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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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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894호를 다룬 23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모임, 날은 세우고 시야는 다각화하고 사안을 추적하는 집요함은 지속해달라는 주문
등록 2012-02-10 14:51 수정 2020-05-03 04:26

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치기 하루 전이었다. 1월30일 월요일 저녁 7시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는 달뜨고 어색한 분위기가 공존했다. 6개월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23기 독자편집위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이라는 단 하나의 단서를 공통점 삼아 이들은 서서히 뭉쳤다. 밖은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회의실은 열기로 가득 찼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조원영 위원은 “원래 회의실이 이렇게 더우냐”고 물었다. 3시간 내내 ‘당근과 채찍’을 쏟아낸 위원들은 발그레해진 볼을 신문사 앞 호프집에서 맥주로 식히며 뒤풀이를 이어갔다. 이날 우리는 890~894호 총 5권을 리뷰했다.

<한겨레21> 23기 독자편집위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23기 독자편집위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먹거리 양극화? 급식의 양극화도!”

사회 반갑다. 890호부터 순차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김자경 ‘한국의 보수는 왜 후졌나?’라는 카피와 함께 표지를 봤을 때 궁금증이 일었다. 정작 내용은 ‘보수=한나라당’으로만 간 듯하다. 보수주의의 뿌리는 어디서 비롯했는지 등 보수의 역사와 구조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길 기대했는데….

장슬기 ‘결국 한나라당이 민심을 따라가지 못했다’라는 결론도 힘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권채원 초점 ‘법정은 왜 녹음·촬영 금지 구역이 되었나’에서는 상세한 대안을 얻고 싶었는데, 현상만 보여준 듯하다.

임성빈 특집1 ‘밥상의 양극화가 위험하다’가 좋았다. 두 가정의 밥상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어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조원영 재미있게 읽었다. 한쪽에서는 친환경도 모자라 로하스다 뭐다 하는데, 먹거리 약자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김자경 교사다 보니 읽으며 학교 급식과 엮어 생각하게 되더라. 급식 식단도 학교별로 수준차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학교 급식 양극화’를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정주 특집2 ‘현대차 성공신화를 톺아보다’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제목을 보고 ‘기업 기사네. 비판을 하겠지?’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칭찬할 건 칭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겠지만.

장슬기 이슈추적 ‘진보의병과 옛 관군, 힘 합칠 것’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너무 좋은 얘기뿐이었다. 진보 진영 내부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을 텐데. 요즘 인터뷰 기사가 전반적으로 질문이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밀도 있게 한 사안에 대해 파고드는, 피하고 싶어 하는 질문을 찔러서 물어보는 기사를 원한다.

임성빈 891호 표지이야기 ‘경찰의 거짓말 릴레이를 좇아가다’가 좋았다. 하나하나 반박하는데, 그 집요함이 돋보였다.

김자경 선관위 디도스 공격 관련 검찰 발표가 있고 나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에서 계속 후속 보도를 했던 점도 좋다.

권채원 ‘올해의 판결’ 기사를 매년 기대하며 본다. 최고의 판결보다 최악의 판결이 많았던 현실이 씁쓸하다.

임성빈 낱낱의 기사에 붙은 제목들이 좋았다. 특히 ‘차벽 세운 벽창호들 보고 있나’가 와닿았다.

사회 아, 그건 내가 단 제목이 아닌데!

권채원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지요?’도 와닿았다.

사회 그건 내가 편집한 거다. (일동 웃음)

권채원 권두 칼럼 ‘만리재에서’는 조영래 변호사 이야기와 ‘올해의 판결’ 특집을 엮어 썼는데, 감동적이었다.

임성빈 레드 기획 ‘살아 있는 집에 살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요즘 주거 욕구가 다양해지고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오가는데, 시의적절했다.

‘보여주는 기사’가 좋다

사회 송년호인 892호로 넘어가보자. 두 달 동안 ‘올해의 인물’을 준비해왔는데, 제작하는 주 월요일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편집진에게는 기대와 아쉬움과 황망함이 교차한 호였다.

임성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다룬 표지이야기에서 ‘김정일 시대’를 압축적으로 정리해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겠다. 그런 면에서 ‘1994년과 다른 2011년’은 인상적이었다.

조원영 ‘북한의 오래된 미래, 타이?’를 보며 상황이 잘 이해됐다. 여러 매체에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김정은 체제가 민심을 얻어 안정돼야 한반도 평화가 지켜지는 세습의 역설’이란 내용이 눈에 띄었다.

이정주 갑자기 터진 사건이었다. 각 언론사의 능력이 판별되는 순간이었다. 일간지들도 북한 문제를 계속 헤드라인으로 다뤘는데, 일목요연하게 그래픽화해서 보여주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도 좀더 시각화한 기사를 다뤄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정일 사망 이후 국내 경제 문제를 다룬 기사가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권채원 ‘올해의 인물’ 기획에서는 3부 ‘망각에 반대하여’가 좋았다. 그런데 김진숙·안철수·박원순이란 ‘올해의 인물’ 후보들, 너무 ‘우리 편 띄워주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임성빈 가까운 지인들이 인물들의 추천사를 쓴 점이 좋았다. 거리감 없이 느껴졌다.

조원영 오랜 기간 준비한 기획이라는 게 보는 사람에게 느껴질 정도로 성의 있었다.

김자경 인물열전에서 일러스트가 너무 웃겼다. 특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윤재 전 피죤 회장의 캐리커처는 절묘했다.

사회 를 두고 출판사를 회유·협박한 사건을 다룬 893호로 넘어가보자.

일동 표지 이미지가 대박!

조원영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사람들이 히스테릭해지는 것 같다. 내 세금이 어디에서 또 잘못 쓰이고 있을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사업들이 답답하다.

