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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워 쓰레기, 우리 지역 밖으로

새 소각장 들어서는 상암동 부지, 주민 없는 설명회에 주민 의견 없는 입지선정… 7년여간 ‘불편한 문제’ 회피한 뒤 ‘무리한 속도전’
등록 2023-02-04 09:59 수정 2023-02-07 02:06
2023년 2월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국항공대에서 열린 서울시의 새 ‘광역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고양시 한 주민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은 새 소각장 단독 후보지인 ‘상암동 부지’로부터 1㎞ 남짓 떨어져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3년 2월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국항공대에서 열린 서울시의 새 ‘광역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고양시 한 주민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은 새 소각장 단독 후보지인 ‘상암동 부지’로부터 1㎞ 남짓 떨어져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소각장이 그렇게 안전하고 좋은 시설이면 최소한 분산은 시켜야지, 왜 한곳에 다 몰아넣으려고 하느냐.”(대덕동 주민 ㄱ씨)

“고양시가 서울시에 있으면 안 되는 유해시설 몰아주는 서울시 똥구멍인가. 개발독재 시대도 아닌데 위에서 찍어누르듯 이 급하게 추진하는 이유가 뭐냐.”(대덕동 주민 ㄴ씨)

2023년 2월1일 오전 10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국항공대에서 서울시 주최로 열린 ‘상암동 새 광역 쓰레기소각장(광역 자원회수시설)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덕양구 대덕동 주민 70 여 명은 설명회 내내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했다.

버스로 1시간30분 걸리는 곳에서 설명회

서울시는 마포구 상암동에 1천t 규모의 소각장을 지을 계획이다. 이 소각장 단독 후보지는 이미 서울 쓰레기의 23%가량을 태우는 상암동 광역 소각장(750t 규모) 바로 옆이다. 소각장 부지 바로 옆의 상암동, 1~3㎞ 떨어진 고양시 대덕동 주민들은 2022년 8월 후보지 발표 이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덕동 동쪽으로 서울시 소각장이, 서쪽으로 서울시 광역 하수종말처리장 (물재생센터)과 서울시 서대문구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이 있다.

앞서 1월18일에도 서울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동양인재개발원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대덕동에서 버스로 1시간30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설명회 날짜도 애초 고양시와 1월 17일로 협의했지만, 엿새 전 일방적으로 확정했다. 참석 인원도 200명으로 제한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당시 주민설명회 자리를 채운 140여 명은 대부분 서울시청 직원과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맡은 용역회사 직원이었다. 환경영향평가법상 소각장 입지를 결정하기 전 반드시 한 번 이상 예 정지 반경 5㎞ 이내 주민을 대상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 설명회’를 열도록 돼 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준호 국회의원(경기 고양을)은 “대규모 소각장을 설치하면서 서울시가 이렇게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서울시가 주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설명회의 절차상 하자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는 서둘러 2월 1일 설명회를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서울시는 예정대로 2023년 3월 입지를 확정해, 2024년 하반기 공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대신 기존 750t 규모 소각장은 2035년 수명이 다 한 뒤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서울시가 서두르는 까닭은 2026년부터 수도권 지역에서 선별·소각 없는 생활폐기물(종량제봉투에 담긴 일반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하루 생활폐기물 3132.4t이 발생하는 서울에서 2185.7t가량은 자원회수시설 4곳에 고루 나눠져 소각 된다(2020년 기준). 마포(서북권), 노원(동북권), 강남(동남권), 양천(서남권)이 그곳이다.(아래 그림 참조) 나머지 946.7t은 인천의 수도권 매립지로 향했는데, 2026년부터는 갈 곳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에 서울시는 2019년 소각장 입지선정 공고를 낸 뒤, 2020년 12월 ‘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선정위원회’(입지선정위)를 구성해 1년10개월 동안 선정 기준을 정하고 빈터 6만여 곳을 조사해 후보지 5곳을 추렸다. 입지선정위에서 후보지 5곳 가운데 상암동 부지가 94.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부지로부터 △ 300m 내에 주거 세대가 없고 △이미 750t 규모 소각장이 들어서 있어 도시계획변경이 필요 없는데다 △시유지라서 토지 취득 비용이 들지 않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3년 1월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동양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서울시 ‘광역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뉴타운인 ‘덕은지구’ 입주민 배우리씨가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배씨는 이 설명회 유일한 반대 주민이었다. 그는 “원래 1월17일 오후 2시 고양시민방위교육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많은 주민이 회사에 연차를 내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서울시가 엿새 전에 날짜를 일방적으로 공지하고 장소도 덕은동에서 차로 30분, 버스로 1시간 30분 넘게 떨어진 곳으로 정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2월21일 주민설명회를 다시 열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3년 1월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동양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서울시 ‘광역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뉴타운인 ‘덕은지구’ 입주민 배우리씨가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배씨는 이 설명회 유일한 반대 주민이었다. 그는 “원래 1월17일 오후 2시 고양시민방위교육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많은 주민이 회사에 연차를 내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서울시가 엿새 전에 날짜를 일방적으로 공지하고 장소도 덕은동에서 차로 30분, 버스로 1시간 30분 넘게 떨어진 곳으로 정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2월21일 주민설명회를 다시 열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마포구민은 없는 입지선정위

