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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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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류 문화’만 다루나?

대중영화·주류 스포츠만 주로 다루는 레드 기사와 2% 부족한 칼럼들에 다양한 불만 제기돼
등록 2009-09-02 17:20 수정 2020-05-03 04:25

8월17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독자편집위원회 회의는 더위 때문에 차질을 빚어야만 했다. 평소 회의가 진행되던 회의실이 너무 더워 중간에 기자들의 사무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리를 옮긴 뒤에도 더위는 여전했다. 열띤 회의 분위기가 에어컨을 무색하게 했다. 그런 노고(?)를 알아서였을까? 뒤풀이 자리에 합류한 박용현 편집장은 “여러모로 중요한 때에 독자편집위원을 맡으셨다. 여러분의 한 말씀 한 말씀이 기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는 등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독편위원들을 추어올렸다.

<한겨레21> 767~772호

<한겨레21> 767~772호

사회: 오랜만이다. 이번 논의 대상은 767~772호인데, 무엇을 다룰지 자유롭게 얘기해보자.

박홍근(이하 박): 정치·경제·사회 말고 문화·스포츠·칼럼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오주은(이하 이오):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나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 등 지속적으로 연재된 칼럼부터 얘기해보자.

사회: 마침 이번 776호부터 지면이 소폭 개편되는데, 끝나거나 새로 시작하는 칼럼이 적지 않다.

박: 우선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이 칼럼은 한 주제를 두고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서로 다른 시각을 비교해서 보자는 게 취지 아니었나. 요즘엔 일반 칼럼 같다. 소재 때문인 것도 같은데, 과학과 인문학의 크로스를 못 느끼겠다. 이럴 거면 ‘크로스’라는 이름을 떼고 둘이 번갈아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이오: 예전 기사들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최근호에서 다룬 쌍꺼풀, 셀카, 강호동-유재석 등은 너무 대중적이이서 여성지에나 나올 법한 소재들 아닌가. 대중적인 주제다 보니 다들 웬만큼 아는 얘기들이었다.

최고라(이하 최): 소재 선정이 중요하다. 강호동-유재석의 경우는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건 한계가 있다. 예전에 다뤘던 파울 클레같이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현상이나 소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K: 진중권·정재승 두 분이 차별화됐다는 느낌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좀더 크로스다웠으면 한다.

크로스답지 못한 크로스 칼럼

사회: 생각보다 신랄한 평가다. 다른 칼럼들은 어떤가.

K: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박노자 칼럼을 관심 있게 본다. 그런데 비주류 쪽 역사 얘기를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한 느낌이다. 제도권에서 배우는 역사는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에 한정된 게 많지 않나. 재야 사학자의 주장 등을 좀더 제대로 다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귀화했다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었던 분이 이런 수준의 우리 역사 얘기를 하는 것에는 고맙게 생각한다.

이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역사는 빠지기 쉽다는 말이 있더라. 우리나라는 우리 역사를 쓰고 일본은 자기 역사를 쓰니까,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의 경우처럼 중간 지대에 있는 이야기들은 잘 다루지 않게 되고 잊혀지기 쉽다는 얘기다. 그런 사이에 끼여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찾아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회: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 연재가 끝났고 777호부터 ‘국가 속 개인의 죽음’을 짚어보는 연재로 독자를 찾아갈 계획이다.

최: 안대회 교수 칼럼이 좋았다. 야담을 들려줬는데, 정말 우리가 모르고 깨는 얘기였잖나. 좋아했는데 연재가 끝난다니 아쉽다.

박: ‘S라인’ 기사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다. 축구·야구 기사만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주류 스포츠에 치중돼 있다는 느낌이랄까. 박태환처럼 가끔씩 다른 주제가 다뤄지지만 이슈가 됐을 때 잠깐뿐이다. 또 담당 기자가 좋아하는 스포츠만 다루는 것 같다. 좀더 다양한 뒷얘기들을 봤으면 한다.

사회: 그런 지적을 염두에 두고 바둑이나 농구 등 다양하게 다뤄보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정색하고 다루는 것에는 다른 의견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박: 사실 ‘마음은 언제나 록스타’ ‘심야생태보고서’ 등도 비슷하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쓰지만 전문적 칼럼은 아니어서 좀 느슨한 느낌이다. 신윤동욱 기자가 쓰는 영화평은 언제나 딱 한 편에 대한 평만 있다. 다른 영화들은 뭐가 있는지 관련 내용은 전혀 없고, 그 많은 연극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 문화는 미술·예술·무용·조각·클래식 등 범위가 넓다. 그런데 은 영화나 주류 스포츠만 다루는 느낌이다.

