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야기하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지율이 30% 중후반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박스권 지지율’이다. 앞에 ‘콘크리트’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의 지지율 정체를 겪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밖 유권자의 외면이다. 둘째는 중도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 일대에서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MBC와 서울대 국제정치데이터센터가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추정한 결과(2022년 1월26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31%로 윤석열 후보(42.5%)에게 크게 밀리고, 인천·경기에서는 37.7%로 상승세를 타는 윤 후보(36.7%)와 거의 비슷하다.
셋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형성된 민주당 지지 블록의 와해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1월 하순 작성한 ‘서울시 유권자 정치 지형과 대선 전략 함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17~2020년 진보와 중도 연합을 통한 압도적 우위 구도가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해체됐다”고 평가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은 서울시민 가운데 52%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직업별로 뜯어보면 자영업자, 학생, 주부는 국민의힘 지지로 갈아탄 비율이 높았고 화이트칼라는 국민의당 또는 무당파로 이동했다. 민주당 지지 블록에서 이탈한 수도권 유권자가 정권심판론으로 크게 기울어졌다는 게 박스권의 진짜 의미인 셈이다.
앞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민은 ‘부동산·주거안정’(31%), ‘경제성장 방안’(19%), ‘일자리 창출·고용’(10%) 등을 대선 1순위 과제로 꼽았다. 그런데 세 의제를 꼽은 유권자 중 정권심판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부동산’ 응답자의 경우 64%, ‘경제성장’ 67%, ‘일자리’ 58%에 이르렀다. 부동산 가격 급등을 넘어서서 ‘먹고사는 문제’ 전반에서 불만이 팽배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간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급격히 악화했다. 미국의 대표 고용지표인 ‘비농업 민간 일자리’와 비슷하게 공공행정·국방 및 농림어업(산업 대분류)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연도별 고용지표를 살폈다. 분석 대상 연령도 만 20~64살로 좁혔다. 취업자 수는 2017년 2270만 명에서 2021년 2243만 명으로 27만 명 줄었다. 전체 인구를 분모로 삼아 계산한 일종의 ‘비농업 민간 고용률’은 66.9%에서 65.6%로 1.3%포인트 감소했다. 보건업·사회복지업까지 제외할 경우 고용률은 2017년 61.8%, 2019년 61.0%, 2021년 59.6%로 하락폭이 컸다. 취업자 증감폭은 2017~2019년 3만 명 증가, 2019~2021년 47만 명 감소였다.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들이 제대로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실정이 대규모 실업자 등으로 표면화되지 않은 것은 아예 일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취업 시장에서 후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 사정이 악화한 데 따른 불만은 그대로 쌓일 수밖에 없다.
연령별로 2021년 기준 여론조사회사 한국갤럽의 대통령 부정평가 비율과 지역고용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가공해 얻은 임시·일용직 취업 및 실업, 비경제활동인구 비율(불안정고용과 미취업을 함께 고려한 지표)을 함께 그려보면 유사한 형태의 U자형 그래프가 나온다. 대통령 부정평가 비율은 만 39~48살(2022년에 40대)에서 43.0%로 가장 낮은데, 공교롭게도 이 연령대에서 불완전고용 및 미취업률(평균 34.4%)이 최저다. 청년과 장·노년이 정권심판론에 동조하고, 40~50대가 이재명 후보를 굳건히 지지하는 양상의 기저에는 일자리 사정이 깔렸음을 시사한다.
새로운 일자리 10명 미만 소기업에서 나와노동시장에서 가장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곳은 소상공인 창업이다. 전현배·이윤수 서강대 교수(경제학) 등에 따르면 2006~2011년 증가한 일자리(전국사업체조사 기준 69만 개) 가운데 67.6%(46만7천 개)가 고용인원 10명 미만 소기업에서 나왔다. 특히 10명 미만 소기업의 창업 과정에서 일자리 64만6천 개가 늘었다.(창업 1~10년 사이 10명 미만 소기업에서 일자리 19만3천 개가 사라졌고, 창업 10년을 넘긴 곳에서는 1만3600개가 늘었다.) 반면 250명 이상 대기업의 순고용 증가는 3천 명에 그쳤다. 서강대의 신동한 박사(경제학)는 2015~2019년 소기업 창업이 어느 연령대 취업자를 늘리는지 분석했다. 50살 이상 장년층은 고용인원 50명 이상 기업에서 나와 10명 미만 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30살 미만 청년은 대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가거나 경력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2018~2019년 최저임금 29.1% 인상과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소상공인 창업과 고용에 미친 영향이 어떠할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신규 창업이 위축되며 창업 기업이 인력을 더 적게 썼을 것으로 봐야 한다. 기존 기업의 고용 감소와 폐업 증가라는 직접적인 영향 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강창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30명 미만 사업체의 고용을 2% 이상 줄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18~29살 청년층은 최대 1.7~2%, 55~70살 장노년층은 2.5~2.6% 일자리가 줄었다. 국회 소상공인정책포럼이 한국신용데이터에 의뢰해 2020년 ‘코로나19가 소상공인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규모가 영세한 업종일수록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체가 더 많았다. 또 외식업뿐만 아니라 여행·레저·체육·공연 등 대면 서비스업종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17년 이후 급격히 줄어든 민간 일자리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번듯한 일자리’가 아니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서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이른바 ‘2차 노동시장’ 일자리다. 연구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2차 노동시장의 취업자 규모는 전체의 80% 안팎이다. 이재명 후보가 박스권 지지율을 뚫는 활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은, 여론시장에서 목소리는 작지만 투표수는 압도적인 ‘2차 노동시장’에 속한 이들의 불만을 해소할 방법을 못 찾기 때문 아닐까.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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