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서남쪽, 1천~2천m 깊은 물속엔 광활한 분지가 있다. 동서로 150㎞, 남북으로 100㎞ 길이에 이르는 ‘울릉분지’다. 최근 이곳에 사람들의 관심, 돈과 기술, 욕망이 집중되고 있다. 2024년 6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레 국정브리핑에 나와 “(울릉분지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은 이 사업을 2024년 12월 시추 작업에 들어가 2035년 상업 개발하는 목표로 추진한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나왔다. 시추도 안 한 석유탐사에 대해 대통령이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바다에선 1959년 이래 동해 27번을 포함해 48번의 석유 시추가 이뤄졌다. 성공은 2번(동해 가스전 1·2)뿐이었지만, 시추 전후 석유탐사·개발이 이렇게까지 논란이었던 적은 없었다. 과거와 구별되는 점은 ‘ 대통령 발표’ 여부다. 물론 1976년 1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포항 영일만 석유 발견” 발언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시추한 뒤였고, “막대한” 같은 자극적인 표현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탐사 단계에서의 키워드는 ‘가능성’이지 ‘숫자’가 될 순 없어요. 현 단계 발표값은 불확실성이 굉장히 큰 추정치 정도예요. 그 숫자에 흥분하거나 폄훼하거나 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할 필요가 없어요. 탐사 단계 말기의 평가일 뿐이거든요. 대통령도 ‘탐사자원량’이라고 맞게 표현했어요. 그런데 발표자가 대통령이다보니 숫자에 관심이 집중된 거 같아요. 지금은 경제성을 언급할 단계가 아니에요. 한국석유공사 사장 정도가 발표했으면 어땠을지…. 아쉽네요.” 이근상 한양대 교수(자원환경공학)가 말했다.
땅속 석유·가스는 그 양에 따라 큰돈이 오간다. 정확한 측정이 어려우니 추정치로 거래가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갖은 오해와 혼선이 벌어져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석유자원관리체계(PRMS)(표 참조)라는 기준이다. 2007년 세계석유공학회(SPE), 세계석유회의(WPC), 미국석유지질학회(AAPG), 석유자원평가학회(SPEE) 등이 공동으로 전문용어의 정의를 섬세하게 다듬었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는 어감이 비슷한 ‘매장량’(Reserves)과 ‘자원량’(Resources)에 대해 석유업계가 담아 쓰는 의미는 다르다. △시추해서 석유의 존재가 확인됐고(발견) △기술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으며(회수 가능성)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상업성) 석유의 양만을 엄격하게 매장량이라고 한다. 반면 자원량은 잠재적인 추정치다. 시추 전 단계엔 ‘(석유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탐사자원량’(Prospective Resources)이라 하고, 시추 뒤 단계에선 ‘상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발견잠재자원량’(Contingent Resources)이라고 구분한다. 이런 정의를 미국 데이터 분석회사 액트지오가 확인한 사안에 대입하면, 가장 불확실한 수준인 ‘탐사자원량’이라 할 수 있다.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기자회견(6월7일) 때 10개월간 분석을 통해 도출했다고 한 “7개의 유망구조(Prospect)” 역시 우리말로 ‘유망하다’는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유망구조를 규명했다”는 건 석유·가스가 있을 법한 지질구조를 찾았다는 의미다. 그 속에 석유 대신 물이 차 있을지, 이산화탄소만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아브레우 고문도 “탄화수소(석유의 주성분)가 누적돼 있다는 사실을 아직 찾지 못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상업화) 성공 가능성이 20%라는 말은 80%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의 룰은 윤 대통령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에서 여지없이 깨졌고, 섬세한 개념들은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윤 대통령은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많은 탐사자원량”이라고 말했다. 가이아나의 110억 배럴은 시추 이후 확인된 ‘발견잠재자원량’이다. 차원이 달라 ‘탐사자원량’과 비교할 수 없다. “140억 배럴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총의 총 5배 정도가 된다”고 한 안덕근 장관의 표현 역시 틀렸다. 경제성을 거론하려면 ‘매장량’ 수준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주무 장관의 발언 여파는 “영일만 석유·가스 140억 배럴 매장”(<조선일보> 6월4일치 1면 제목) 등과 같은 보도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으로 소개한 액트지오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회사의 분석 결과는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 언급의 핵심 근거였다. 곧바로 산업부가 자료를 내고 아브레우 고문의 1998년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활동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했다.
6월4일 한 커뮤니티에 미국 텍사스에 사는 한 교민이 액트지오 회사 건물을 찾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본사는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가정집이었다. 사실이었다. 석유공사와 계약하기 전인 2022년까지 액트지오 연 매출이 3천만원대에 불과했던 점도 드러났다. 2007년부터 15년 동안 동해 유전 탐사와 분석을 맡았던 글로벌 석유회사 ‘우드사이드에너지’가 2022년 철수하면서 ‘가망 없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도 보도됐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급기야 아브레우 고문이 한국에 왔고, 6월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20%라는 추정의 성공률은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수치”라고 강조했다. 그날 오후 2019년 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세금(미국 텍사스주)을 내지 않아 액트지오의 법인 자격이 박탈됐었다고 <시사인>이 보도했다. 전문성·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한 번에 약 1천억원이 들어가는 시추에 필요한 돈줄(예산권)을 쥔 정치권에서 “시추가 아니라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까닭이다.