장슬기 권양숙씨는 소리소문 없이 도서관을 짓지 않았나. 두 대통령 부인의 ‘치적’이 비교된다.

김자경 김성윤의 18 세상 ‘청소년 알바 권하는 사회’가 재미있었다. 평소에도 즐겨 읽는 칼럼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볼 때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들이 있는데, 많이 배운다.

이정주 S라인 ‘그럼에도 그들은 춤을 추었다’도 좋았다. 스포츠 기사를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의 2면짜리 스포츠 칼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회 이참에 고정 칼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김자경 최근 시작한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는 나의 기대작이다.

임성빈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이 오래 이어지면 좋겠다. ‘X기자의 주객전도’도 재미있다. 진지한 기사들 가운데 숨 돌릴 틈을 준다.

김자경 기획연재 ‘사람꽃을 만나다’가 참 좋았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 연재가 좀더 이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정주 맛집 소개 칼럼이 생겼으면 한다.

사회 ‘X기자의 주객전도’가 그런 칼럼이다. 주객(酒客)이 맛집을 전도(傳導)하는….

이정주 그랬나. ‘와잎’과의 에피소드가 너무 웃겨서 미처 몰랐다. (웃음)

임성빈 건강면 등 실생활과 밀접한 칼럼도 개설되면 좋겠다.

성매매 청소년에 대한 편견 깬 특집

김자경 894호 표지이야기 ‘안보전위대, 대선 향해 돌격!’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국내 주요 보수 관련 단체나 이들의 영향력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래픽을 통해 안보산업의 흐름을 보여준 것도 이해가 쉬웠다.

사회 꾸준히 국내 성매매 문제를 다룬 특집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는 894호에서 ‘청소년 성매매’를 다뤘다.

조원영 인터뷰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흔히 성매매 청소년에게 ‘쟤는 안 되는 애구나’ 하는 식의 시선을 던지는데, 사실은 상처가 너무 깊어 돌파할 구멍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줬다.

장슬기 케이팝을 다룬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는 기다려온 기사라고 할까. 우리나라 음반시장이 포화상태라 외국에 나갈 수밖에 없는데, 아이돌 띄워주기에만 급급한 언론들의 모습이 답답했다. 이런 비판적 분석도 필요하다.

권채원 이슈추적2 ‘새해 첫날 거리로 내몰리다’에서 1월1일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꼼꼼한 사안 추적이 돋보였다.

임성빈 2012 만인보 ‘최고는 없고 최선은 있다’는 평소 만인보 기사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 이야기에 좀더 집중했더라면 좋았겠다.

조원영 직장인으로서 레드 기획 ‘슈퍼을들이 사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드라마와 공연 소개 이상의 큰 주제의식이 와닿지 않아서 아쉬웠다. 문화 ‘에드워드 권의 자격을 묻다’를 읽으면서는 당사자는 물론 미디어의 잘못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는 잘못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3기 독자편집위원회를 시작하며따뜻하고 생산적인 비판 기대하시라

권채원(24·학생)

첫 회의 뒤 깨달았습니다. 제가 에 쓴소리를 하기에 적격인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애정이 과해서 그렇다고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겠고, 전 그냥 처음부터 오랜 응원을 전하고 싶어 지원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사람 잘못 뽑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실험적인 매체가 주목받는 분위기 속에서, 만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정립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고도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따뜻하고도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데 몰두하겠습니다.


임성빈(36·프리랜서 번역가)

처음 독자편집위원을 신청한 이유는 내 삶을 좀더 확장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늘 만나던 사람들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좀더 사회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지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편집위원이 돼서 모임을 한 번 해보니 과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웬걸,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긴장감이 부족하고 치열한 고민 같은 것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나는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해야겠다.’ 오른쪽에서 태클을 거는 까칠한 사람이 되어 활력을 불어넣겠습니다.


조원영(29·회사원)

조심스럽습니다. 무기력한 회의주의자라며 오랫동안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어요. 꾸준히 을 읽어온 의식 있는 독자분들을 대표하기엔 제 식견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나를 찾아왔다 하시는 독자분들도 있을 거고, 한창 세상 공부 중인 새내기 독자분들도 분명 있지 않겠어요? 어리숙한 독자편집위원 한 명쯤 있어도 좋을 거라고 감히 주장하렵니다. (다양성 만세!) 부족한 만큼 열심히 읽고 배우고 논하겠습니다.



이정주(29·취업준비생)

드디어 ‘눈팅’만 해오던 독자편집위원회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놀랐습니다. 첫째 소수정예라는 점, 둘째 소수정예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 독편위는 수많은 독자들을 대변하는 일종의 대의제 기능을 하겠지요. 기자들이 독편위의 ‘눈치’를 많이 본다던 편집장님의 말씀에 책임감이 더해집니다. ‘열심히’보다는 ‘잘’하겠습니다. 늘 해온 대로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월요일 아침, 가판에서 을 집어들던 그 느낌을 잃지 않겠습니다.


장슬기(25·학생)

7년 정도 을 구독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있어야 할 현실’과 ‘소외된 가치’들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어떤 기사가 나와도 비판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감싸게 됩니다. 그동안의 정 때문인지, 제가 에 동화되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독편위 기간에는 그런 모습을 버리고자 합니다. 평소보다 좀더 꼼꼼히 읽고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뜨거워질 6개월을 기대해봅니다.



김자경(28·교사)

표현의 자유가,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동안 바른말 열심히 하며 분투해온 에 애독자로서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쁩니다. 혼자 읽으며 분노하고 낄낄거렸던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설레네요. 애정을 듬뿍 담아 매의 눈으로 열심히 읽고 열과 성으로 토론하며 저도, 도 더 건강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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