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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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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km, 가도 가도 상처뿐이더라

등록 2004-05-20 00:00 수정 2020-05-03 04:23

‘백두대간 보호법’ 집행 앞두고 나선 ‘녹색순례’… 도로와 광산이 남긴 상처부터 치유해야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가도 가도 상처뿐인 백두대간을 순례했다. 매향리 사격장을 대신해 기존 태백산 사격장에 미군 훈련도 실시된다는데….


태백= 글 · 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내년이면 우리나라의 국토관리 행정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내년 1월부터 집행되기 때문이다. 국토의 척추에 해당하는, 670km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 전체가 실제 ‘백두대간 보전’ 차원에서 관리되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백두대간 훼손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열흘 일정의 ‘백두대간 녹색순례’ 길에 올랐다. 우리나라 환경 문제의 핵심 지역을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전 구간을 걸어서 답사하는 대장정길이다. 순례단은 지난 5월12일 미군 폭격장 이전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태백산을 출발했다. 대장정은 21일 설악산 정상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백두대간은 현재 각종 개발사업 때문에 국민들이 알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로 훼손되고 있다. 과거부터 해오던 사업들이 계속 진행 중이고, 최근에 착수한 사업도 여럿 있다. 뿐만 아니라 착공을 기다리는 사업도 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건설사업, 강릉 345 송전탑 건설, 폐광지역 특별법에 따른 대규모 스키장·골프장 사업, 평창 도암면 삼양목장 일대의 대규모 리조트 건설 같은 대규모 환경파괴가 불가피한 국책사업과 국가지원 사업이 줄을 잇고 있다.

자병산 정상을 잡아먹은 라파즈 광산

순례단이 출정을 시작한 태백산은 미군 폭격장 문제로 시끄러운 곳이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부터 남쪽 지역 전체에 우리 공군의 사격장이 들어서 있는데, 매향리 미군 사격장 폐쇄 방침에 따라 이곳이 대체 사격장으로 지목되고 있다. 순례단은 지난 5월12일 개최된 미군 폭격장 이전 반대 집회에 참석한 뒤 백두대간 자락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뙤약볕과 보슬비가 교차하는 날씨 속에 순례단이 마주한 백두대간의 첫 ‘상처’는 석회석 광산이었다. 삼척과 동해의 경계인 두타산 자락 저시고개에 있는 쌍용자원개발의 석회광산에 도착하니 대규모 산림훼손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고갯마루에서 아래쪽으로 뻗은 사면 전체가 시멘트를 만들기 위한 석회석 광산으로 파헤쳐지고 있었다. 북쪽의 맞은편 능선도 산 전체가 마치 뼈를 드러낸 듯했다. 5km가량 떨어진 거리지만 워낙 훼손 면적이 넓어 한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순례단이 정상에 도착했을 무렵,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 뒤 폭파작업이 진행됐다. 산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자 우리가 서 있는 산줄기에도 큰 울림이 전해왔다.

백두대간 훼손 지역 중 가장 손꼽히는 현장이 광산이다. ‘산업자원 공급’이라는 목적을 앞세우고 여러 기업들이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백두대간 자락으로 몰려들었다. 그 대표적인 게 석회석 광산, 채석광산, 금속광산, 석탄광산 들이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석회석 광산이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곳이 ‘라파즈 시멘트사’의 동해시 자병산 석회광산이다. 순례단이 쌍용 광산을 넘어 자병산 맞은편 백두대간의 언덕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재 자병산을 중심으로 동해안으로 길게 뻗어 내려가며 파헤쳐진 라파즈 광산은 둘레의 어떤 봉우리에 올라가더라도 카메라에 한 장면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오직 항공촬영을 해야만 전체 지역이 다 잡힐 정도로 넓은 지역을 훼손했다.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사가 국내 으뜸의 석회암 식물의 보고인 자병산 정상을 모두 잘라냈다. 백리향, 솔나리, 한계령풀, 가는대나물 같은 백두대간의 어느 산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의 터전이었던 자병산 정상부가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백두대간 자락을 지난 20년간이나 파헤쳐온 이 광산은 최근에도 백두대간의 중심지역에 추가 개발을 신청해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지질조사도 없이 만든 위험한 도로들