사회: 문화 쪽 기사와 칼럼 전반으로 얘기가 번졌다. 다른 위원들 의견은 어떤가.

최: 비슷한 생각이다. 지금은 다루는 게 영화와 출판, 스포츠 정도인데, 문화 테두리가 엄청 넓지 않은가. 소비적 문화만 소개되는 것 같아 아쉽다.

권순부(이하 권): 영화 를 평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사실 그런 기사는 말고도 다루는 데가 많다. 특별한 시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어제 연극을 한 편 봤는데, 연극 고르기가 쉽지 않더라. 흔한 영화 대신에 인디영화나 연극 등을 소개해줬으면 한다.

K: 쉽게 말해서 에 다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굳이 에서까지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다.

박: 영화 소개 프로그램 얘기를 하자면, 문화방송이나 SBS보다는 교육방송이 좀 더 깊이 있게 보여준다. 같은 것을 다뤄도 방식을 다르게 해서 접근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최: 교육방송의 은 다른 영화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그 주의 신작 영화에 대해 보도하는데, 히치하이킹 하는 느낌으로 다양하게 파고든다. 그렇다고 재미없거나 무겁지도 않다. 이렇게 발랄하면서도 다양하게 영화 기사에 접근해줬으면 한다.

18기 독자편집위원

18기 독자편집위원

연극, 미술, 무용, 클래식 등은 왜 없나

이오: 레드 기사를 쭉 살펴보면, 콘텐츠가 다양하다는 생각은 든다. 잡식성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승기를 다룬 것은 아쉽더라. 드라마 의 인기가 높아 회자가 됐다. 은 그런 표면적 이미지 아래에 드라마가 함의하고 있는 뭔가를 드러내줬어야 하는데, 많은 매체나 블로그에서 다룬 정도의 수준이더라. 여성지나 일반 문화지보다도 고찰이 떨어지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박: 잡지 앞부분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했으니 뒷부분의 문화나 스포츠는 쉽게 봤으면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화나 스포츠도 정치·사회를 침투해서 볼 수 있는 좋은 창 아닌가. 문화를 대할 때는 우선 소프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것만을 선택하는 것 같다.

이오: 공감하는 지적이다. 감각과 문화를 선도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네티즌은 이미 나름대로 문화와 매체 활동을 하고 있을 정도로 발달했다. 어차피 요즘 정서나 최신을 다룰 수 없다면 깊이 있게 파고드는 성찰을 담은 레드가 되는 것도 한 방편일 듯하다.

최: ‘오프더레코드’와 ‘건어물녀의 TV 말리기’ 칼럼이 번갈아 나오는데, 누가 썼는지 구분되지도 않고, 구분할 것도 없더라. ‘오이시 도쿄’도 먹는 얘기니 자연스레 트렌드로 넘어가고 언젠가 우리나라에 유행할 것을 먼저 보여준다는 느낌이지, ‘맛있는 도쿄’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

사회: 문화 기사와 칼럼에 대해 이렇게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 이제 기사 얘기를 좀 해보자.

권: 769호 표지이야기에서 ‘수사받는 법’을 다뤘는데, 일반 사람들이 수사받을 일이 그렇게 많나. 차라리 촛불시위 등을 하는 중에 연행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특정해서 얘기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너무 일반론에 치우친 것 같다.

K: 광주 때도 똑같지 않았을까. 전경들은 위에서 명령하니 우리는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투입되면 먹고 자고 쉬는 것 제대로 못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이용해 전경을 투입할 테고….

최: 전·의경을 너무 많이 봐서 친숙할 정도다. 특히 의경은 차출돼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사형제를 다루면서 집행자 얘기가 깊이 와닿았는데, 집회 기사를 다루면서 이런 전·의경의 얘기를 깊숙이 들어보면 어떨까.