새로운 소각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상암동과 대덕동 주민들도 동의한다. “소각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데 상암동은 이미 매일 서울 쓰레기 750t을 태우고 있잖아요. 1천t짜리 소각장이 더 필요하면 기존에 소각장이 없는 지역에 짓는 게 상식이고 공정한 것 아닌가요? 쓰레기 버린 사람들이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지자는 건데, 서울시나 언론은 이걸 ‘님비’(지역이기주의)라고 하 네요.” 1월18일 설명회에서 만난 대덕동 주민 배우리씨의 말이다.

서울시는 설명회뿐만 아니라 입지선정 과정에서도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 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제9조)은 주민대표가 참여한 입지선정 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는 입지선정위원 10명 가운데 3명을 주민대표 몫으로 서울시의회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환경전문가, 폐기물업계 관계자 등이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주민 의견을 더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울시 입지선정위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입지 후보지가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나는 입지선정 초기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021년 3월 제4차 회의)고 지적했지만 이 의견은 실제 반영되지 않았다. 상암동 부지가 후보지로 유력해진 시점은 2022년 6월께였지만, 선정위원 가운데 마포구민은 한 명도 없었다.

김권기 서울시 자원회수시설추진단장은 “서울시 내부에 서도 주민대표가 참여하지 않는 입지선정위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도 있다. 입법상 미비점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마포구가 선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꾸린 입지선정위에 마포구민을 참가시킬 수는 없어 서울시민이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선례가 있다. 2021년 전남 순천시가 소각장 입지선정 과정에서 ‘후보지 주민들이 주민대표 선정을 포기·거부할 경우 입지선정위에 주민대표를 포함하지 않아도 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한 바 있다. 이에 법제처는 “입지선정위의 가장 본질적인 사항은 주민대표의 참여”라며 “반드시 주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개입을 꺼리는 모양새다.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 관계자는 “주민대표 포함 여부에 논란이 있는 건 파악하고 있지만, 서울시와 주민 중 누가 맞다고 확답하긴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소각장·하수종말처리장 있는 곳에, 혐오시설 몰빵