이 개발에 적극 나선 라파즈사는 허가를 얻을 때는 훼손지에 대한 복원을 제대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허가 이후에는 복원에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라파즈사는 전 세계 광산을 80개나 보유하고 있는 큰 시멘트 회사다. 과연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파헤치기만 하고 복원은 하지 않는지 라파즈사에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금속광산 역시 규모는 석회광산에 비해 적지만 오염 정도는 만만치 않다. 태백산 자락인 경북 봉화 춘양면 일대의 금정광산과 강원도 영월 상동읍 일대의 중석광산, 삼척시 가곡면의 연화광산 같은 곳은 심각한 수준이다. 금속광산은 채굴이 끝났지만 과거 광산개발 당시 캐낸 광물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광산 폐기물(광미)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생태계가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 광미를 대충대충 덮어놓는 바람에 수해가 나면서 터져나와 하천을 오염시켰다. 광미는 대부분 중금속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하천과 지하수를 죽음의 물로 만들어버린다. 전량을 수거해 특수 폐기물 처리 기준에 입각해 처리하지 않으면 생태계에 큰 위협을 준다.

백두대간의 광산개발이 주로 ‘과거형’이었다면 도로는 ‘현재형’이나 ‘미래형’이다. 순례단이 태백산에서 출발해 태백~삼척을 잇는 댓재를 넘어 동해~정선간 국도를 따라 백봉령을 넘고, 다시 정선~강릉간 국도를 따라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도로공사를 목격할 수 있었다. 태백산도립공원의 허파인 태백시 혈동 당골 광장 입구에도 기존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로 40년가량 된 소나무가 무참히 베어지고 있었다. 또 태백산 도립공원에서 태백 시내로 들어가는 국도변에서도 6차선 확장공사를 위해 50m가 넘는 산자락이 절개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고개 중 하나였던 건의령은 태택시 창죽동~삼척시 도계 사이를 오가는 지방도로 건설을 위해 근처 숲을 뭉텅이로 잘라내고 있었다. 동해시도 마찬가지였다. 청옥~두타산 아래의 무릉계곡 입구인 동해시 삼화동 일대에도 백두대간에서 내려오는 계곡 둘레를 훼손하면서 기존 2차선 도로에서 4차선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현장은 동해시 삼화동~정선 임계면으로 이어지는 국도의 4차선 확장공사다. 동해시 삼화동 입구에서 달방동쪽으로 이어지는 이 공사의 문제는 심각한 산림파괴형 도로라는 점이다. 30m 절개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마구잡이로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있었다. 건교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태풍 루사나 매미의 교훈은 잊은 듯 겁 없이 산을 파헤치고 갈아엎어 버렸다. 큰 비가 오면 얼마든지 무너질 듯한 곳에 지질조사나 안전대책도 없이 마구잡이로 땅을 절단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에 큰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이 바로 도로공사다. 전체 670km 구간에 70개 이상의 도로가 개설돼 평균 8km마다 한개씩 도로가 나 있다. 이러다보니 호랑이나 표범은 물론 곰이나 여우, 늑대, 사향노루, 산양 같은 야생동물들이 멸종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동물들은 적어도 반경 20km 이상의 서식지가 보장돼야 생존과 번식이 가능한데, 보금자리가 없어지니까 멸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교부는 이렇게 해놓은 뒤 생색내기로 백두대간 10개소에 야생동물 생태통로를 설치했다. 그나마 면피용으로 설치한 생태통로도 동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예산만 수백억원 낭비하고 말았다. 도로가 동물들을 비롯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밀한 검토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도로 중 특히 심각한 것은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다. 홍천부터 인제를 거쳐 양양으로 가는 이 노선은 상당한 산림훼손과 생태파괴가 불가피하다. 특히 인제군 기린면~양양군 서면 구간은 내린천 최상류 지역인 진동계곡과 점봉산을 절단하는 무시무시한 공사다.

야생동물 서식지 없으니 멸종 당연해

백두대간보호법은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던 백두대간의 보전과 관리를 법과 제도, 예산과 조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뤄져야 할 일은 상처받은 백두대간을 치유하는 작업이다. 각종 난개발로 훼손된 백두대간의 ‘상처’를 자연 생태계의 질서가 유지되는 건강한 곳으로 되살리는 일은 파괴를 시작한 우리 세대에서 꼭 해결해야 하는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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