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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우토로와의 약속을 잊었는가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땅 매입 앞두고 한국 정부에 지원 요청하는 우토로 주민들, 형평성 거론하며 물러서는 외교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일본 교토부 우지시의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한국인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는 지난해 12월17일 슬픔에 잠겼다. 최중규(90)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최씨는 우토로 거주권 쟁취 운동의 중심에 섰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마을 사람들의 슬픔은 더 컸다. 1942년 후쿠오카 탄광에 강제 동원됐다가 1967년 우토로로 이주해 건설노동자로 일해온 그는 ‘불법 거주자’의 딱지를 떼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그때 잠깐 국내 언론에 모습을 비친 우토로는 다시 잊혀졌다.

한국이 우토로를 잊고 있을 때 우토로는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희망도 있었고 절망도 있었다. 우토로가 자리잡은 우지시는 지난해 “우토로 땅 소유권 문제가 해결되면, 우토로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마을 만들기(마치즈쿠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치즈쿠리는 일종의 마을 재정비 사업이다. 상하수도 시설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여름 장마 때면 하수도가 넘치는 마을의 주민으로선 몹시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한국의 국무총리 산하 기구인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도 지난해 12월28일 ‘일본 우토로 지역 주민의 도일 배경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거주권 문제는 역사적 기원이라는 차원에서 일제의 전시정책과 일본 국제항공공업회사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땅 매입할 7억엔 조성이 목표

고령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사이, 우토로 땅을 사들이기 위한 서일본식산과의 땅 매매 협상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주민들이 절망한 건 서일본식산이 부른 막대한 땅값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12억엔(94억원). 지난 1월 서일본식산은 다른 쪽에서도 땅값을 타진해오고 있다면서 시세 7억엔(55억원)보다 높은 금액을 불렀다.

우토로 주민들은 다시 한 번 조국을 찾기로 했다. 2005년 불붙은 우토로 돕기 운동에 힘입어 정부가 공언한 지원 약속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교일 우토로 주민회장과 황순례 할머니는 4월16일 한국에 온다. 그리고 주민회가 작성한 ‘대한민국 정부에의 요망서’를 한국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 우토로 주민들로부터 미리 받아본 요망서는 주민들이 바라는 땅 매입 방안을 담고 있다. 땅 매입 목표 금액은 7억엔으로 정했다. 이 금액은 주변 시세를 고려해 산출했다. 하지만 주민회는 “주민들 자력으로 이 금액을 만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2006년 5월 주민총회를 열고, 각 세대가 낼 수 있는 땅 매입 금액을 조사했다. 여기서 조사된 금액은 모두 2억엔. 여기에 2005년부터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아름다운 재단, 이 벌인 우토로 돕기 운동에서 모은 5천만엔이 있다. 우토로 주민회는 여기에 재일동포 조직 등의 모금액 5천만엔을 기대하고 있다. 이 금액을 합쳐도 4억엔이 부족하다. 주민들은 부족분을 한국 정부가 충당해주길 원하고 있다.

주민들은 우토로 땅 소유권을 누구로 할지는 열어뒀다. 매입자금을 낸 세대만 개인재산화하고, 나머지 땅 소유권은 한국 정부와 협의해 법인 형태 등 여러 가능성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우토로 주민들은 고령자를 위한 공영주택도 세울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2005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우토로 땅 매매에 대한 지원 방침을 약속했다.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유엔 사무총장)은 2005년 10월25일 국회에서 “민간 모금을 측면 지원하고, 그 다음에 동포들의 인도적인 구제 차원에서 여러 문제를 검토하겠다”며 “재외동포재단 등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예산이 모자라면 예비비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반 전 장관은 같은 해 8월15일 문화방송 광복절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우토로 문제에 대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제가 국무회의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강조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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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에 비판적인 민단에서만 정보 받아”

한국 정부의 약속 이후 우토로 주민들은 전 소유주 이노우에 마사미와 서일본식산의 소유권 재판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국 정부가 우토로 주민들에게 “소유권 분쟁이 끝나면 정식적인 지원 요청서를 제출하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서일본식산이 소유권 분쟁에서 최종 승소했고, 우토로 주민회는 서일본식산과 땅 매매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서일본식산은 우토로 주민회의 자금 능력을 의심하고 있어서 주민회로선 한국 정부가 비공식적인 보증이라도 해주길 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최근 들어 기존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봉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4월13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했다. 김 국장은 “우토로와 비슷한 다른 마을과 비교했을 때 우토로만 지원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며 “우토로 주민회,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의 협의에 따라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볼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언론의 관심 사항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원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지원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반 전 장관의 발언을 아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외교부가 말하는 ‘우토로와 비슷한 다른 마을’은 일본 효고현 나카무라, 오사카부 다치소, 가나가와현 이케가미 등의 재일조선인 밀집 지구다. 하지만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우토로와 이들 마을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나카무라는 국유지로서 일본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거주권을 보장받아 마을 만들기 사업이 확정됐고, 다치소는 1983년 소유권자와의 타협을 통해 주민의 땅 매입으로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케가미는 다수 세대가 이미 땅을 불하받았으며, 주민들이 소유권자와의 성공적인 교섭을 위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는 것을 꺼리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법원에서 불법 점거가 확정돼 강제 퇴거 위기에 있는 마을은 우토로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배지원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은 “외교부가 우토로 문제 해결에 비판적인 민단에서만 관련 정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 요청서로 한국 정부 의지 확인

우토로 주민들이 지원 요청서를 가져온 것은 한국 정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받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해방 뒤 50년 이상을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에서 버림받은 삶을 살아왔다. 2005년 우토로 돕기 운동이 촉발한 한국 정부의 약속은 단지 구두선이었을까. 한국 정부는 다시 시험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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