인 반면, 소화제는 소화를 돕도록 위산이 다량 분비되도록 하거나 소화 작용을 돕는다. 똑같이 위에 작용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약이 혼동돼서 팔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지식이 없는 가게 주인이 약을 팔다 보니 이런 ‘오판’은 종종 있는 일이다.

제대로 위궤양약을 사도 문제다. 전경진 서울시약사회 정책위원장은 “속이 쓰리고 불편한데 처방 없이 위궤양약을 마음대로 사서 먹다 보면 ‘위암’과 ‘위궤양’을 혼동해 위암을 조기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말기에 발견하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간혹 ‘저산증’을 ‘위궤양’으로 혼동해 오히려 위산을 줄이는 약으로 위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하는 등 처방 없이 약을 쓰는 건 여러 가지로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밀수한 발기부전 치료제를 한약재와 혼합해서 만든 가짜 정력제. 한국화이자제약은 불법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적발된 것만’ 연간 400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중국에서 밀수한 발기부전 치료제를 한약재와 혼합해서 만든 가짜 정력제. 한국화이자제약은 불법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적발된 것만’ 연간 400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송찬우 한국화이자제약(주) 과장은 “‘비아그라’를 제대로 처방받아서 먹지 않으면 약의 혈관 확장 성분이 다른 약들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고혈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데 불법 약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며 “약품의 성분비가 일정하지 않아 약효가 전혀 예측되지 않고 성분도 정품의 성분이 아닌 불순물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수입지하상가에서는 전문의약품 이외에도 아스피린류, 타이레놀, 정로환 등 정장제, 오스칼 같은 칼슘제, 혼합비타민 제제인 센트룸, 진해거담제인 용각산 등 ‘브랜드가 유명한 일반의약품’들이 불법적으로 팔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허가받지 않은 외국 약도 마구 팔리고 있었다.

한 해 이렇게 불법 판매되는 약의 시장 규모는 가늠하기 힘들다. 송찬우 과장은 “화이자에서 경찰, 검찰,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에 신고된 동향으로 파악한 불법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약 400억원 규모”라며 “이는 적발된 것에 불과할 뿐 여전히 적발되지 않은 불법 판매 시장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단속에 걸리는 곳 10%도 안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상시적으로 인터넷에서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불법 판매하는 곳을 검색한다. 올해 상반기 단속 결과 발기부전 치료와 관련한 불법 사이트 105군데, 처방을 받아야 하는 근육강화제를 판매한 곳 47군데, 비타민제나 감기약 등을 판매한 곳 176군데 등 모두 328곳을 적발해 사이트 차단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했다. 지난해에는 대형 시장 등 수입상가 66곳, 유통기한이 지난 한약재를 판매한 36곳, 화장품을 불법으로 판매한 피부관리실 12곳 등 모두 114곳을 적발했다.

그러나 진윤희 홍보팀장은 “지난해에도 1년에 겨우 나흘 동안만 단속을 했을 뿐이고 단속 기간에 적발된 곳이 전체 불법 판매업소의 10%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진 팀장은 “남대문 수입상가만 해도 적어도 50여 곳에서 불법으로 약을 팔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114곳을 적발한 것은 굉장히 미미한 수치”라고 말했다. 서울만 해도 남대문, 회현역 일대 등에서 불법 약 판매가 두루 이뤄지고 있다. 한 두 푼 아끼겠다고 약국이 아닌 곳에서 약을 사는 것은 결국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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