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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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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은 크리스마스다

한가위 퀴즈큰잔치에 당도한 300여 통의 응모엽서…

21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순간, 고맙습니다
등록 2018-11-06 10:33 수정 2020-05-02 19:29

“아, 이건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 같아. 찻잔은 사물이자 공간인데 크리스마스는 시간이자 기념일 아닌가. 평범한 사물 속에 특별한 시간을 담는 것, 지금의 한정된 공간 속에 지금이 아닌 특별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 언제 어디서나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생의 축복을 발견하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제1231호 정여울의 마흔에 관하여 ‘감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 독자인 박홍인(22)씨는 한가위 퀴즈큰잔치 응모엽서에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인용해 “항상 정형화된 수능 비문학 지문만 보다가 을 보는 일주일에 단 한 번이 나에게는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유일한 낙이다”라는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300여 통의 엽서에 꾹꾹 눌러쓴 손글씨를 따라가며 이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설레기도 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꾹꾹 눌러쓴 손글씨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분들이 엽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먼저 이 가족 간 화합과 갈등(?)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웃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거실, 부엌, 심지어 화장실에도 이 놓여 있어 자연스럽게 엄마와 함께 독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엄마랑 책상에 나란히 앉아 십자말풀이 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을 구독하며 가장 달라진 점은 가족 간에 ‘사회에 대한 대화’가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보수적인 경상도 아저씨인 아버지와 을 함께 읽고 싶어요. 한가위 퀴즈큰잔치로 아버지를 유혹해보려 추석 때 챙겨 갔는데… 응모엽서가 두꺼워 좋다고 조카 비행기 접어주기만 하시고. ㅠㅠ 아버지 같은 분들이 편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기사 없을까요?”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일상을 일구고 계신 독자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보며 자세를 고쳐 앉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 취재와 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2018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가 엽서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취재와 보도를 할 때 꼭 염두에 두겠습니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은 서울만 대한민국. 서울이 아닌 지방의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백세 시대. 노년 이후의 삶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의미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어주었으면 합니다.”

“자영업의 불행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양산과 그로 인한 신계층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에 대한 연구와 담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달라.”

“법에 따라 장애 영아는 무상교육, 장애 유아는 의무교육 대상으로 법제화됐으나 실제로는 소외되고 방치된 장애 영·유아가 너무 많습니다.”

독자에게 21이란

애정 어린 쓴소리와 질책을 보면서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지적하신 내용은 구성원들 모두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표지이야기·특집 등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기사에는 간단명료한 설명과 쉽게 이해되는 자료 제공 등으로 독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와달라”와 같이 더 친절한 잡지가 돼달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주장은 많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다. 대안도 함께 제시해달라”고 문제 제기에만 그치지 않는 언론이 돼달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쪽의 논리를 지나치게 정당화하는 것 같다”며 균형 잡힌 시각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친절하고 균형 잡힌 태도와 시각을 주문하면서도 이 잃지 말아야 할 ‘한 가지’에 대해서는 독자분들이 한목소리를 내셨습니다. 바로 약자, 소수자, ‘을’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의 존립 이유가 약자와 소수자의 대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류 사회가 조명하지 않는 문제를 취재해주세요.”

“노동·성소수자·장애인·외국인노동자 등 이 없었다면 둔감하게 지나쳤을 문제들에 감수성을 키워갑니다.”

“제가 정기구독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여성·노동자·난민·성소수자·장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예요.”

우리 사회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자분이 많아서일까요. 가장 인상 깊게 본 기사로 제1230호 표지이야기 ‘슬픈 돼지의 경고’를 많이 꼽아주셨습니다.

“뽀얗고 토실토실한 돼지가 똥을 뒤집어쓰고 슬픈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우리가 잘 모르던 현실을 보여준 김현대 기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날치기 의혹을 제기한 보도 역시 인상적인 기사로 꼽는 분이 많았습니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원생 독자는 “언젠가 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에서 해줘 고마운 한편, 그동안 ‘을’로서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부끄러웠다.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취재 부탁드린다”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이 밖에 ‘계엄은 실화다’(제1225호 표지이야기), ‘#난민과함께’(기획연재) 등에도 긍정적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엽서에 그림 실력을 뽐내주신 분, 꽃잎 말려 붙여서 보내주신 분,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온 가족이 각각 응모해주시는 등 뜨거운 애정을 전하신 분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300여 통의 엽서에 담긴 독자분의 애정과 질책을 받은 의 마음을 시 한 구절로 대신해 표현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다음호도 독자분들의 일상에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긍정적인 밥’, 함민복)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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