6월5일부터 12일까지 한국석유공사는 하루 1∼2건씩 보도자료 12건을 냈다. 모두 액트지오 관련 의혹에 대한 해명이었다. 6월10일, 이번엔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이 나섰다. 그는 “심해탐사라는 분야 특성상 기업 규모가 작은 것은 일반적이며, 전문성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액트지오에 심해탐사 데이터 분석을 맡겼다”며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등 우려할 점들이 있어 탐사 분석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 다만 우드사이드에너지와 액트지오가 분석한 자료가 달라 두 회사의 판단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간 해명의 종합판이었다. 이날 최 2차관은 2023년 2월 석유공사와 액트지오의 계약 체결 당시 액트지오가 세금체납 상태였던 점에 대해선 사과했다. 아브레우 고문은 개별 언론과 접촉해 여론전에 뛰어들었다. “‘20% 성공률’이 나오면 대부분 ‘나라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는데 한국처럼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는 건 처음 본다”(<조선일보> 6월8일치), “한국 정치권, 기술적 이슈를 내 개인적 이슈로 만든다”(<중앙일보> 6월12일치)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
“온통 액트지오 얘기예요. 정치권에선 믿을 만한 데다 맡겼어야 하는 거 아니냐, 판단 근거를 공개하라 하고, 언론에선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된 거냐 하고…. 그동안은 석유공사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교차 검증했고, 그러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거든요. 배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산으로 가는지….” 최경식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가 말했다.
분석 자료의 내용은 공개 못한다는데,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은 홍보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를 부여받은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아브레우의 권위를 강조하는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발표 7일 만인 6월10일 최남호 2차관은 “심해 광구와 관련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석 툴이 순차층서학인데, 아브레우 박사가 가장 권위자”라고 또 한 번 강조했다. 순차층서학이 물리탐사 자료에 퇴적 환경·역사에 대한 자료를 더해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분석기법으로 199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널리 쓰이는 건 맞지만, 국민적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논리·언어 전문가인 김준성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이런 정부 대응에 대해 “탐사 분석이 옳다고 하려면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공개하면 될 텐데, 그 대신 순차층서학이 적용됐다고 하는 등 엉뚱한 정보만 공개하고 있어요. 이런 건 ‘은폐된 증거의 오류’(Suppressed Evidence)라고 합니다”라고 꼬집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성공률 20%”의 의미에 대해 아브레우 박사와 정부가 “5곳을 시추하면 1곳에선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도 논란이다. 최경식 교수는 “심해 광구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5% 성공률만 있어도 시추해보기도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이게 5곳을 해서 1곳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공률을 100%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상 교수도 “1차 시추로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유망구조를 도출해서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고, 석유 발견의 각종 요소가 발견이 안 돼서 (다른 유망구조를) 무시하고 사업을 스톱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준성 교수가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사위를 던졌을 때 앞의 일은 뒷일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걸 ‘무작위성’(randomness)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부터 6까지 고루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과거에 많이 나오지 않은 수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가 있어요. ‘도박사의 오류’라고 하는데, 20% 확률을 5번 중 1번은 성공한다고 하는 게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례적인 대통령 발표로 시작해 분석 결과 공개 요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향후 사업 진행에서 경제적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이번 석유 탐사·개발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이러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이거 ‘안 돼도 괜찮다’고 할 수 있어야 우리도 협상력을 가지죠. 국회에서 분석 결과를 내놓으라 하는 것도, 이게 공개되면 결과적으로 협상은 불리해지고 우리 손해죠.” 이근상 교수가 한 말이다.
대체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진 걸까. 현재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최근 20%대 지지율은 중도 지지가 줄어든 게 아니라 보수층 지지율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집권 2년이 넘었는데, 정책적인 성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성과를 조급하게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강경해진 대북정책도 그런 목적으로 나온 것 같고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도 잃을 게 없다고 봤을 거예요. 거기에 여당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친윤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국정지지율이 올라야 하는 상황이고요. 2022년 말 지지율이 비슷했는데, 그때 화물노조 파업에 강경대응한 것과 상황이 비슷해 보입니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정치학)가 한 말이다.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는 6월9일 이번 석유 탐사·개발 사업과 관련해 석유공사·산업부·대통령실 간의 수·발신 문서 목록과 액트지오에 발주한 용역의 내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하 변호사는 “이상한 점이 많다”며 “이미 용역사까지 정해서 시추계획이 다 나온 상황에서 대통령이 ‘시추를 승인했다’(6월3일)고 하고 발표까지 했는데, 하루 뒤에 산업부에서 관련 티에프(TF) 신설 방안을 보고한다. 의사결정 과정과 일 처리에 대해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일서 석유가 나왔다’. 1976년 1월16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말하자 언론 대부분이 이런 제목의 기사를 냈다. 하지만 원유도 아니고, 경제성도 없다고 결론 나면서 1년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당시 <국제신문> 기자로 이 문제를 집중 취재했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6월3일 ‘윤석열의 포항석유 발표에 박정희가 겹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포항석유(가짜) 대소동의 재판이 될지 모른다. (…) 시추를 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140억 배럴의 대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것은 황당할 뿐 아니라 책임 문제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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