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김아무개(40)씨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그가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지지 정당을 옮긴 결정적인 계기는 윤석열 당선자의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관련 발언(“주 52시간은 실패한 정책”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불필요한 야근과 특근이 줄어 숨통이 트인 상황에서, 윤 당선자의 발언은 용납할 수 없었다. 김씨는 결혼 7년차로 서울 강동구 아파트에서 자가로 살고 있다.
김씨의 투표 행태는 40대의 강고한 민주당 지지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30대의 민주당 이탈과 대비했을 때 이들 연령 집단의 높은 충성도는 세대론적 접근이 전제하는 문화적 특성이나 역사 특수적인 경험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
방송 3사의 20대 대선 출구조사에서 40대의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율 추정치는 60.5%로, 50대(52.4%)보다 8.1%포인트 높았다. 반면 30대로 가면 이 후보 지지율은 46.3%로 떨어지고 반대로 윤 당선자 지지율이 48.1%로 껑충 뛴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의 패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계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투표한 사람 가운데 29%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이탈했다. 이 가운데 20~30대가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전문위원은 “40대 이상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잔류 성향이 강했고 2030세대에서는 이탈 성향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에서 (지금의 30대와 40대인) 당시 20대와 30대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각각 65.8%, 66.5%였다.
실제로 30대와 40대가 노동시장, 자산시장, 사회복지 등에서 처한 상황은 사뭇 다르다. 문재인 정부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먼저 노동시장부터 살펴보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번듯한 일자리’로 간주되는 대기업 정규직 채용이 급격히 감소했다. 대졸자 직업능력이동조사에서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초임(1년 뒤 월 급여)은 2008년 졸업자는 258만원(2015년 물가수준으로 실질화)인데 2016년에는 244만원으로 5.4%가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근로자의 임금은 사업체노동력조사 기준 14.7% 늘었다. 초임이 월 300만원을 넘는 대기업에서 채용을 줄인 까닭이다.
보육 지원이 늘린 복지 체감그 결과 오늘날 다수 대기업에서 인력 구조는 40대 이상이 많은 항아리형이다. 금융업이 대표적이다. 금융연구원이 매년 작성하는 ‘금융인력 기초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은행 직원 중 20~30대는 54.2%, 40~50대는 45.9%였다. 2020년 이 비율은 각각 48.9%, 51.1%로 바뀐다. 보험회사의 20~30대 비중은 같은 기간 62.6%에서 45.7%로 급락했다.(그래프1) <중앙일보>는 2020년 1월 한 기사에서 전체 직원(897명) 중 부장이 209명으로 대리(132명)보다 60%가량 더 많은 한 대기업 계열사를 소개했다. 지역 고용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가지고 연령별로 상용직 비중을 분석하면 40대가 가장 높다.
정부 정책을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로인 복지도 40대가 받는 혜택이 30대보다 훨씬 많다. 보육과 관련한 각종 현물 지원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21년 말 펴낸 ‘사회보장 재정 위기 감지 및 대응을 위한 분석적 기반 연구’ 보고서에서 연령별 사회복지 편익을 분석했다. 37~42살 집단이 43~60살 집단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래프2) 세 부담은 비슷했다.
보육을 비롯한 가족 분야의 복지 지출은 노무현 정부 이후 급격히 규모가 커졌다. 또 민주당은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나 2018~2020년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관련 의제를 집중적으로 발굴했다. 문재인 정부도 아동수당제 도입,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 초중고 무상교육을 주된 치적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그 혜택은 40대 유자녀 기혼자에게 집중된다. 30대의 경우 남성 미혼율이 2010년 38.4%에서 2020년 51.8%로 높아지는 등 미혼자 또는 무자녀 기혼자가 주류에 가깝다. 40대는 40~44살 여성 중 유자녀 기혼자 비율이 91.5%에서 80.0%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정상 가족’이 주를 이룬다.
주거 격차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가지고 출생연도에 따른 주거 상황을 분석했다. 자가 거주 비율이 1982년생(52.0%)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대신 월세 거주가 늘어났다. 1986년생의 경우 10분의 3이 월세 임차인이다. 다주택자 비율은 1980년생(9.9%)까지 10% 안팎을 유지했다. 하지만 1983년생은 5.9%로 뚝 떨어졌다. 40대는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 투자’를 비롯해 자산 증식 기회가 있었지만, 30대에게 근로소득으로 자가를 매입하기란 여간해서 어려워졌다.
40대의 압도적 민주당 지지는 한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 복지정책, 자산시장 등에서 민주당에 우호적인 요인이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50대에서 40대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여전히 민주당 지지가 강한 것도 40대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갖거나 민주당의 정책 캠페인에 지지를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이는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단한 난점을 안길 요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40~50대 상용직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큰 영향력을 가질 만한 복지나 사회정책 의제도 보이지 않는다. 학력 수준이 높고 사회 활동이 왕성한데다 정치적 동원에 익숙한 40대를 방치하고서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앞서 소개한 김씨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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