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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지도를 선거 안내 책자로”

20기 독편위 첫 모임에서 쏟아진 당근과 채찍… 노무현 특집 “감정 과잉” vs “한 권의 수필집 느낌”
등록 2010-06-11 15:15 수정 2020-05-03 04:26

6월1일 20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모임이 열렸다. 저녁 6시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조금 늦게 합류한 박지숙 위원만 빼고는 모두 일찍 도착했다. 이연경·김대훈 위원은 일찍 도착했지만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사무실 언저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부산에서 출발한 김대훈 위원은 가장 빨리, 오후 5시에 도착해 이날 새로 문을 연 사내 카페 ‘짬’에서 1시간30분의 긴 ‘짬’을 즐기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알아봤지만 알은 체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이들은 6시30분,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뭉쳤다. 회의가 시작되자 언제 모르는 이들이었느냐는 듯 많은 말을 쏟아냈다. 20기 독자편집위원 7명은 807~811호 5권의 을 표지이야기부터 크고 작은 칼럼까지, 그야말로 탈탈 털어가며 뜨겁게 이야기했다. 마칠 무렵에는 모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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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개의 5·18을 다뤘다면

사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n개의 노무현’이 실린 811호부터 돌이켜보자.

변인숙: 한권의 수필집 같았다. n개라는 무한정의 숫자를 두고 얘기한 점이 좋았다. 그 n 중에는 ‘내 얘기’라고 할 만한 것도 있어 나의 경험과 생각을 대입해봤다.

김대훈: 나는 표지부터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시의성을 고려한 점은 좋았지만 표지 디자인도 서거 당시와 비슷하고 ‘‘노풍’으로 몰고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연경: 나는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 같은 사람 처지에서는 분량이 부담스러웠다. 일부 독자에게 이런 구성은 불친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정다운: 시적이고 사적인 느낌이라 좋았다. 편지글 모음집 같은 형태는 처음에는 조금 거북했는데 읽다 보니 공감됐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분량이 낫지 않았나 한다.

김대훈: 다른 의견을 들어도 나는 여전히 811호가 시사지인지 헷갈린다. 절제된 감정으로 그의 공과를 분석했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김 독편위원이 말하는 중에 박용현 편집장이 회의실에 들어와 인사를 했다. 편집장이 나간 뒤 다시 신랄하게) ‘만리재에서’까지 2쪽이라니! 이거 감정의 과잉 아닌가? 노 전 대통령 추모 표지이야기 때문에 5·18 관련 기사도 죽은 느낌이다.

정다운: 5·18과 노 전 대통령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5·18이라는 주제가 죽은 건 아니라고 본다.

변인숙: ‘n개의 노무현’과 같은 편집으로 5·18을 다뤘다면 어땠을까. 5·18이 나열된 n 중 하나로 읽혔다면?

정다운: 동의한다. 5·18과 민주정권의 연계성을 이야기해줬다면 좋았겠다.

전우진: 이슈추적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은 어땠나? 내가 엔지니어여서인지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훈: 여러 곳을 향해 귀를 열어둬야겠지만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실제 작업 환경에 있는 사람들 얘기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정다운: 삼성이 ‘기밀’ 운운하며 ‘환경수첩’을 회사 밖에 유출하지 못하게 하거나 반도체 공장 라인을 공개할 때 노후 시설을 보여주지 않는 등 100% 밝히지 않는 점만으로도 삼성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김경민: 810호에서는 지방선거 특집으로 다룬 표지이야기 ‘전국 지자체 비리와 거짓말’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친절했다. 선거 안내 책자로 써도 좋았겠다.

정다운: 모든 당을 통틀어 객관적 정보를 보여줘 어떤 후보를 찍을지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김대훈: 나는 너무 빡빡한 느낌이 들었다. 좀더 직관적으로 정보를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은 없었을까?

변인숙: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투표하는 거니까 다양한 정보를 다뤘던 건 좋았다. 나도 1부 기사를 읽을 때 도표를 보며 도움을 얻는 동시에 조금 지쳤다. 중간중간 사람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면 덜 지루했을 것이다.

