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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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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 매뉴얼’ 시민도 경찰도 퍼나르기

‘수사 대처법’ 보도에 네티즌 반응 뜨거워… 경찰청도 전국 경찰서에 전자열람문서 보내
등록 2009-08-05 14:13 수정 2020-05-03 04:25

독자들의 반응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시민들이 검경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정리한 769호 표지이야기 ‘쫄지 마! 실전 매뉴얼이 여기 있잖아’ 기사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퍼나르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7월31일 현재, 구글에서 ‘실전 매뉴얼’을 검색어로 넣었더니 적어도 70여 개의 블로그가 의 기사를 퍼담아 싣고 있다. 각종 카페, 미니홈피, 웹페이지 등을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불어난다. 반응들은 비슷하다.

7월27일 오전 경기 파주 집 앞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실에서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7월27일 오전 경기 파주 집 앞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실에서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취업 준비 바쁜 대학생들도 기사 스크랩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제 나 같은 평범한 시민도 이런 기사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ㅠ.ㅠ”(티스토리 블로거 ‘ㄴ’)

“이런 걸 모르고 살아야 좋은 나라일 텐데 말이죠. 안타깝네요.”(네이버 블로거 ‘ㅇ’)

“PDF 만들어 잘 저장해두시면 만약의 경우에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다음 블로거 ‘ㄴ’)

“MB 시대의 실전 매뉴얼이…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경호원도 세울 수 있고 잘나신 법의 도움도 받겠지만….”(텍스트큐브 블로거 ‘ㅁ’)

몇몇 네티즌들은 과거에 수사를 받았던 경험을 소개하며 또 다른 ‘실전 팁’을 제공하고 있다. “예전에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난감하더군요. ‘너는 죄가 없으니 진술해도 된다’ 이 말만 하더군요. 모른다 하면 계속 협박하고. 그래도 모른다 하니 됐다고 가라 하더라고요. 당시엔 이런 걸 몰랐죠. 근데 죄가 없어도 조사를 받으면 다리가 후들거려요.”(네이버 네티즌 ‘ㅅ’)

얼마 전, 지방 대학의 어느 교수는 의 관련 기사를 오려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만났다. “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기사를 따로 떼서 친구들한테 복사해주고 있더라고요. 지방대학이라 운동권도 거의 없고 다들 취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는데, 그런 학생들조차 이런 정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죠.”

기사를 퍼나르는 것은 시민들만이 아니다. 일선 경찰들도 관련 기사를 돌려가며 읽고 있다. 경찰청은 보도 직후인 7월17일, 전국 경찰서에 전자열람문서를 보냈다. “최근 언론에 ‘수사 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출석부터 체포까지 각 절차별로 대응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국민들에게 방어권을 안내하는 내용이 보도됐으니…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방어 의식이 고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수사 현장에서 법령상 절차 이행에 만전을 기하여 경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강조 지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조 지시’ 문서에는 의 기사 전문이 첨부됐다. 경찰의 전자열람문서는 모든 경찰관이 반드시 열람하고 열람 사실을 확인받아야 하므로, 대다수 경찰관이 이를 읽어본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기사를 보고 국민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질 수 있으니, 현장에서 수사하는 경찰도 수사상 절차를 정확하게 지키라는 취지였다”며 “어찌됐건 그런 내용을 시민과 경찰이 공유하는 게 바람직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수사상 절차 정확히 지키라는 취지로 보내”