마포구민인 구은경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상임이사는 “상암동에 하루 1750t(기존 750t+신규 1천t)짜리 소각장을 세운다는 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밖(서울 외곽)으로 쓰레기를 치워버리겠다는 것”이라며 “입지선정위가 상암동 한 곳을 후보지로 발표해 사실상 부지를 확정해놓고는 주민들이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하면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서 못 만난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게 말장난으로 느껴지고 불통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최승규 덕은지구 주민대책위원회 부의장은 “무엇보다 서울시가 주민 동의를 구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둘러서, 그것도 밀실에서 소각장을 설치하려 한다는 점에 가장 많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상암동에 기존 소각장이 있고, 바로 옆 대덕동엔 서울시 하수종말처리장(물재생센터)이 있는데 또 소각장을 짓는다고 뚝딱 발표해, 서울 쓰레기의 절반 이상을 이쪽으로 끌고 오겠다고 한다. 어떻게 한 지역에만 혐오 시설을 ‘몰빵’(집중 설치)하고 행복추구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나. 분리배출을 더 철저히 하도록 하거나 쓰레기 처리비를 대폭 인상해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이는 등 다른 방식을 시도해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매립지의 직매립 금지는 2021년 7월 법으로 결정됐지만, 직매립 금지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논의된 것은 2015년 6월 서울시장·인천시장·경기도지사·환경부장관 4자 협의체에서다. 7년 넘도록 오랫동안 전·현직 서울시장·구청장들이 소각장 설치라는 ‘불편한 문제’를 회피했던 것이 지금 서울시가 보이는 ‘무리한 속도전’의 원인인 셈이다. 박옥희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서울시는 최소한의 숙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찬성할 주민이 아무도 없더라도 숙의 과정을 통해 부딪치고 완화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며 “오래전부터 최소한 구청장들이 참여해 쓰레기소각장 설치라는 문제를 주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해야 했지만, 결국 아무런 노력 없이 찬성·반대라는 양자택일 상황에 놓이게 됐고 다들 ‘우리 구는 절대 안 돼’ 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입지선정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입지선정위 후보지 발표가 ‘서류심사’라면, 이후 공론화 과정을 통한 입지 최종 결정은 ‘면접심사’와 같은 것”이라며 “단수 후보지 발표는 ‘서류심사’로만 시험을 끝낸다는 것이다. 입지선정위 내부에서도 ‘단독 후보지 발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로 1~2위의 점수 차가 별로 안 난다. 결국 상암동 이외의 다른 선택 가능성이 차단됐고 사업 속도는 빨라졌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권기 서울시 단장은 “입지선정위는 독립적으로 운영돼 서울시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상암동 주민 형사·행정 소송 준비 중

이렇게 빠른 속도로 쓰레기소각장을 세우면, 골치 아픈 쓰레기 문제는 모두 해결될까. 신우용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사실 수도권 매립지 문제로 ‘쓰레기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라는 점에 서울시민의 관심도 많고 수용성도 높다. 이번 소각장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쓰레기 총량을 어떻게 줄일지와 연결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는데, 서울시가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다. 각종 인센티브·페널티를 포함해 쓰레기를 줄이는 모든 수단을 실험해야 하는데 ‘소각장 설치는 폭탄 돌리기인데 밀어붙이는 것 말고 달리 뭘 하느냐’는 식으로 관성적 정책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환경연구원이 진행한 ‘2021년 국민환경의식조사’(19살 이상 국민 5050명 대상)를 보면 우리 국민 65.7%는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쓰레기·폐기물 처리 문제’를 꼽았다. 대 기오염(51.0%), 기후변화(39.8%)보다 높았다.

박용신 ‘지속가능성센터 지우’ 정책위원장은 “서울시는 소각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지을지’ 그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라며 “서울시의 이번 소각장 추진 과정을 보면 전문적, 법적으로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과 비슷한 상황인 인천의 경우 광역 소각장을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구청장들과 정책협약식을 체결(2021년 7월)해 공동연구 작업을 통한 결과를 수용하기로 합의했고 입지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그런 기본적인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다. 주민 수용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고 오히려 소각장 설치가 더 늦춰져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상암동 주민 모임인 ‘마포 소각장 추가 백지화 투쟁본부’는 서울시를 상대로 형사·행정 소송을 준비하면서 소송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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