이연경: 부재자투표 등 선거 관련 용어도 다뤄줬다면 좋았겠다. 사람들이 선거와 관련한 용어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 그 방식이 어떤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난 선거 당일 투표를 못할 것 같아 부재자투표를 신청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왜 다른 지역에 살지도 않으면서 부재자투표를 하느냐고 했다. 부재자투표는 그 지역에 부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일 자신의 선거구에 부재하는 사람을 위한 건데.

김대훈: 레드 기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한국의 동성애 문화를 깨고 보여줬다는 것,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다는 점을 다뤄 좋았다.

김경민: 특집 ‘경쟁, 이 악다구니의 끝은 어디인가’를 읽으면서는 좀 답답했다. 한국의 고등학생으로 사는 나는 가장 극심한 경쟁의 시간에 놓여 있다. 그런데 대중문화는 성공한 아이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정다운: 노르웨이의 교육 방식을 보고 부러웠다.

김대훈: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와 너무 다르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와닿지 않는다. 비교 대상을 잘못 고른 것 같다. 복지 선진국 북유럽 국가라는 샘플에서 좀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전우진: 교육 경쟁을 말할 때 왜 일본 얘기는 나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와 흡사한 일본 교육제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비교할 수 있는 샘플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4대강 가보라기에 가봤다
제20기 독자편집위원회

제20기 독자편집위원회

사회: 4대강 사업을 다룬 809호는 어땠나.

정다운: 너무 감성적이지 않았나. 경제적 측면도 다뤘으면 어땠을까.

이연경: 사실 4대강 기사는 너무 많이 봐서 읽기도 지친다. 색다른 관점과 형식으로 4대강을 다뤄보는 건 어떨까.

김경민: 나는 표지이야기에서 4대강에 가보라고 해서 정말 가봤다. 파헤쳐진 모습을 보니 토할 것 같더라.

김대훈: 목민관 열전 연재는 어떤가? 난 정말 재미없다. 과거의 선한 행동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지루한 생각 같다.

정다운: 온고지신이다. 옛것을 돌이켜 현재를 배우려는 태도의 기사라 마음에 든다.

전우진: 구제역과 냉해가 동시에 몰아닥친 강화도를 다룬 특집2 ‘소가 죽었다, 봄이 죽었다’가 인상 깊었다. 구제역으로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다뤘다.

이연경: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기사에서 말하는 ‘실질적 보상’이 어떤 형태인지 궁금했다.

정다운: 나는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중앙대 사태, 기업사회의 묵시록’을 흥미롭게 읽었다. 기업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대학은 리더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리더의 시녀를 낳는 곳이 됐다.

박지숙: 중앙대 사태 기사와 특집1 ‘대-중소기업 입사자 토익점수 차이 130점’은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집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의 맥은 이해했지만 한편으론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기사에 나온 대기업 취업자의 스펙에 맞춰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관성이 없었다.

김대훈: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시대로 변화해야 한다”는 LG경제연구소 이춘근 수석연구위원의 말로 기사를 끝맺음했는데, ‘창의성’이라는 대안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지숙: 기존에 요구된 스펙에 더해 창의성과 도전정신까지 있는 인재를 원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연경: 기사에서 지방대생이 부딪히는 벽도 다뤘는데, 사실 지방대생이 느끼는 한계나 편견은 기사 내용 이상이다. 이를 면밀히 다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대훈: 808호 표지이야기 ‘받들어 시민’에서는 국방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정부 조직을 언급할 때 좀더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조직도 등을 그려주면 좋겠다.

박지숙: 분량 면에서는 어떤가. 표지이야기치고는 짧은 편이었던 것 같다. 앞부분에서 아카데믹하게 접근했는데, 이게 과연 우리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짚어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민주통제가 어렵다’라는 내용은 있는데, ‘왜’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앞부분이 학술적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뒤에 붙은 ‘이명박 대통령은 알고 있다?’ 기사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정다운: 무상급식을 다룬 특집 ‘모든 학생에게 밥 주면 얼치기 좌파?’가 흥미로웠다.

김대훈: 무상급식이 실질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정다운: 그 검증은 기사에서 다룬 경기 과천시 사례로 충분하지 않나.