그의 희망처럼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가 더 확산된다면 좋겠지만, 평범한 시민들도 언제든 연행·체포·구금·조사·구속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함부로 인권을 유린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포’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 실체가 통계로도 일부 드러났다. ‘공안형 경범죄’가 급증한 것이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2007년 7만7138건이던 범칙금 부과 건수가 2008년 27만2749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엔 6만286건을 기록했는데, 급증 추세는 다소 주춤했으나 여전히 2007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범칙금 부과 건수가 조금 줄어든 대신, 즉결심판 처분은 더 늘고 있다. 2007년 4만9967건이던 즉결심판 처분은 2008년 6만2487건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이미 3만816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2만7215건)와 비교해 40.2% 늘었다. ‘노상방뇨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경범죄의 죄목별 분류가 정확히 이뤄지지 않은 탓에 단정하긴 힘들지만, 지난해 촛불 이후 집회·시위에 대처하는 사법 당국의 태도 변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찰청은 올해 초 ‘집회·시위 관리지침’을 통해 “기자회견·촛불문화제 등을 빙자한 변형된 불법 집회·시위는 법률을 엄격히 적용, 현장에서 적극 조치”하도록 지시했다. 집회·시위 참가자들을 교통법규 위반, 건조물 침입 등의 경범죄자로 몰아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 1년여 사이에 급증한 경범죄자의 대부분이 ‘촛불 참여자’로 추정되는 이유다.

경찰청의 지시처럼 일선 경찰이 ‘법령상 수사 절차’를 잘 따른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기존 법령을 편의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비판하는 언론인들의 투쟁이 한창이던 7월27일 아침, 경찰은 경기 여주의 자택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을 긴급 체포했다. 선선히 따라나서겠다고 했는데도, 옷 갈아입을 틈도 주지 않고 경찰은 딸과 부인이 보는 앞에서 최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웠다. 초등학생 딸이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사례들이 계속되는 한 ‘실전 매뉴얼’ 후속편도 앞으로 계속된다.



실전TIP 말 나온 김에 수갑 채우려는 경찰에 대응하는 실전 팁을 정리해 보겠다. 번쩍이는 은빛 수갑 꺼내는 경찰, 그의 한쪽 손아귀는 이미 당신의 허리춤이나 팔을 꽉 비틀어 잡고 있을 것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처한 수치심이 벌겋게 귀밑까지 번져와도 공연히 반항하면 당신의 아까운 열량만 소모된다. 몸에 힘빼고 목에 힘줘라. “헌법 12조 1항 알아요?” 이 무슨 희귀한 경우지? 경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져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되지 않지요. 나를 수갑 채워 체포하는 이유가 뭐지요?” 정신 차린 경찰은 당신에게 적용하고 있는 법률 위반 행위를 읊을 것이다. 어떤 혐의를 대건 되잡아라.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은 ‘현행범,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에 한해 수갑 등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정했다.
현행범이 아니라고? 수갑 안 차도 된다. 뭔가 법을 어긴 것 같지만 대단치 않다고? 적어도 3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기껏해야 교통법규 위반 따위의 경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고? “수갑이 무슨 장난감인줄 알아? 나한테 수갑 채우면 바로 고소할거야” 당당하게 나가도 된다.
그렇다고 은빛 수갑을 쉽게 내려놓진 않을 것이다. 당신 죄가 무거운지 아닌지는 검사가 결정할 것이라고 둘러댈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물러서지 마라.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 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필요한 한도 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해 도주우려·자해위험·타인공격 등의 사유가 없을 때 수갑을 채우면 안된다.
‘실전 매뉴얼’도 읽었고 겁날 게 없으니 도망 안 간다고 해라. 잘 살겠다고 데모했는데 왜 일부러 자해하겠느냐고 해라. 이명박 시대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경찰을 공격하겠느냐고 큰 소리 쳐라. 그런데도 왜 수갑 채우려 하느냐고 따져라. 7월17일 경찰청 강조지시 전자열람문서를 읽어본 경찰이라면 잠시 경건한 얼굴로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도주 우려는 내가 판단하는 거고, 당신은 그냥 따라와” 따위의 막무가내 경찰이 없을리 없다. 그럴 때도 방법이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광장·도로 등 탁 트인 공간보다는 호송 버스 등 밀폐된 공간에서 수갑을 채우려 할 때, 그 부당성을 항의하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권 변호사는 관련 사건에서 승소한 경험도 있다. 지난 2006년 당국이 3시간 동안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워 호송했다.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무시했다. 고소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이겼다. 30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아냈다. 경찰차에 올랐는데도 수갑을 계속 채우고 있다면, 당신도 300만원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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