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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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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OTL, 온몸으로 쓴 기사 같더라”

한 달 동안 중노동 경험한 임인택·임지선 기자와 함께한 18기 마지막 회의…
‘DJ 서거’ 보도 놓고 격론 벌이기도
등록 2009-10-22 16:59 수정 2020-05-03 04:25

지난봄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장담과 함께 시작한 18기 독자편집위원회의 마지막 회의가 10월13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끝이 창대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들의 쓴소리가 여전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설 쓰는 시대, 레드 기획 등이 차례로 도마 위에 올랐고 아쉬웠던 대목들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회의에는 ‘노동 OTL’ 1·2부를 담당한 임인택·임지선 기자가 ‘소환’돼 애초 기획을 하게 된 계기, 취재 중 인간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솔직한 심정 등을 나눴다. 아쉬움과 함께 18기 독편위 ‘마지막 회의’를 마친 뒤 찾은 호프집에서는 “너무 빨리 세월이 흘러 아쉽다”는 말들이 나왔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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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서거 보도 감성적” vs “그럴 만했다”

사회 잘 지내셨나. 오랜만에 모인 관계로 살펴볼 이 8권이나 된다. 편의를 위해 얼마 전 시작된 ‘노동 OTL’은 담당 기자들과 함께 따로 논의하도록 하고, 나머지 기사부터 먼저 얘기해보자.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권으로 다룬 775호가 눈에 띈다. 사전에 독편위원들에게 통권 기획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는데.

박홍근 좋았는데, 상대적으로 중간 부분이 약한 것 같았다. 출생과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된 뒤의 업적과 평가 등은 많은데, 정작 그를 민주주의와 등치시켜 말할 수 있는 근거인 박정희 유신독재와의 투쟁과 그 과정에서 테러를 당한 일 등이 별도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K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많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 기획으로 그런 면이 좀 해소된 듯하다.

권순부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의 몰랐다. 기사에 빨갱이로 덧씌워져 있었다고 나오던데, 그것조차도 몰랐다. (웃음) 이 기획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을 쭉~ 알게 돼 좋았다.

김승미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과도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묶으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분위기에 휩쓸린 것 같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고, 민주화와 남북관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한 것 아닌가.

사회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느껴졌나.

김승미 ‘DJ와 노무현, 전생에 형제간이려나’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세계적 지도자들의 찬사’ ‘시대의 역류에 쓰러진 거인’ 등의 제목도 의도가 심하게 느껴졌다.

박홍근 인터넷에서 보니 ‘DJ와 노무현, 전생에 형제간이려나’ 기사의 클릭 수가 높더라. 많이 읽게 하려고 그런 제목을 달았다면 성공했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사실 좀 거슬리긴 하더라. 나중에 다시 화해하고 만나긴 했지만, 나름대로 냉각기도 있었고 형제라고 하기엔 그렇지 않나. 또 ‘압제에 저항해온 하의도 정신 이어받은 아이’ 기사도 걸리더라. 날 때부터 비범했다는 얘기보다는 평범했던 그가 어떻게 민주화의 길에 뛰어들어 새롭게 태어났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췄어야 하지 않나.

최고라 김 전 대통령 서거 뒤 주간지마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을까 걱정됐는데, 그의 일생을 역순으로 좇아가는 방식을 취해 차별성과 객관성을 얻은 것 같다. 뒤로 갈수록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몰랐던 DJ를 알게 되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엮었다거나 클릭을 유도하는 듯한 제목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기가 그럴 만하지 않았나. 그런 면을 다루지 않았다면 되레 이 외부 시각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김 전 대통령 서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고.

사회 말씀 잘 들었다. 다른 기사들은 어땠나.

박홍근 776호 표지이야기 ‘국정원의 신무기 패킷 감청’이 좋더라. 일반적으로 도청하겠거니 생각은 해도,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다는 것은 놀라웠다. 기사를 본 뒤 내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니 ‘설마?’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웃음)

김승미 나도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 정부가 활용하는 정보기술(IT) 수준을 확인하는 덤도 있었고. (웃음)

K 이렇게 광범하게 가족들의 사생활까지 침범할 수 있다니, 위헌이 아닌가.

김승미 자기가 당해도 당하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었겠나.

최고라 나도 그 기사가 좋았는데, 누구나 도·감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보강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지난해 하반기에 ‘MB 악법’이 통과된 뒤 가상 현실을 다룬 기획 중에 국민이 쉽사리 도·감청당하는 미래를 다룬 꼭지가 있었는데, 이번 기획에 함께 실렸더라면 좋았겠다.

18기 독자편집위원회

18기 독자편집위원회

박재범 사태, 누리꾼 책임만 물을 일인가

사회 8권 가운데 유일하게 소프트한 표지이야기가 777호 ‘소설 쓰는 시대’ 같다. 어땠나.

K 오아시스 같았다. (웃음)

최고라 주간지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표지 디자인도 발랄하고, 손바닥 문학상까지 덧붙여 더욱 좋았다. 약간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대중적 글쓰기의 확산 이면에는 1억원 이상 고료를 내거는 문학상의 등장, 그런 환경 속에서 상업성 강한 작품들만 살아남는 경향 등 자본 논리가 강화돼가는 현상이 있는데 다뤄지지 않았다.

박홍근 ‘대중적 글쓰기’라는 트렌드를 잘 잡긴 했는데, 고전적 의미의 소설이랄까, 머리털 쥐어뜯어가며 쓰는 소설은 줄어들고 있다. 이것까지 포괄하면 무거운 얘기가 될 수 있었겠지만, 한 꼭지 정도는 이런 면도 있다고 정리해줬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사회 잘 알겠다.