전우진: 나는 ‘바꿔! 지방자치’ 연재가 재미있다. 808호에는 지역정치에 뛰어든 여성들을 다뤘는데, 젊은 남성 직장인 등 다른 영역의 사람들도 다루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역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포기하게 되더라.

박지숙: ‘바꿔! 지방자치’는 회를 거듭할수록 기사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 아쉬웠다. 처음에는 해외 사례와도 비교하는 등 기사 규모가 컸는데 나중에는 힘이 빠지는 듯했다.

무노조 삼성에 대한 고민

사회: 마지막으로 삼성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807호는 어땠나?

김경민: 노조가 활성화된 회사를 소개했다면 기사가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가 있는 회사의 합법적 경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겠다.

전우진: 삼성 내부에서 직원들이 실제로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는지 짚어볼 필요도 있다. 노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직원도 있지만 노조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는 직원도 있을 것이다.

변인숙: 나는 기사에 나온 인물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가 피해나 불이익을 더 당하지는 않았을까.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다룬 후속 기사가 있다면 좋겠다.

박지숙: 사람과 사회 ‘10대 정치, 엄숙함 벗고 발랄 진화 중’도 재미있었다. 사진도 기사와 잘 어울렸고.

변인숙: 10대 정치 모임에 가입하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더 알찼을 것이다.

정다운: 세계 ‘타이 정부가 붉은 벌집을 쑤셨다’는 우리의 민주화 과정을 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줬다.

김대훈: 다른 매체에서는 타이 사태를 잘 다루지 않고 다루더라도 타이 정부의 시선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던데, 에서는 타이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줘 좋았다. 나는 경제 ‘부자들만 아는 스마트폰의 비밀’도 재미있게 읽었다. 스마트폰의 좋은 점 이면에 놓인 그림자를 짚어줬다. 하지만 대안으로 제시된 ‘스마트폰을 국민 PC처럼 보급하자’는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까, 정경유착의 문제라든지.

이연경: 내 주변에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이폰 가입자가 지역이나 경제력의 차이에 따라 갈린다는 데 공감했다.

전우진: 스마트폰은 PC의 대체재라고 생각한다. 아직 과도기라 그렇겠지만 스마트폰을 PC만큼이나 활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스마트폰 소유 여부가 모바일 정보 격차를 결정한다는 얘기는 조금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의 격차가 느껴지지 않게 데이터 통신료를 낮추는 등의 대안은 어떨까.

20기 독자편집위원회를 시작하며

“마침표 하나까지 흘겨보겠다”

김경민: 부산 동성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기자가 꿈이며 은 재미있어서 본다. 20기 독자편집위원회 활동은 꿈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 같아 설렌다. 사랑하는 매체에 힘을 보탤 수 있게 열심히 활동하겠다.

김대훈: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해인 고3 때 선거를 흥미롭게 봤는데, 주변에 정치에 대해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을 보기 시작했다. 은 내게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잡지였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시대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목소리를 내는 잡지가 되도록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

박지숙: 을 본 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을 읽으면서 깨어 있는 시민이 돼가고 있다. 19기 독편위에 이어 20기에도 참여하게 돼 기분이 좋다. 삶의 활력소를 잃게 되어 아쉽다는 19기 마지막 소감을 안타깝게 여기고 뽑아준 것 같다.

변인숙: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오가며 신문과 방송 매체에서 일하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이론과 과정을 밟고 있다. 평균에 어긋나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을 즐거이 읽기만 했는데, 이제는 마침표 하나라도 날카롭게 흘겨보기 위해 눈을 좀더 가늘고 길게 뜨고, 애정보다는 애증의 시선으로 읽겠다.

이연경: 대전에서 왔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꿈은 세계 평화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자가 되고 싶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독편위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돼 기쁘다.

전우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했다. 시사·교양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은 교과서와 같다.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 더 재미있고 유익한 시사주간지가 될 수 있게 힘을 싣겠다.

정다운: 직업은 독서실 총무다.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이전 1년 동안은 서울 이태원 뒷골목에 살면서 양극화를 목도했다.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독편위원으로 뽑혀 윤기 없는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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