K: 전경과 집회 참가자의 사랑 이야기는 다뤘던 것 같은데, 그보다 좀 깊게? (웃음)

(독편위원들의 ‘냉정한’ 평가와는 달리 769호 ‘완전정복, MB시대 수사받는 법’은 네티즌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772호 ‘보도그뒤’ 참조- 편집자)

박: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관련 기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 나왔는데, 실감 나게 잘 취재한 것 같다. 하지만 현상을 전달하는 데 치우친 느낌이다. 경찰과 노조의 격렬한 대립을 많이 보여주는데, 사안이 왜 그렇게까지 흘러왔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앞으로의 파장, 전망 등에 좀더 무게를 둬야 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상하이차 인터뷰는 시도해봤나. 다른 언론도 현장을 많이 다룬 만큼 은 전후 맥락에 좀더 집중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K: 쌍용차 사건은 정부의 시범 케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2·제3의 사건이 언제든 터질 듯한데, 정부는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뒤에서는 진압할 계획만 세울 것이다. 용산 참사 때와도 같다. ‘이래도 할 테면 해라’를 보여주는 것 같다.

“표지 디자인은 좋다” 모처럼 칭찬도

사회: 다른 하고 싶은 말씀은.

박: 주변에서 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표지가 참 장점인 것 같다고들 한다. 항상 다른 경쟁지들보다 감각적이다. 그만큼 기사 내용을 잘 표현하는 표지인 것 같다. 물론 가끔씩 오버도 하지만. (웃음)

이오: 표지는 확실히 의 아트 디렉팅이 뛰어난 듯하다. 표지만큼은 인정한다. 하하하.

최: 자고 나면 뭔가 터져나오는 세상이다. 그래서 지면이 모자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도 끝까지 발랄하게, 김빠지지 않게 잘 해나갔으면 한다. 기사에 가끔 체념조가 묻어날 때가 있다.

K: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오른쪽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도 왼쪽부터 넘겨본다. 흐흐.



가장 좋았지만 아쉬움도 컸던 기사
관찰 대상으로만 묘사된 ‘88만원 세대’


독자편집위원들은 가장 애착이 가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사로 772호 표지이야기 ‘88만원 세대의 슬픈 사랑’을 꼽았다.
가장 많은 지적은 ‘88만원 세대’의 사랑법을 다루면서도 그 세대는 ‘객체’로만 다뤄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박홍근 위원은 “88만원 세대는 그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인용된 것처럼 보였다. 20~30대는 ‘힘들어요’라는 말만 하고 나머지 진단과 평가는 외부에서 다 하니까, 마치 뭔가에 이용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고라 위원도 “재밌고 시의적절했으며 동거비 지원 등 논조도 발랄해 좋았다”면서도 “우리 세대를 얘기하는데, 결국은 기성세대가 뭐라고 더 말한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책임이 더 많은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88만원 세대’라는 용어 사용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K 위원은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쓰면 ‘너희는 지금 백수나 비정규직이니 88만원 세대다’라고 규정하고 ‘그러니 뭐라도 해봐라’라고 밀어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고라 위원도 ‘88만원 세대’가 현 시대를 분석하는 용어인데, 너무 우리 세대에만 적용되면서 단정적으로 돼버린 듯하다. ‘88만원’이란 말을 우리 세대에만 씌워 강조하면 전체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세대만의 것으로 돼버린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만 ‘88만원 세대’라고 한정지으며 분리하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오주은 위원은 “중요한 사회문제에 위트 있게 접근했다”면서도 “그런 현상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고 경제와 성, 문화와 삶을 보는 태도 등이 복합적으로 엮인 사안인데, 기사는 빈곤과 성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하고 다른 요인은 배제한 듯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초식남’이나 ‘철벽녀’ 등에는 개인 취향은 물론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이 녹아들어 있는데, 오직 경제나 성의 문제만으로 단순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사를 쓴 신윤동욱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음… 기자가 기획을 하면서, 취재를 하고서, 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문제를 마치 속내를 들여다보듯이 지적해주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88만원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88만원 세대 ‘안’의 차이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으며, 빈곤을 넘어선 그 세대의 문화적 특성도 생략돼 있습니다. 의식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했던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된 이유를 꼽자면, 첫 번째는 당사자가 아닌 기자들이 썼다는 한계가 있고, 주제를 너무 폭넓게 잡았다는 문제도 있으며, 대개의 기사가 그렇듯 생략을 통한 과장을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도 있습니다. 타자화를 넘어선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는 수밖에요.”

사회·정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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