박홍근 레드 기획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한국말 못하는 연예인들이 뜬다거나 외국어 감탄사 광고가 대세라는 기사에서는 트렌드만 읽힐 뿐 사안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시각은 느낄 수 없었다. 박재범 사태를 다룬 기사도 그렇다. 누리꾼들의 과잉 태도만을 다뤘는데, 정말 그게 문제의 전부인가? 처음에 가 ‘Korea is gay’를 ‘한국이 혐오스럽다’로 오역해 올리면서 일이 시작됐다. 언론은 또 사태를 확대재생산했다. 잠깐 떴다가 내려진 박재범 자살 청원까지 언급하며 누리꾼들이 반박재범과 친박재범으로 절반씩 나뉜 것으로 기정사실화했다. 이렇듯 누리꾼들의 과잉 사이에는 문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이 있는데, 왜 누리꾼 문제만 지적하나. 그리고 대형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을 뽑아 아이돌그룹을 만들었기에 이리도 쉽사리 퇴출이 결정된 것 아닌가. 2PM이 음악을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그룹이라면 이렇게 문제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언론이나 아이돌그룹 문화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소재였는데, 누리꾼에게만 책임을 묻는 기사를 보니 실망스러웠다.

최고라 언론이 이렇게 나오니 전여옥·변희재 같은 사람들도 나도 똑같은 희생자라고 나서는 것 아니겠나. 다른 부분도 짚어줘야 했다. 개인적으로 보노짓 후세인 기사가 좋았다. 보도 그 뒤에서 우리 사회의 성 문제와 결부된 부분까지 다뤄줘 반가웠다. 또 다른 후속 보도를 기대해본다.

70~80년대보다도 더 메말라진 공장

사회 이제 ‘노동 OTL’ 이야기를 해보자.(임인택·임지선 기자 회의에 합류)

K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됐나.

임인택 편집장이 화두처럼 ‘하드워크’란 말을 던졌다. 중노동을 장기간 체크하며 그 현실을 짚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논의가 시작됐고, ‘비정규 중노동’이라는 주제로 일단은 4명의 기자가 돌아가며 한 달씩 체험한 뒤, 각 3회씩 기사를 내보내기로 했다.

박홍근 잘 봤는데, ‘기계’란 표현이 그 일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이 보면 반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임인택 기계라는 표현에는 거부감이 없다. 그들을 완전히 타자화해서 기계라고 말했다면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 깜냥에 4주 동안 일해본 결과는 기계란 표현이 맞았다.

임지선 일하는 식당에 하루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가 찾아왔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진짜 식당 아줌마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진짜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식당 아줌마”라고 해줬다. 한 달 동안 일하고 그 세계를 다 아는 양 으스댈 생각은 없지만, 그 기간에 느낀 것을 표현하는 데 피해갈 용어는 없다고 본다.

K 기사를 보며 1970~80년대 위장취업 생각이 나더라.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르던가.

임인택 그때와 비교해보고 싶었고 내부 논의도 있었지만, 큰 비중을 둘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를 전달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하고, 품도 부족하고, 내 능력도 부족하다. 지금 현실이라도 제대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K 인간적으로 그 시절보다 더 메말랐다는 느낌이다.

임인택 그렇다. 당시는 살기 위해 뭉쳐야 했는데 지금은 살기 위해 개별화되기도 한다.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가 극명하게 달라진 것 같다.

최고라 기사를 보며 내가 감히 비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라기보다는 손바닥 문학상에 응모한 글 같았는데, 온몸으로 쓴 기사 같았다고나 할까. 굳이 아쉬운 점을 들자면, 기획 끝에 전문가 글이 실렸는데, 너무 그들을 타자화해서 되레 기획 전체의 분위기를 깬 것 같더라.

김승미 굉장히 의미 있는 기사이긴 한데, 보여주기에 치중한 듯했다. 그 안에 있는 노동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려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대신 구체적·현실적 대안을 언급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임인택 취재하며 대안은 고민하지 않았다. 현장을 보여주는 게,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게 바로 대안의 출발이 아닌가. 사실 대안이야말로 수없이 많이 나왔고, 정부 관계자들도 다 알면서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반추하고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박홍근 한 달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과는 지금도 연락하나.

임인택 그렇다.

K 그들은 기자 신분을 아나.

임인택 일부만 안다. 한 달 채우고 나오면서 친하게 지낸 동생 두 명에게 신분을 말하고 술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는데, 막상 못 가고 있다. (웃음)

권순부 몇 년 전 우리 집도 해장국집을 해서 식당 아줌마들이 힘든 것은 조금 안다.

임지선 사실 나도 학비 버느라 식당에서 일해봤고, 우리 집이 한때 갈빗집을 했다. 그래서 식당 아줌마 힘든 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라. 물론 숫자나 문자로 표현되는 것들과는 더더욱 다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다.

“공장일, 운명이 아닌 선택이어서 다행”

최고라 안산공단과 식당 다음의 두 장소는 어디인가.

임인택 좀 컨피덴셜하다. (웃음) 3부는 지금 취재가 진행 중인데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고 해서.

K 한 달 채우고 돌아올 즈음 느낌이 어떻던가.

임인택 (공장 생활이) 운명이 아니라 실험이라 다행이라고 썼는데,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사회 ‘노동OTL’ 기획에 대한 궁금증들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다. 위원들 모두 6개월 동안 고생 많으셨다. 두 전직 대통령 서거 등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도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앞으로도 좋은 제안이나 하고싶은 말은 언제든 기탄없이 전해달라.

사회·정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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