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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의 법무관들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에 헌법소원 제기한 7명의 법무관들 “국방부가 더 불온하다”
등록 2008-10-28 11:43 수정 2020-05-03 04:25

도대체 ‘불온’이란 무엇인가? 누가 판단하는가? 불온을 논하는 자가 불온한 것 아닌가?
기본권 무시하는 사회에 일침을 놓으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판사들( 732호 ‘다크 나이트의 판사들’ 참조)에 이어, 군복 대신 의 배트맨 의상으로 갈아입은 법무관 7명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금서 조처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내놓은 핵심 문제들이다. 이들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이 매우 불온한 처사임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왼쪽)이 지난 10월2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군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와 관련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군은 여전히 규율과 처벌의 시각에서 이번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상희 국방부 장관(왼쪽)이 지난 10월2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군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와 관련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군은 여전히 규율과 처벌의 시각에서 이번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국방부가 말하는 ‘불온’이 대체 뭐냐”

이들은 지난 10월22일 헌법재판소에 낸 소장에서, 지난 7월 국방부가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지시’ 등을 통해 장하준 교수의 , 한홍구 교수의 등 23권의 책을 군대 안에서 휴대하거나 반입하지 못하도록 한 조처는 여러 모로 반헌법적임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불온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주목하고 있다. 소를 제기한 한 법무관은 소송을 대리하는 최강욱 변호사를 통해 “도대체 군이 말하는 불온이 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장은 “불온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대체 무엇인지 국방부의 명령(군인복무규율)에 의하면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령의 경우 명확성의 원칙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위반한 위헌적 명령”이라고 못박고 있다.

사실 ‘불온’이라는 말은 모호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는 일방향적인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띤 표현이기도 하다. 주로 우파가 좌파에게, 그리고 보수가 진보에게 색깔론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동안 써왔던 말이다. 또 시민들에게 ‘레드 콤플렉스’를 강요하는 강력한 언어체계이기도 했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정보·수사기관이 애용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불온서적’ ‘불온 노랫말’ ‘불온 세력’ 등이 그 예다. 더 멀리는 ‘불온’이라는 말이 일제시대 때부터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는 “일제 때 천황제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민족해방, 개혁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불온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며 “박정희 시대 때는 체제 부정에 불온의 딱지를 붙였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 운운하는 행위 자체가 친일에서 쿠데타, 독재로 내려오는 군의 과거 그림자를 보여주며 과거 청산에 실패한 군의 모습을 웅변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번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 자체가) 쾌거다”라고 평가했다.

7명의 법무관은 국방부가 ‘북한 찬양’ ‘반미’ ‘반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범주로 불온서적을 분류한 것과 관련해서도 “전혀 별개의 또 다른 추상적인 개념을 끌고 와 불온의 내용을 설명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출판계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히고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된 책() 등 이미 ‘사상의 시장’에서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은 교양 도서들이 불온하다고 하는 건 상식 이하의 판단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불온이라는 모호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군인의 시각을 반쪽짜리로 만드려는 국방부의 볼온서적 지정이 되레 불온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획일적 시각의 강요로 인해 “민주사회의 군인이라면 경계해야 할, 나치즘의 부분사회로 변모하는 것”이라는 파격적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군이 조금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은 나치즘 사회의 한 부분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강욱 변호사는 “누구도 실체를 본 적 없고, 군 수뇌부의 이익과 정치적 이익이 있을 때만 왔다가 사라지는 괴물이 바로 ‘불온’이라는 말”이라며 “근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군대의 독서량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로 책을 많이 읽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만으로 각종 헌법적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받을 수 있느냐는 것도 이들이 제기하는 주요한 논점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군인의 기본권 제한은 ‘국토 방위와 안보’라는 하나의 서비스 공급을 위한 전투력 보존이라는 목적 아래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근무나 훈련 때 제복을 입도록 하는 게 군인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있지만, 그게 옳지않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번 금서 조처는 전투력 보존이라는 목적에 비춰 합리적인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금서 조처가 일반의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군인들에게 적절한 ‘균형감각’을 키우는 기회를 봉쇄한다는 점에서도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이상희 국방장관 “영외에서 보면된다”

국방부는 이번 불온도서 지정 및 반입 등을 금지한 조처에 대해 군대 안에서만 이뤄지는 일이라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10월23일 국감에서 “불온서적을 영내에 비치하지 말라는 것이지 영외에서 개인적으로 구입해 독서하는 것까지 막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불온서적을) 밖에서 읽으면 장병 정신 전력에 저해가 안 되고 담 안에서 보면 저해가 된다는 얘기냐”며 “헌법 질서가 군대 울타리를 들어서는 순간 효력이 없어진다는 장관의 말 자체가 위헌”이라고 말했다.

법무관들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국방부는 이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 10월23일에는 법무관들을 각 군 본부로 불러 이미 한두 시간가량 조사를 한 바 있다. 동시에 일부에서는 이 7명이 함께 헌법소원을 낸 것을 두고 정치적 배경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군복 입은 배트맨’들은 누구일까. 박아무개 대위 등 3명은 2005년 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올해 1월 사법연수원을 나란히 수료해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머지 법무관들은 사법시험과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한 해가 다르거나 시험의 종류가 다르다. 2명만 1980년생으로 나이가 같고 나머지는 제각각이다. 다만 법무관이라는 공통의 병과를 갖고 있으면서 안면이 있거나 이름을 아는 정도의 사이였던 것으로 안다고 최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는 “이들에게 정치적인 뜻은 전혀 없다”며 “너무나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군대 안에서 시위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자며 ‘파편’들이 모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에게 헌법소원은 가장 현실적이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수단이었던 셈이다.

특히 육군본부에서 송무 쪽 일을 하던 지아무개 소령은 내년에 국외연수를 다녀오기 위해 준비 중인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 변호사는 규정상 연수기간의 2배 만큼을 추가로 근무해야 전역이 가능하다. 앞으로 군생활이 많이 남은 이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헌법소원을 냈다는 건 언어도단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주적 소통 위해 군 개혁해야”

한편, 법무관들의 이번 행동을 놓고 군대 안의 소통 문제를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인다. 사병과 장교 생활을 모두 해본 김대환 시립대 교수(헌법학)의 말이다.

“법무관들이 (그런 문제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군 내부에 돼 있지 않은 측면을 봐야 한다. 군 내부에서 하급자들의 의사를 상급자가 읽어 민주적으로 운영해나가겠다는 제도가 소원수리 제도인데 제대로 안 굴러가고 있다. 소통의 부재가 문제다. 상층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민주적 소통을 위해 상급자들이 나서 군 개혁을 해야 한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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